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발적인 비키니를 입은 낸시 랭

만든이 : 문경미 기자
방송일 : 2006.06.20
방송시간 : 5분 5초
대역폭 : 273Kbps

최근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한 팝 아티스트 낸시 랭, 그녀는 쌈지에 '낸시 랭 라인'을 만들고, 본업인 팝 아티스트와 함께 디자이너, 아트디렉터, 홍보 마케터, 모델 일을 ...

낸시 랭을 만난다고 하자 내 주변 인간들이 두 가지로 반응했다. "저도 데려가주시면 안 돼요?" 남자 후배가 말했다. 왜? 나의 훌륭한 인터뷰 기술을 배우러? 물론 아니다. 그가 궁금한 건 낸시 랭의 미모였다. 이유도 단순했다. "한 번 보고 싶다." 아무 대꾸도 안 했다. 그녀가 주는 은근 슬쩍 섹시 어필에 대해 심도 깊게 대화를 나눌 걸 그랬나? 아니면 '걸어 다니는 팝 아트'인 낸시 랭 작품 세계와 우리나라 팝 아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나이 들면 어쩔 건지 물어줘." 여자 후배가 말했다. 왜? 안티 링클 세계에 대한 노하우라도 배우게? 물론 아니다. 그녀가 궁금한 거 역시 27살 낸시 랭의 미모였다. 아니 영원할 수 없는 미모였다. 또 궁금한 것도 단순했다. "안 예쁜 애들에게 해줄 말 없대?"

역시 아무 말 안 했다. 안 예쁜 것들은 예쁜 것들에게 할 말 많지만, 예쁜 것들이 안 예쁜 것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있어봤자 이거 다. "미안해. 나만 예뻐서." 쳇. 이제는 정치인, 기자, 시인을 넘어 아티스트까지 예뻐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내겐 너무 예쁜 그녀

▲ <아티스트 낸시 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 중 일부 ⓒ 랜덤하우스중앙
낸시 랭은 특유의 아슬아슬한 초미니 스커트 차림으로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난 예쁘지 않아요." 이게 무슨 소리? 웬 겸손? 그 바람에 나도 덥석 말했다. "예쁘잖아요?" "아니에요. 난… 미치겠어요. 솔직히 나는… 보셔서 아시겠지만, 난 별로 그렇게 예쁜 얼굴 아니거든요. 동양적으로 생겼고."

그러고 보니 그런가? 천만에다. 예쁘기만 한데 뭘. 내가 뭐에 씌웠나? 그녀가 안 예쁘면…, 뭐냐? 나는 나가 죽으리? 이런 생각이 살짝 지나갔지만 안 그런 척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가 말했다. "예." 속사포로 말했다. "연예인처럼 내가 얼굴이 주먹만한 것도 아니고, 뭐 그렇게 이쁘지 않아요. 평범하게 생겼어요. 쌍꺼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들어가고 나오고 입체적으로 생긴 것도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키가 크지도 않고요. 딱 평균치 163cm이에요."

할 말을 잃었다. 나 말고 다음 질문이. 쳇. 그래도 물었다. "미모로 덕 본단 이야기가 있던데요?" 누가 그랬다. 아티스트인 그녀가 작품보다 미모로 날린다고 했다. 과대평가됐다고도 했다. 그 말 듣고…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 그런 말을 들어보나?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에요. 그런데 전 미모가 아니에요. 뭐 미모라고 단어를 칭하니까. 워낙 미술계에 인물이 없어서 그런지…" 윽. 하마터면 홀짝이던 주스를 다 뿜어버릴 뻔 했다.

"솔직히 청담동이나 압구정에 나갔을 때 제 외모는 예쁜 게 아니에요. 다만 많은 책임감이 따를 비판이 올 걸 감수하면서 아티스트로서 자기 목소릴 날렵하게 표현하고 이런데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죠. 제가 욕을 먹기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아티스트 낸시 랭이 생각하는 나만의 생각과 나만의 주관, 그런 걸 작품이나 여러 활동으로 펼치는 것 뿐이거든요. 그렇다고 내가 누구한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낸시 랭이 덕 본 건 미모일까? 재능일까? 애교일까? 새로운 스타일로 톡톡 튀는 아티스트를 잽싸게 채간 TV일까? 모르겠다. 사실 만나자마자 낸시 랭은 종이 한 장을 척 내밀었다. A4 종이엔 글씨가 빼곡했다. 뭔 글자가 이리 많나 보니? 그녀가 지금껏 한 활동과 그녀가 지금껏 한 전시회 리스트였다. 많기도 하지. 언제 이리 많이 했나? 매니저도 없이 혼자 다 한다면서? 빽빽한 글씨를 보는데 그녀가 말했다.

