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광주뉴스와 오마이뉴스간 협약에 의해 게재한 기사입니다.

시작하라. 다시 또다시 시작하라.
모든 것을 한 입씩 물어뜯어 보라.
또 가끔 도보 여행을 떠나라.
자신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치라. 거짓말도 배우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만들라.
돌들에게 말을 걸고
달빛 아래 바다에서 헤엄도 쳐라.
죽는 법을 배워 두라.
빗속을 나체로 달려 보라.
일어나야 할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 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흐르는 물 위에 가만히 누워 있어 보라.
그리고 아침에는 빵 대신 시를 먹으라.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

- 엘렌 코트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

   
▲ ⓒ 오창학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오아시스를 하나씩 담고 산다. 때론 모래 언덕 하나만 넘으면 오아시스에 닿으리라 생각하고 오늘을 넘기면 희망찬 내일이 기다릴 것이라 자위하며 힘든 하루의 땡볕을 견딘다. '인생'이란 황무지에서 역설적이게도 타클라마칸 사막은 내게 오아시스였다.

살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키메라'(Chimera)를 많이 떠올렸다.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 용의 엉덩이와 꼬리를 지닌 그처럼, 하나의 몸 안에 두 개의 영혼을 담고 사는 나는 인간 키메라였다.

삶의 구심력을 놓칠세라 끝없이 안으로 안으로만 파고드는 나와, 원심력에 편승해 자꾸만 삶의 가장자리를 맴돌며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하는 또 다른 나. 허나 사람의 허울을 쓰고 숨쉬는 자, 키메라 아닌 이 그 누구랴. 누군들 현실 반대의 공간에 머물고 싶지 않았으랴. 그런데도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문제였다. 최선과 차선, 그 최선 안에서의 또 다른 최선과 차선. 위태위태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엔가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학업도 직장도 인간관계도 늘 하나의 선택을 강요했다. 또 다시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떠남을 택하기엔 동기 요인이 너무 미약하다. 누구처럼 일생일대의 변환을 꾀할 시기에 직면한 것도 아니며 직업이나 인간관계가 떠남을 강요할 어떤 처지에 놓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백 가지 이유로도 막지 못할 큰 핑계가 있었다.

'떠나고 싶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

   
▲ 타클라마칸 ⓒ 오창학
사막에 가고 싶었다. 1박2일짜리 낙타 사막패키지 말고 전인미답의 모래더미 속에 홀로 있고 싶었다. 입 속에서도 머릿속에서도 연신 '타클라마칸'이란 단어가 맴돌았다. 길을 떠나고 싶었다.

한두 시간에 닿는 그런 길 말고, 검고 찐득한 타르가 곧게 깔린 그런 길이 아닌 오직 바람과 시간만이 동행해 주는 그런 먼 길을 떠나고 싶었다. 그때부터 '실크로드'란 단어가 맴돌았다. 때로 '비단길'이라 고쳐 불러 봐도 다시 '실·크·로·드'라 되뇌게 되는 그 길이 가고 싶어졌다.

역사 위에 길을 내고 사람의 삶과 문화와 문명이 소통했던 그 곳은 더 이상 캬라반 행렬이 이어지는 몽환의 길이 아님을, 사막과 고봉준령으로 막아서며 인간의 발길을 막아서던 과거의 길이 아님을 안다.

북경에서 우루무치까지 고속도로와 철로가 뚫려 유적이란 유적엔 관광객이 들끓고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조차 석유를 파먹기 위한 직선 종단도로가 뻥하니 뚫린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 둔황의 무명 봉수대 ⓒ 오창학
그러나 내 의식 속의 실크로드는 여전히 대상들의 낙타 방울 소리가 은은하고 먼지 폴폴 날리는 그런 길이었다. 변화한 21세기 실크로드에서 천 년 전, 혹은 이천 년 전 흙내음을 맡아보고 싶어졌다.

   
▲ 7.14일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길을 나서다. ⓒ 오창학
2006년 7월 14일.

2만6000톤 육중한 '천인호'가 천천히 인천항 부두를 밀어낸다. 녀석의 선실엔 내가, 배 아래 선적칸에 '백구(白狗)'가 실려 있다. 1만6200마력 엔진의 두툼한 진동 사이로 백구도 120마력 작은 심장을 고르며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2.4톤 작은 몸에 우릴 태우고 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

백구! 긴장하라. 드디어 우린 길을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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