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물골의 늦은 가을 풍경
가을은 언제 오는가 싶게 가버립니다.
셀로판지를 비비듯, 금빛으로 바작거리는 가을볕들은 여름내 초록으로 무성하던 잎들을 가벼이 하고 이내 색색으로 물들이더니 그마저 어디론가 데려갑니다.
오래된 집의 담장 밑에 한바탕 노란 엽서들이 한 무더기 펼쳐집니다. 잘 있으라고 적어 놓은 사연인지…. ▲ 오래된 집의 은행나무
떡갈나무는 황록의 마른 잎들을 날립니다. 모든 게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정든 것들을 떠나갑니다.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말라붙은 개울은 산 그림자에 덮여 어두워지고, 이따금 은화처럼 반짝이는 피라미를 튕겨내더니 거기 얼굴을 비춘 단풍만 곱게 얼굴을 붉힙니다. ▲ 단풍
열매를 거두어들인 나무들은 일제히 잎을 물들이고 떠날 짐을 꾸립니다. ▲ 밤나무
청솔모며 다람쥐며 겨우내 먹을 열매를 나눠주던 밤나무는 새벽부터 배낭 메고 나타나 작대기로 후려갈기던 사람들을 위해 은은히 물드는 나뭇잎 몇 장 남겨 두었지만 사람들은 쭉정이만 남았다고 발로 걷어찼습니다.
봄이면 허리에 구멍이 뚫리어 단물을 빼앗기던 고로쇠나무는 벌써부터 퍼렇게 질려 후들거립니다. ▲ 고로쇠나무
여름내 행락객으로 부산하던 물골은 이제 고요히 문을 걸어 잠그고 긴 겨울잠에 들 채비를 합니다. ▲ 억새
여름내 달구 할배가 흑염소를 숨겨 놓고 풀을 먹이던 고래논자리에 억새꽃이 바람에 하얗게 흔들리며 피리 소리를 냅니다.
강남 사는 부자가 지었다는 한옥 뒤에도 예나 다름없이 가을은 깊어가고 ‘솨아솨아’ 파도소리를 내며 낙엽송은 노란 갈비들을 내려놓습니다. ▲ 한옥과 낙엽송
읍내 나가는 막차를 기다리던 경수가 무심히 뜯어대던 신닥나무 잎이 허술해질 무렵, 겨울은 벌써 버스보다 먼저 달려와 하얗게 시린 입김을 곱은 손에 내뿜고 있었습니다. ▲ 신닥나무
이 기사는 광주뉴스와 남양주뉴스간 협약에 의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