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재열 동원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국가적인 재난에 관대하던 시민들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대표적인 전달체계인 보건소의 본래 기능은 일반 시민에게는 마비된 지 오래되었다.

노인들이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기다렸던 보건소는 문이 굳게 닫혔다. 초기 기능이었던 감염병 예방에만 전 자원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들이 일상에서 누리던 공공의료 서비스가 2년째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만 참으면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서서히 불안으로 바뀌고 있다.

아직은 다행히 코로나19의 문제 말고는 새로운 의료적 재난이 닥치지 않고 있지만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에서도 이전으로의 회귀의 가능성은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에 대한 공공의료 수준의 체감 도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인 2000년도 이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공공의료의 정의는 ‘공공재정으로 생산하는 의료’로서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법률로 ‘공공의료기관이 생산하는 의료활동’으로 협의의 정의를 하고 있다. 실로 공공재란 원칙적으로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의 두 가지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공공재적 차원의 공공의료를 볼 때는 ‘공공재로 운영하는 의료형태’가 맞을 듯하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정책 적용에 따라 의료제도는 공공의료보다 민간 의료의 시장적인 차원의 전달체계를 선호하게 되고 확대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시장에 따라 경합성이 강조되고, 비효율적인 시장에는 배제성이 적용되어 가게 된 것이다.

복지국가는 이러한 시장의 실패로 인한 불평등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완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하는 나라이다. 사회보장정책은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그리고 사회서비스 정책으로 나누어 운영되는데, 그중에서 공공재적인 정책은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정책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복지제도가 급속하게 발전되고 확장되어왔다.

그에 따라 국민의 복지에 대한 Needs(욕구)도 날로 커졌고, 그와 병행하여 욕구 충족에 대한 불만족도 증대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 속에서도 노인, 아동, 여성, 장애인, 빈곤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은 국민의 요구에 맞추어 정책에 반영하고 수정하며 놀랍게 발전하여왔다.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사회복지 영역은 나름 꾸준히 성장세를 지속하였다. 그에 비해 보건의료 영역은 부족한 부분을 무관심 속에서 시장이라는 그늘에 감춰져 왔다.

그로 인해 공공의료는 치료 위주의 정책에 치우쳤고, 국민의 의료서비스는 민간 의료체계에 의존하여왔다. 세계적으로 놀라운 체제로 평가 받는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국가가 사회보험으로서 국민의 의료서비스를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에 의한 보건 의료정책은 공공재적인 통제 수단에 의해 공공재로서 작동하지만 그 전달체계는 민간위탁에 의한 의료정책이어서 순전한 공공재로서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 또한 민간 의료체계는 각각이 독립적이어서 통합적인 공공재로서의 관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통합적인 공공의료를 실현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회보장으로서의 공공의료는 의료급여의 정상화와 평등성 확보에 그 의의를 둔다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공공부조 대상자로서의 의료급여 수급자뿐만 아니라 정상화 차원의 의료 사각지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건의료에 대한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건강권이다. 모든 국민은 이 권리에 주목해야 한다. 100세 시대,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을 인생 최대의 웰빙(well-being)이라고 여기는 시대에 공공의료의 목적과 수준은 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는 공공의료의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K-방역이 우수함으로 호평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것은 국민의 위기 대처 역량에 점수를 더 주어야 할 것이고, 시스템적으로는 공공의료시설의 부족 현상에서부터 지역 간의 불균형, 공공 의료체계의 부실함을 보아야 했다. 이번에 나타난 허점으로는 공공의료기관의 양적 부족으로 위기 대응에 적절한 대처가 어려웠던 점과, 지역사회 공공 의료체계가 유사시에는 민간 의료체계를 공공재화 하는 전달체계의 시스템적 결속력의 부족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지역간 공공 의료서비스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농어촌지역과 도농복합지역 의료서비스의 공백상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수도권 외곽지역의 중소도시에 지방정부 차원의 적절한 의료서비스의 제공이 필요하고, 장애인, 아동,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도 수도권과 동일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접근성과 이동의 용이성을 보장받는 대안이 공공 의료적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가장 바람직한 공공 의료체계는 지역별 연대로 권역을 형성하여 지역에 맞춘 공공의료시설과 민간 의료시설을 균형 있게 확충 배치하여 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권역별 지방자치단체별 보건소의 기능을 확대하여 기존 치료중심의 운영에서 공공보건의료의 목적 실현을 위한 관리 운영의 중심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안에서 민간의료기관과 시스템적인 관계를 형성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문재인 케어가 약속하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의료서비스를 도시권 이외의 지역에서도 공공의료를 통해 충족하는 공공의료기관의 확충이 필요한 사항이다. 더불어 민간을 주도할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역량강화를 위한 의료전달체계 재편도 반드시 필요하다.

공공의료의 취약으로 인한 문제는 의료기관의 분포가 수직적, 수평적으로 불균형을 가져온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의료기관 간 기능 중복과 비효율적인 경쟁, 지역 간의 의료서비스 질 차이 발생, 지역별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의 문제 발생과 국가적 재난 재해 응급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사회보장 즉 안전망의 부재로 이어진다. 더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감염병 발생 시, 의료공백이 발생하여 국민의 건강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공공보건의료의 강화와 확대를 시행해야 한다.

복지국가는 국민의 문제를 진단하여 해결방안을 제공하고 국민의 요구를 미리 알아 충족시켜 주는 나라이다. 더 나아가 국민건강 문제를 해결하여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웰빙을 실현하기 위해서 향후에는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케어와 연계를 통한 공공의료의 정보화 운영으로 국민 맞춤식 공공의료를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의료에 양적 질적으로 충분한 투자가 검토되어야 한다.

이제는 양적 질적 확충에 대한 공공보건의료의 편익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분석하고, 지역에 맞는 공공의료 확충에 나서야겠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향하는 우리의 과제이다.

저작권자 © 광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