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의 제12회 월간문학상을 수상한 김한섭 광주문인협회 회장의 글을 소개하려 한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광주뉴스 지면에 ‘살며 살아가며’ 라는 코너를 통해 우리와 친숙해진 그의 글은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고 참척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 광주뉴스 독자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  “요즘 잘 안 보이던데 어떻게 지내는 겨?”  ]

 

‘요즘 잘 안 보이던데 어떻게 지내는 겨?’

‘하는 거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선배님!’

그러자 대뜸 ‘ 불러 줄 때가 좋은 겨, 나이 들어 늙어지면 오라는 사람도 없지’ 라고 했다.

 

퇴직과 함께 정들었던 30년간의 수원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퇴촌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7년이 흘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만나 다정한 이웃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사람 냄새를 느낀다. 다 지나간 옛 일이지만 현직에 있었을 때의 무용담(?)을 전하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임에 틀림없다.

 

흔히 퇴직 후의 삶을 ‘인생 2막’ 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쉴 틈 없이 살아왔기에 퇴직 후 인생 2막은 속박되기보다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자신만의 삶이어야 한다.

가까운 곳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의미하는 ‘소확행’의 삶을 주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순히 제품의 성능이 아니라 가격 대비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을 중시하다는 의미의 ‘價性費 보다 價心費’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삶이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조직 내 적응을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업무가 어깨를 억누르는 강박관념 속에서 40년 공직을 감당해 왔다. 봉사를 숙명으로 하는 공직의 특성으로 인해 늘 긴장의 연속인 시간이었음도 부정하지 못한다.

 

이제 나이 70을 바라보며 인생 2막, 체면치례에 집착하거나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태도는 황혼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품 없는 그대로의 그릇’ 을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고향의 이웃과 함께하는 지금이 바로 인생 2모작 황금기가 아닐까?

 

‘백수가 과로사 한다’ 라는 말이 있다.

퇴직 후의 보잘 것 없는 삶이지만 지역 여러 단체에서 활동을 권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직에서의 경험을 함께 공유와 더불어 지역사회에 뭔가 기여하기를 바라는 요청이기에 거절하기가 대략 난감하다.

일상적으로 여겨졌던 공직에서의 일처리 방식과 경험들은 지역사회단체와 행정기관간의 가교 및 완충 역할이 가능하다는 믿음 또한 동참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성격과 맞물려 꽤 많은 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 문화 발전을 이끌어가는 문화원 및 문인협회 활동이 바로 그것이다.

모교의 총동문회 회장 및 주민자치위원회 고문 등도 봉사를 통해 애향심을 갖게 해 주는 귀한 직책이다.

고향 퇴촌에서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와 수원에 있는 경기도청의 옛 동료와 후배들의 부름(?)으로 한 잔 하러 가는 시간이야말로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기에 충분하다.

전철을 이용, 광주에서 수원까지 2시간 반은 족히 걸리지만, 이동하는 내내 이런 저런 생각에 젖을 수 있어서 좋다. 자가용 보다는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것 또한 퇴직 후의 달라진 삶의 모습이다.

 

밥 한 끼 먹으러 긴 시간을 가느니 차라리 저간의 사정을 전하고 가지 말라는 아내의 핀잔도 듣지만 퇴직한 지 벌써 7년이 지난 보잘 것 없는 노쇠한(?) 사람을 불러 줄 때는 버선발로라도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득 노사연의 노래 ‘바램’의 가사가 떠오른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지금이야말로 ‘인생은 70부터’ 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삶을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배우고 익히며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는 것, 비움의 실천을 강조한 이 시대의 명심보감 논어 1장 학이(學而)편 내용을 다시금 음미해 본다.

배우면서도 익힌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兒)

벗이 먼 곳에서부터 오고 있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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