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그 신비를 벗긴다

불과 며칠동안의 여행으로 캄보디아를 말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남의 나라 역사를 그 짧은 기간에 함부로 함축해서 이야기한다는 자체도 어불성설이었다. 다만 여행객으로 스쳐지나가는 인상을 요약해서 스케치 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메모를 했고, 한 장면이라도 더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흔들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캄보디아는 빠르게, 또 어느 때는 어슬렁거리며 내 시야를 지나쳤다. 그곳엔 그들의 지친 삶이 보였고, 해맑은 어린아이의 눈동자도 보였다.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이념적으로 캄보디아는 과연 어느 쪽으로 보아야 할지를 분간키 어려웠다.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사고(思考)의 늪에 빠지게 했다.

그동안 얼마 되지도 않는 여행기록이지만 여행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 있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세계는 왠지 싫었다. 아니 기피를 했다는게 더 솔직한 마음이다. 저개발국가의 짙은 토속적인 모습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곳엔 인간 본연의 자태를 볼 수 있었고 그리고 그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야릇한 향내가 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동안 세 번의 인도여행이 그랬고, 네팔의 오지 탐험, 인도네시아의 이름도 없는 섬, 필리핀의 원시림, 그리고 피지 원주민들의 자연 그대로인 부락들과 전통 춤사위, 별난 음식 등등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오늘, 고대 불가사의의 유적들과 함께 국민소득 340불의 세계 다섯 번째로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를 보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1. 스콜(squall)의 장관을 눈앞에서 보다

이 기사는 광주뉴스와 오마이뉴스간 협약에 의해 게재한 기사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스콜은 누구나가 하루에도 서너 번씩은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멀리서 스콜의 전체를 본다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라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여행 내내 한번도 스콜의 진맛을 보여주지 않아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차였다. 태국의 국경을 지나 마악 캄보디아로 들어서려는 순간에 우리는 기어이 장대한 스콜을 발견했고 질주하던 버스를 잠깐 세웠다. 그리고는 이내 그 스콜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가 나왔다. 멋진 이벤트였다고 할까? 운이 좋았다.

2. 길거리의 간이 주유소?

   
▲ 지나던 외국인 승용차에 페트병의 휘발유를 주유구에 쏟아붓고 있다.
ⓒ 강인춘
처음보는 순간 우리네 상식으론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생수판매대가 아닌가 하고 유심히 살폈지만 생수같은 것은 없었다. 여기저기 올망졸망한 페트병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판매대. 그것은 휘발유를 파는 주유소(?)였다.

생수를 먹다 버린 각종 페트병에 담겨져 있는 휘발유. 오토바이용이라고 했지만 지나던 승용차도 멈추고 그 생수병을 기름 주유구에다 거꾸로 넣고 쏟아붓고 있다. 참으로 우리나라에선 꿈도 못꿀 일들이다. 위험한 휘발유를 저렇게 허가도 없이 누구나가 쉽게 팔수 있다니.

3. 오토바이엔 백미러가 없다(?)

   
▲ 오토바이 모두가 백미러가 떼어져있다.
ⓒ 강인춘
캄보디아 오토바이엔 백미러가 달려있지 않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가이드말에 의하면 새 오토바이를 사면 백미러를 떼어 집으로 가지고 간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의 거울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얘기 같지만 일리 있어 보인다. 그만큼 그네들은 생활물자가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우리네들도 옛날 전쟁 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으니.

4. 이 아이들에 캄보디아의 내일이 달렸다

   
▲ 아이들의 표정 그대로가 현재의 캄보디아를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다. 과연 이들의 내일은 언제쯤 열릴 것인가.
ⓒ 강인춘
아이들 눈은 맑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 어느 나라엘 가도 모두 한결 같다. 캄보디아의 어린아이 눈은 어떨까? 그들의 눈에 비친 외국인들은 꿈속에나 볼 수 있는 천사들일까? 그래서 "원 달러! 원 달러!" 뇌까리면서 우리네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는 걸까? 참으로 착잡한 기분이다. 차라리 보지 않을 수만 있었다면 그런대로 모르고 편안한 마음이었을텐데. 신은 참 공평하지 않다라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5. 여인과 항아리

   
▲ 항아리가 엄청 크다. 하루에도 몇번씩 내리는 빗물을 받아 마시고, 생활용수로 쓰고 있다.
ⓒ 강인춘
절대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그 집에 항아리가 세 개가 있으면 부인이 셋. 여섯 개가 있으면 부인도 여섯 명이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집들엔 으레 항아리가 두서너 개씩 있다. 잦은 전쟁으로 남자들은 많이 죽었기에 자연히 일부다처제가 되었다. 또한 캄보디아는 옛날부터 마실 물이 귀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시집갈 때 필수 지참품이 항아리였다고 한다. 빗물을 받아 걸러낸 윗물을 퍼서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도구였다. 이제 그 집의 항아리 수를 보고 집안의 부인이 몇 명이라는 표시가 저절로 되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다.

6. 지상보다 높이 짓는 가옥들

   
▲ 지상 가옥은 대부분 밀림지역에 있는데 땅에서 1미터 정도의 공간 위에 지었다.
ⓒ 강인춘
원래가 밀림으로 된 토양에다 그대로 집을 지어야했기에 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후로 땅에서 약 1미터 정도 위에 집을 짓게 되었다. 지금도 사방 천지에 득시글거리는 것이 뱀이라고 한다.

7. 사원으로 가는 길 옆의 악사들

   
▲ 지뢰를 밟아 한발 내지는 두발이 없는 거리의 악사들.
ⓒ 강인춘
앙크로톰의 바이욘사원으로 가는 길옆에 대여섯 명의 악사들이 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단체 관광객들이 자기네들 앞을 지날 때에 맞추어 그 나라의 민요를 연주한다. 나름대로의 민족을 알아보는 눈들이 있다고 했다.

시끄럽게 왁자지껄 떠들고 지나가면 중국인. 왠지 화가 난 표정들의 얼굴들이면 한국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대면 일본인. 아니나 다를까 우리네가 지나치니까 금방 '아리랑'곡으로 바뀌었다. 한국인처럼 정 많은 사람들이 모른 체하며 어찌 그냥 갈 수야 있었겠는가. 참! 이 악사들 모두 캄보디아의 밀림에서 지뢰를 밟아 다리들을 잃어버린 피해군인들이라고 했다.

8. 결혼식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 한가로운 사원에 나와 결혼식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평화를 볼 수가 있다.
ⓒ 강인춘
이렇게 싱싱한 젊은이들 때문에 캄보디아엔 그나마 희망이 보인다. 가난하지만 오늘 하루는 비록 빌린 옷일 망정 모두들 결혼식 예복을 입고 사원으로 나와 결혼식 사진들을 찍는 모습에서 그들의 평화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신랑 신부와 들러리들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모두들 흰옷 정장들을 입어서.

마지막으로 캄보디아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이 기사는 광주뉴스와 오마이뉴스간 협약에 의해 게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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