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풍속도, '임대 애인' 유행

"본인은 혼자서 외롭게 칭런졔(情人節, 밸런타인데이를 칭하는 중국식 표현)를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여자친구를 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도 혼자서 외롭게 칭런졔를 보내고 싶지 않다면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칭런졔를 함께 보내는 데 대한)수고비는 500위안(한화 약 4만5천원)입니다."

"여자친구를 임대해서 함께 칭런졔를 보내고 싶음. 24세, 키 크고 잘생김. 현재 대학원생. 모든 비용 다 부담함. 이후 관계는 인연에 맡김"

"칭런졔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봄기운이 솟아나고 사랑이 가득한 축제의 날에 (저와)함께 보낼 임시 애인을 찾고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비용은 각자 더치페이. 요구사항: 4년제 대학 이상의 학력과 고상하고 지식이 풍부한 매력적이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뜻있는 사람만 연락하기 바람"
 

이 기사는 광주뉴스와 오마이뉴스간 협약에 의해 게재한 기사입니다.
밸런타인데이를 며칠 앞두고 중국 내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나붙은 '애인 구함' 광고들이다. 혼자서 '꿀꿀하게' 보내느니 인터넷 광고를 통해서라도 하루를 달콤하게 해줄 '임시 애인'을 구해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광고들은 매년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중국 인터넷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비단 밸런타인데이가 아니어도 '애인 구한다'는 광고는 도처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최근 달라진 양상이라면 이른바 '임대 애인'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점이다.

"나를 임시 애인으로 '경매' 임대합니다"

지난해 말, 중국의 한 인터넷 블로그에 아주 '흥미진진한' 내용의 글이 떴다. 베이징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 여성이 자신을 '임대한다'는 공개선언을 한 것이다.

이 여성은 "혼자 지내는 도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방식으로 나를 빌려주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나와 같은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진 수준 높은 남성과 함께 춘절과 칭런졔를 지내면서 따뜻하고 달콤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유로 자신을 임대하는 가격은 경매방식을 취한다고 했다.

자신을 24살이라고 밝힌 그녀는 인터넷 블로그에 사진도 버젓이 공개했는데, 이러한 '임대'방식을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세밑이 다가오자 적막함과 서글픈 감정이 들면서 갑자기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 '의지할 사람'을 찾는 방법 중 하나로 자신을 '경매 임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 광고가 나간 뒤 72시간 내에 최고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낙찰'한다고 덧붙였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그녀의 이 '희한한' 임대 광고가 나간 뒤, 그녀를 임대하는 하루 최고 경매가격이 10만 위안(한화 약 1300만 원)을 기록했는가 하면, 일주일 임대하는 최고 경매가격으로 100만 위안(한화 약 1억3천만 원)까지 제시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낙찰'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공개 경매 임대 선언'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언'이 실린 자신의 블로그를 폐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임대 애인'은 밸런타인데이인 칭런졔의 새로운 유행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밸런타인데이 앞두고 너도나도 '임대 애인'

   
▲ 베이징 왕푸징 거리에서 열린 밸런타인데이 행사.ⓒ 박현숙
중국에서 칭런졔는 연인들뿐만 아니라 춘지에(설날) 이후 최대 특수를 노리는 상인들의 행복한 축제일이기도 하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 호텔과 식당 등에서는 밸런타인데이 특수를 노리는 각종 고가 상품들이 선보여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한화 1천만원이 넘는 하룻밤 상품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의 한 상점에서는 순백금으로 만든 밸런타인데이 장미가 19만9999위안(26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것은 단연 '임시 애인 임대' 광고의 유행이다. 칭런졔 한 달 전부터 중국의 주요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각종 크고 작은 사설 게시판, 블로그 등에는 "칭런졔를 함께 보낼 애인을 구한다"는 광고가 범람했다. 그중 상당수는 돈을 주고서라도 애인을 임대하거나 임대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포털 사이트 왕이(網易)는 찬반논쟁 게시판을 만들기도 했는데, 찬성하는 사람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냐. 사람은 당연히 즐겁게 살아야 한다. 애인을 임대한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라는 입장을 보인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임대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감정마저 사고파는 최근 젊은이들의 세태를 비난했다.

