베트남은 과거 전흔을 말끔히 털어 내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는 베트남의 젊은 세대를 만나본다./BBC 인터넷판 全文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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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의 알란 덩은 고급 소비자를 겨냥해 의류와 가구류를 판매하는 체인점을 하노이市 중앙에 소유하고 있다.

패션전문디자이너이며, 영어가 유창하며,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무역박람회에도 방문하기도하는 그녀는 베트남의 현대적이고, 성공적인 젊은 신세대의 사업가들 중 한사람이다.

인구 8천3백만명 가운데 60%가 그랬듯이 알란 역시 전후(戰後)세대이다. 그녀는 과거 험난했던 국가상황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 거의 없다.

“베트남은 정말 밝은 미래를 갖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사업하기에 대단히 좋은 곳이며 생활하기에 흥미진진한 곳이 바로 지금의 베트남이라고”강조한다.

이 같은 변화는 통계적으로 확인된다. 베트남은 지난 5년 간 거의 매년 8%이상의 성장을 구가했으며 그 같은 성장의 열기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만이 라이벌이었다.

93년도에 인구의 58%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빈곤층에 있었으나 2004년도에는 전 인구의 20%로 급격히 감소했다.

월드뱅크의 경제전문가인 캐리 터크氏는 “90년대 중반에 방문했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베트남을 처음 방문했을 때 미즈(MS) 터커양은 화장품을 사기 위해 방콕으로 날아갔다 와야했다. 그러나 지금의 하노이는 호화 부티크와 무선인터넷 카페 그리고 세계수준의 음식점들의 본산이 되었다.

   
▲ 이 달에 치러진 하노이 에이팩(Asia-Pacific summit )정상회담은 베트남의 급속한 변화를 주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실로 글로벌스탠더드 수준까지 급격히 성장했으며, 베트남인들 가운데 자신이 10년 전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같은 범주에는 비교적 가난한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구엔 티 하 부인은 하노이에서 30km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녀의 남편과 살고있다.

그녀는 몇 주만에 한 번씩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한 파파야와 바나나를 팔러 도시로 나오는데 한 번 올 때마다 40만동(25달러)를 번다고 한다.

“내 미래는 밝습니다. 아직은 힘들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좋아요”라고 그녀는 말한다.“우리는 지금 T.V가 있고 곧 전화를 구입할 예정입니다”라고 희망을 말한다.

국영(國營)에서 민영(民營)으로

최근 에이팩 정상회담의 하노이 유치, WTO(국제무역기구)가입 등은 베트남의 눈부신 발전을 조명하는 것으로 과거 거대 중국의 인접국이라는 그늘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 구엔 티 하 부인은 핸드폰을 구입하길 바란다.
베트남은 사실상 지난 20년 동안 개혁을 추진해왔으며 처음에는 점진적으로 현재는 보다 급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33세의 건축가인 구엔 빈 트렌氏는 베트남의 이 같은 변화를 면밀히 지켜보았다.

수 십 년 전만 해도 모든 것이 국가소유였다. 심지어 빈氏가 처음 직업을 가졌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그는 우선적으로 정부 일만을 해야만했다. 왜냐하면 민간부문의 기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민간부문시장의 힘이 강력하다”다고 그는 말하면서 자신이 참여하고있는 호텔,공장,과 산업단지 등의 건설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베트남은 경제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변화도 함께 진행되고 있어 전통적인 보수성향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알란 동氏의 패션사업은 20-30년 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모델이 되는 것은 창녀가 되는 것만큼 나쁜 것으로 대부분의 연장자들 사이에서 인식되곤 했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포부나 희망 역시 변했다. “최근까지도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정부산하의 기업에 취업하길 원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다이나믹한 국제적 비즈니스를 원하고 있다”라고 구엔 빈 트렌氏는 설명한다.

정치적 변화에 대한 얘기는 대다수 젊은이들의 주제거리가 아닌 듯 하다.

소수의 용기 있는 반체제인사들은 인권과 정치적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만 국가권위에 의해 탄압 받는 현실이며 대다수의 베트남인들은 그들의 우려에 별반 감응하지 않는 상태이다.

“정치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실제로 거의 없다”고 알란은 말한다. 또 “물론 정부가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 열심히 지원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하루 하루의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할 특별한 것은 없다”고 전한다.

성장통(成長痛)

빈곤층에게는 최근의 경제성장이 급속한 도시화를 의미하며 또한 대규모의 인구가 시골로부터 도시로 이주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 팜 티 디엡 부인은 자식들을 위해 하노이市로 나왔다.
팜 티 디엡 부인은 얼마전 도시의 길거리에서 빵을 팔기 위해 자신의 고향인 하남지역을 떠났다. 그녀는 두고 온 자식들을 그리워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기뻐했다.

대부분의 빈곤층이 새로운 경제환경으로 이익을 보겠지만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만큼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베트남의 중견 경제학자인 라 당 돈氏는 말한다.

농업용 토지가 산업용으로 잠식되면서 이 같은 지역주민들이 가장 취약한 처지에 놓일 전망이다. 특히, 노약자들과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세계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 고원지대의 소수민족의 경우 빈곤수준의 개선이 다른 일반 국민들보다 매우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성장통(成長痛)들이 수반되긴 하지만 베트남 국민들이 갖고 있는 밝은 미래에 대한 낙관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과거 젊은이들의 꿈은 자신의 직장 상사를 만족시키거나 공산당원이 되는 것이었다-이것은 노예의 꿈이었다”라고 구엔 빈 트렌氏는 말한다.오늘 베트남인들은 영어와 불어를 배워 말하고 싶어하고, 돈을 많이 벌어 국제적 수준으로 살기를 원하고 있다.”/BBC 11.27日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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