올해만 해도 전시가 7개나 있다고 했다. 아. 힘도 좋다. 능력도 좋지만. 그 많은 걸 하면서 어찌 이리 작품 활동까지?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이금희의 파워 인터뷰> 패널이었다. 메가패스 CF에도 나왔다. 또 케이블TV m.net의 '트렌드 리포트 必' 진행자이자, 쌈지 아트디렉터다. 그녀는 거기서 매직박스를 만들었고, <궁>에서 윤은혜가 그걸 들었다.

그뿐인가? 스포츠 신문에 패션에 대한 글도 쓰고, 얼마 전엔 책도 냈다. 제목이 <아티스트 낸시 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랜덤하우스중앙)이다. 그런데 표지부터 깬다. 표지가 낸시 랭이다. 비키니 차림이다. 팝 아트 그림이 찍힌 비키니 상의를 입은 낸시 랭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썼다. "'나는 혼돈을 조직화한다' 달리 오빠가 한 말이다. 너무 멋진 말이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따라하기로 했다. '나는 애교를 조직화한다'" 아. 미치겠다. 그런데… 하마터면 말할 뻔 했다. 나도 좀 조직화 해주면 안 되겠니?

"제가 항상 외치는 꿈 가운데 이게 세 번째에요. 서울을 런던이나 뉴욕 같은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꿈이요. 그러자면 항상 말한 대로 먼저 내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돼서 부와 명성을 손에 그러쥐어야 하는데, 내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서울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려면..."

▲ ⓒ오마이뉴스 조은미
영 아티스트를 위한 기부 파티를 열거라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누누이 말하는 꿈 세 가지 중에 세 번째를 위하여 여는 파티라고 했다. 영 아티스트를 지원하기 위한 파티. 영 아티스트를 지원해서 서울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꿈을 위한 파티. 전부터 그녀는 수차 말했다. 부와 명성을 손에 그러쥐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될 거다. 참 꿈 크다 생각했다. 그런데 꿈만 큰 게 아니었나? 통도 컸나?

사실 그녀는 특이한 방식으로 이름을 알렸다. 아티스트 낸시 랭이란 이름을 알린 건 미술 전문지가 아니었다. 패션지였다. 신문이었다. 계기도 특이했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였다. 정식 초대작가도 아니었다.

무턱대고 베니스에 간 그녀는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빨간 하이힐에 란제리 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켰다. 그리고 경찰에 연행 됐다. 홍대 미대와 대학원까지 나와서 전시회도 두 번 한 뒤였다. 그녀는 왜 갑자기 베니스에 날아가 이런 퍼포먼스를 벌였을까?

"집안이 망했어요. 난 돈벌 줄도 모르고, 관리비? 세금? 이런 게 어떻게 나가는지도 몰랐어요. 아무것도 몰랐어요. 정말 앞이 캄캄한 거예요.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내가 돌봐드릴 상황인데, 나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구요. 책임져줄 사람 아무도 없구요."

그때였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햇볕이 굉장히 찬란히 내리쬐고 있었다.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와 닿았다. 하나님이 똑같이 재능을 주셨는데, 돌아온 재능이 크게 달랐단 우화였다.

"거기서 내가 느낀 건, 내가 필름이라면 디비디(DVD)라면, 디비디 랜탈숍에서 내 디비디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빼보는 디비디가 되고 싶다. 바로 그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한테 주신 달란트가 있어요. 난 그게 아트 밖에 없어요. 난 돈 벌 줄도 모르고 사람들 비위 맞출 줄도 몰라요. 난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가 이거 밖에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아트에 올인한 거예요."

그래서 그녀는 베니스에 갔다. 그리고 올인 했다. '걸어다니는 팝 아트' 낸시 랭은 그렇게 탄생했다.

아티스트냐? 연예인이냐?

그런데 왜 그녀를 두고 말들이 많은 걸까? 아티스트라는 그녀가 속한 아트계에서 특히?

"그동안 미술계에서 해왔던 것과 굉장히 달라서요. 쇼비니지스적인 게 논란이 됐어요. 아티스트냐 연예인이냐 이런 논평이 오가고요. 이런 걸 난 너무 즐기고 있지만요. 아티스트 낸시 랭이 생각하는 모든 걸 작품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는데요. 그게 매체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른 거고, 매체가 어떤 거냐 뿐이거든요."