'임대 애인'이 성행하자 최근에는 '애인계약서'까지 나오고 있다. 이 '애인계약서'는 밸런타인데이 등에 하루 동안 애인을 임대하거나 자신을 임대한 당사자들간에 체결하는 계약으로, 게약자들 가운데는 계약의 법적 효력을 위해 공증까지 받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국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애인계약서' 내용을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 앞에서, 여자측은 반드시 자주 애정 어린 눈길로 남자 측을 바라봐야 하고 정감어린 표정과 태도를 보여야 함. 매번 외출할 때, 여자측은 남자 측의 친척이나 친구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반드시 남자 측의 팔짱을 끼고 친밀감을 나타내야 함. 허점을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남자 측의 친척이나 친구가 같이 있을 때는 남자측이 짧은 시간동안 여자 측의 어깨를 안을 수 있음. 남자 측이 여자 측의 어깨를 안을 수 있는 시간은 매번 5초를 넘겨서는 안 됨. 남자 측의 친구나 친척들이 없을 때 남자측은 반드시 여자 측과 0.8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함. 서비스 시간이 끝났을 때는 서로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치근덕거려서는 안 되며, 이 일에 대한 절대적인 비밀을 지켜야 함."

사랑도 사고파는 중국의 신풍속도

"친애하는 누나 혹은 여동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본인은 아직 여자친구가 없기 때문에 해마다 설날 고향에 갈 때마다 부모님의 잔소리를 한바가지 듣습니다. 올해는 여자친구를 임대해서 함께 고향에 가 설을 쇠고 싶어요. 기간은 4일입니다. 절대로 친밀한 관계가 발생하지 않을 것과 당신의 비밀을 지켜드릴 것을 맹세합니다. 제 핸드폰 번호는 1390139 *****."

   
▲ 중국에서는 춘절이나 발레타인데이때 '임대 애인'이 유행하고 있다.ⓒ 박현숙
역시 인터넷에 실린 '임시 임대 애인'을 구한다는 광고다. 춘지에를 앞두고 급히 가짜 여자친구가 되어줄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인데, 중국에서는 미혼자녀가 춘지에에 결혼한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고향에 데려가 부모와 친척들에게 인사시키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다.

최근 중국 내 고령의 미혼남녀가 증가하면서 이들이 임대 애인 광고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춘지에 때마다 '애인을 데리고 오라'는 부모들의 잔소리를 일시적으로 피할 요령으로 '임대 애인제' 유행에 동참한다는 것. 칭런졔를 앞두고 유행한 '애인 임대' 역시 고령 미혼족들의 '발상의 전환'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국 <남팡뚜스빠오(南方都市報)>에 따르면, 최근 선전(深川)의 몇몇 결혼중개업소에서는 본격적으로 '애인 임대' 업무를 개시했다고 한다. 아직 애인이 없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급히' 임시 애인이 필요할 때, '고객'의 요구조건에 따라 애인을 임대해 주는 신종 사업이다. '임대 애인'의 학벌과 외모 등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임대 전에는 당연히 계약서를 작성해 상대방의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임대 애인'이 유행하고 심지어 자신을 임시애인으로 '경매'하기까지 하는 현상이 새로운 풍속도로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도 커가고 있다. 대부분은 '사랑도 사고파는 상품이 된 시대'를 통탄하는 내용이다. 한 네티즌은 "지금 시대는 아마도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경매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영원히 사고 팔수가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기초가 물질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사랑의 감정은 물질위에서가 아니라 영원히 사랑위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라며 사랑의 '상품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1978년, 문화대혁명의 악몽에서 벗어나 막 개혁개방이 시작되었을 때 당시 중국사회에서 가장 유행한 것이 '연애'였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사회분위기가 자유연애를 공개적으로 할 수 없게끔 만들었던 탓에, 연애는 중국인들이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최대의 갈망이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에는 다시 '연애'가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유행하는 연애는 억눌린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소비'로서의 연애다. 밸런타인데이를 맞는 중국의 청춘남녀들에게 사랑 혹은 연애 감정은 이제 돈을 주고 빌리거나 빌릴 수 있는 '소비상품'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오늘, 베이징 거리에는 '사랑찬가'가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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