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야생동물의 전설이 된 '악어사냥꾼'

"야생동물 챔피언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밀림의 왕' 타잔이 아니다. 야생동물의 일원이 되어 함께 살았던 '악어사냥꾼(Crocodile Hunter)' 스티브 어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 호주 환경전문가 로버트 카튼

"어윈은 1년 내내 카키색 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나서 자동차가 악어보다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 친구 주디 데이비스

"스티브 어윈의 죽음을 믿기도 어렵지만, 아이들에게 어떻게 그의 죽음을 알려야할지 막막하다. 그는 아이들의 우상이었다." - 미국 ABC-TV와 길거리 인터뷰를 가진 주부

카키색 반바지 차림의 호주 No.1 유명인사

이 기사는 광주뉴스와 오마이뉴스간 협약에 의해 게재한 기사입니다.
1년 내내 헐렁한 카키색 반팔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갈색 작업화를 신고 호주 야생동물의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세계적인 명성의 야생동물보호가인 스티브 어윈(44)이 해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호주국영 ABC-TV는 긴급뉴스를 통해 "9월 4일 오전 11시쯤(호주동부 시간), 퀸즐랜드 주 북쪽 포트 더글러스 인근해안의 산호초에서 '바다에서 가장 위험한 것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노랑가오리를 촬영하다 가오리의 가시에 찔려 사망했다"고 보도하면서 "노랑가오리의 꼬리에는 맹독이 들어있다"고 전했다.

스티브 어윈은 지난 10여 년 동안 호주의 상징이었고 열정이 넘치는 환경운동가였다. 호주의 모든 TV는 정기방송을 중단하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긴급뉴스로 전했다. 로이터, BBC, CNN 등도 전 세계를 향해서 스티브 어윈의 죽음을 긴급 타전했다.

1992년에 시작된 TV프로그램 <악어사냥꾼>을 통해 악어, 뱀, 캥거루 등 호주의 야생동물의 생태를 소개해온 어윈은 이 프로가 전 세계의 120개 국가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의 전파를 타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2004년,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했을 때 제일 만나고 싶은 호주사람으로 꼽을 정도였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스티브 어윈의 별명이자 프로그램 타이틀 '악어사냥꾼'은 그의 직업이 아니다. 악어를 사냥해서 생계를 해결하는 악어사냥꾼은 따로 있다. 야생동물의 세계를 다루는 TV프로그램 진행자인 스티브 어윈은 거칠기 이를 데 없는 악어를 손으로 잡는 모험을 시청자에게 선보이는 엔터테이너일 따름이다.

'악어사냥꾼'이라는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악어보호운동에 최선을 다한 스티브 어윈은 악어 생태계를 시청자들에 소개하면서, 스릴 넘치는 즐거움과 함께 악어에 대한 지식을 전하고 '악어사랑'까지 당부하는 악어보호운동의 전도사였다.

동물들과 함께 지낸 어린 시절

   
▲ 기네스북에 최고령 거북이로 기록된 '해리엇'과 함께 한 스티브 어윈 부부.  ⓒ 퀸즐랜드 관광청
1962년 빅토리아 주에서 파충류를 좋아하는 농부의 외아들로 출생한 스티브 어윈은 8살 되던 해에 부모를 따라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동물원'이 있는 퀸즐랜드 주 선샤인코스트로 이사했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파충류 공원을 만들어서 관광객들에게 공개하는 농부였는데, 농사일에 바쁜 부모 대신 어린 스티브가 뱀, 거북이, 거미 등을 돌보면서 성장했다. 그는 자연스레 동물을 좋아하는 자연친화적인 환경운동가가 됐으며 본격적인 호주 야생동물원 건립을 꿈꾸었다.

아버지가 만든 파충류 공원에는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동물로 알려진 176세의 '다윈 거북이'가 살았다. 2006년 6월 24일, 심장마비로 숨진 이 거북이는 영국의 진화론자 찰스 다윈이 기른 것으로 유명했다.

'해리엇'이라 불린 이 거북이는 다윈이 1835년 갈라파고스 군도를 탐험할 때 발견, 영국으로 데리고 온 세 마리의 거북이 중 한 마리로 1840년대, 성장에 한층 더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호주로 보내져 나중에 스티브 어윈과 함께 살게 됐다.

해리엇이 죽은 날, 스티브 어윈은 "어렸을 때 함께 자란 해리엇을 항상 가족처럼 생각해왔다. 그나마 고통 없이 죽은 것이 다행이지만 가족을 잃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고 슬픔에 잠긴 바 있다.