그녀가 똑부러지게 말했다. "공인, 공인 하는데요. 나는… 공인 아니에요. 국가를 위해서 뭘 하는 사람들이 공인 아닌가요?"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고 했다. 다들 얼굴을 알아보지만. 바쁜 날은 택시를 탄다고 했다. 택시에서 많은 걸 한다고 했다. 화장부터 여러 가지를. 뭐 사람들이 그녀가 돈을 어마어마하게 버는 줄 알지만, 차도 없고, 돈도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해요. 언니… 사진 좀 같이 찍어요. 그런데 왜냐하면요. 난 연예인이 아니거든요. 난 아티스트예요. 대중들이 아티스트 낸시 랭 현상 자체에 열광을 하고, 나를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고 부르는 것과 같아요. 요즘은 작품과 사생활과 모든 게 일맥상통하기 때문에요."

그녀는 자신을 한 줄로 표현하란 말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동영상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특유의 콧소리 나는 애교 만점 목소리로 말했다.

"큐티, 섹시, 키티, 낸시! 야아옹." 사뭇 귀여운 그녀가 다시 따박따박 말했다. "나의 메시지는 저스트 비 유어셀프. 앤 드림 고우 포릿. 꿈을 꾸고 그걸 향해 나아가세요.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되세요' 그거예요."

그걸 쌈지에서 자신이 만드는 낸시 랭 라인에 다 새겨 넣는다고 했다. 자신이 만드는 모든 것은 다 작품으로 생각해서 표현하는 거라고 했다.

"제 작품의 코드를 말씀드리자면 '사랑'이에요. LOVE. 그 사랑이 이성간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떤 절대적인 사랑을 뜻해요. 사랑, 그리고 도전이에요. 그리고 나르시시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꿈. 드림. 그렇게 네 가지가 내 미술작품, 모든 활동에 키포인트가 되는 코드, 단어들이에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거."

꿈을 꾸고 그걸 향해 나아가는 거? 그런데… 꼭 이렇게 입어야 하나?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또 과감한 노출을 꺼리지 않는 아티스트의 자세다. 물론 그래야 란제리고 비키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궁금했다. 혹시 그게 컨셉트?

"이게 곧 컨셉트가 될 수도 있어요. 왜냐면 저스트 잇 마이셀프. 낸시 랭 하고 싶은 대로 내가 표출하고 싶은 그대로를 하다보니 이게 그 자체로 캐릭터가 돼버리고 컨셉트가 돼버린 거예요. 작품을 통해서는 평론가나 사람들이 얘기가 많았어요. 물질 만능주의를 표현하고, 뭐… 페미니즘이 어쩌구 저쩌구, 이것저것 다 얘길 하는데, 듣고 보면 맞는 말들이에요. 그 말도 틀리진 않아요. 하지만 작가인 내가 이 작품을 하는 의미는 이래요. 루이비통, 건강, 여러 가지가 다 낸시 랭이 좋아하고 욕망하는 것들이에요. 그리고 터부 요기니."

터부 요기니는 그녀와 떼놓을 수 없는 작품명이다. 그녀가 만든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녀 말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금지된 존재'. 하지만 인간의 퇴색한 꿈을 이뤄주는 게 또 이들의 역할이라고 했다. 꿈을 이뤄주면 사라지는 존재라고 했다. 음… 역시 그녀의 코드는 '금기'와 '꿈'?

"내 작품 코드는 나르시시즘"

▲ ⓒ랜덤하우스중앙
그녀는 말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끝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있어요."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은 걸, 남들처럼 자제하지 않고 스트레이트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도 그런 자신이 기특하다고 했다. 그녀의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녀는 가장 행복할 때가 "꿈꿀 때"라고 했다. 그런데 그 '꿈'은 되고픈 미래를 말하는 꿈이 아니었다. 잘 때 꾸는 꿈, 자면서 꿈 꿀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꿈속에선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늘을 난다거나 바다 속에서 숨을 쉰다거나. 어쨌든 현실보다 더 자유롭다고 했다. 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우리들보다 한참은 자유로워 보이는 그녀가, 현실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걸까?

그런데! 훗날 나이 들면 섹시 큐티 할래도 할 수 없을 때가 오면, 그때의 낸시 랭은 어떻게 변할까? 지금 큐티하고 섹시하지 않은 여자들은 어쩌라는 거지? 그녀는 딱 잘라 말했다.

"미래는… 저마다 컨셉트가 있어요. 미리 알려고 하지 마세요. 지켜보세요. 관심을 갖고." 또 말했다. "내 작품 코드가 나르시시즘이잖아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예쁘든 안 예쁘든 간에 내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거예요. 그 선전 알죠? '난 너무 소중하잖아요.' 그렇듯이. 나르시시즘이 그렇잖아요."

이런. 할 말을 잃었다. 누가 예쁜 여자는 멍청하다고 했던가? 최근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딱 떠올랐다.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강한 여자는 아름답다.'

이 기사는 광주뉴스와 오마이뉴스간 협약에 의해 게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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