1992년, 스티브 어윈은 미국출신의 동물학자 테리 어윈과 결혼하면서 그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는 허니문 자체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호주 동물원'에서 지내면서 야생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TV자연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테리 어윈은 세계적인 자연다큐멘터리 채널인 <디스커버리>에 그 테이프를 보내서 '애니멀 플레넛' 프로그램의 '악어사냥꾼' 코너로 방영하게 만들었다.

스티브 어윈이 진흙구덩이에서 악어와 씨름하는 생생한 장면이 TV에 방영되자 미국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모았다. 그는 단숨에 호주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올랐고, 그후 14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호주사람이 되어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 아기를 안고 악어에게 먹이를 주는 문제의 장면.  ⓒ 채널7 화면 캡처
의욕이 넘쳐서 발생한 해프닝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스티브 어윈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2004년 아들 밥을 얻은 기쁨에 들뜬 그가 길이 4m에 육박하는 대형 악어 앞에서 갓난 아들을 흔든 것. 호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아동학대 논란을 불러일으겼다.

사건은 자신의 동물원에서 악어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에 벌어졌다. 사나운 악어를 약 올리며 먹이를 던져주는 어윈의 왼쪽 팔에는 생후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갓난 아들 밥이 안겨 있었다. 마치 가수 마이클 잭슨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자신의 갓난아기를 흔든 사건을 연상시키는 순간이었다.

스티브 어윈은 그 당시 "밥이 한 살밖에 안됐지만 벌써 악어훈련을 시작했다"며 카메라 앞에서 우쭐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 위험한 쇼가 방송을 타고 나가자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급기야 아동보호단체들이 어윈을 고소하자 그는 즉각 "나는 나쁜 아버지였다"고 사과했다.

악재는 겹치는 법, 2004년은 스티브 어윈이 두 번씩이나 구설수에 오른 해였다. 남극에서 역시 TV자연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규정을 어기고 펭귄에 너무 가까이 접촉하는 등 동물에게 큰 스트레스를 줬다고 비난받은 것.

충격에 휩싸인 호주 온통 애도 분위기

   
▲ '악어사냥군' 스티브 어윈이 딸 빈디, 아내 테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퀸즐랜드 관광청
스티브 어윈의 충격적인 사망소식을 긴급뉴스로 접한 호주국민들은 처음엔 "허구한 날 악어, 뱀 등과 지내더니 마침내 사고를 당했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가 악어에 물리거나 독사의 공격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한 것.

그러나 '호주에서 가장 억센 남자'를 쓰러트린 건 어처구니없게도 악어와 뱀이 아닌 바다 속을 평화롭게 수영하던 가오리였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유족으로 아내 테리(42)와 딸 빈디(8) 아들 밥(2)을 남겼다.

국회 회의 도중에 기자회견을 가진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스티브 어윈은 호주사람의 강인한 기질을 보여준 호주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너무 큰 보물을 잃었다"면서 조의를 표했다. 킴 비즐리 노동당 당수도 "그는 전 세계인들에게 호주의 자연을 친숙하게 만들어준 최고의 민간외교사절이었다"고 회상했다.

한편 스티브 어윈의 활동무대였던 퀸즐랜드 주의 피터 비티 주 총리는 "미국을 여행하다보면 그의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호주 총리는 몰라도 스티브 어윈을 모르는 미국인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스티브는 퀸즐랜드를 따분한 곳이 아닌 야생동물의 보고로 알렸다. 미국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야생동물과 함께 사는 그를 보기 위해서 퀸즐랜드로 몰려왔다. 가족이 동의한다면 퀸즐랜드 주 장례식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전설이 된 '악어사냥꾼' 스티브 어윈

그는 늘 죽음 쪽으로 한 발을 내딛은 모험가였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그의 용기와 모험심에 격찬을 보냈지만 그에게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곤 했다. 그러나 그의 20년 친구이자 15년 동안 매니저로 일한 존 스테인톤은 "스티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Steve had no fear of death)"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스티브가 다닌 현장은 항상 위험했다. 그는 늘 조금이라고 더 리얼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애썼고 그래야 시청자들에게 야생동물의 진짜 생태를 알려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운명적으로 그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마지막으로 찍은 필름이 딸 빈디가 공동으로 출연하는 '빈디의 뉴 TV시리즈'를 소개하기 위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빈디는 이미 아빠 스티브의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면서 어린이 스타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스티브 어윈의 짧은 생애가 큰 아쉬움을 자아내지만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스티브를 잃은 매니저인 존 스테인톤이 울먹이면서 들려준 다음과 같은 말이 긴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다가 죽었습니다.(He died doing what he loved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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