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너른고을문학회 허정분 시인

지난 14일 너른고을문학회 ‘인생을 글로 그려내는’ 허정분 시인을 만났다.

그녀의 시는 한 편의 일기를 읽는 것 같으면서도 그림보다 더 섬세하게 표현되는 것이 글로 그림을 그리는 하이퍼리얼리즘 시 같았다.

이번 허정분 시인의 시집 ‘바람이 해독한 세상의 연대기’는 허 시인이 세상을 향해 떨어트린 물감의 색을 알 수 있었다. 때론 초록색의 따듯함으로 때론 빨간색의 명료함으로 허 시인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시래기 죽

아버지가 병석에 누운 우리집이
생나무 우족으로 불을 땝니다
흰 눈발 날리고 양식 떨어지고
땔감 떨어진 부엌에서 어머니가 때는
청슬가지 타다닥, 타다닥, 매운 연기에
끼니때마다 어머니가 웁니다
아궁이 가득 맴돌던 흰 연기
수증기처럼 시렁에 얹히지만
검은 노구슬 펄펄 끓는 시래기죽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맹꽁이처럼 부르던 배
그 꿀맛 같은 식곤증에 빠져
우리 삼남매 낡은 이불을 덮고 누웠습니다
<‘우리 집 마당은 누가 주인일까’에서>

허정분 시인은 강원도 홍천 출생으로 청년기에 중매로 능성구씨(綾城具氏) 집성촌인 곤지암의 한 마을로 1972년 결혼하면서 호적을 옮겼다. 조상님을 비롯해 남편과 아이들의 오래된 문중 고향 마을이다.

마을이 발전하면서 집성촌의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아직도 봄가을 시제사와 입향 시조 조상님이 조선조 영의정 벼슬까지 하셨으면서도 사후에 청백리 재상으로 천거되신 구치관(1406년~1467년)공의 음덕으로 나라에서 하사한 사패지로 이 마을 후손들이 세거했던 마을이다.
 

시(詩)와의 인연

허 시인은 초등학교 시절 문예반 선생님이 노벨문학상을 타면 상금이 트럭으로 하나는 된다는 말에 현혹되어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허 시인은 “집이 너무 가난해서 끼니를 거를 정도였다. 책 읽기는 무척 좋아했으며 한글을 깨치면서 눈에 띄는 글자는 무조건 읽었다”며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학력으로 또 결혼과 동시에 태어난 자녀들과 우리 가족의 생활의 터전이던 작은 가게(슈퍼)를 운영하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문학에 대한 갈증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내 나이 40대 후반부터 틈새 시간을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허 시인은 광주문화원에서 열린 백일장에 입선하면서 문화원과 인연을 맺고 백일장 동기들과 1996년 광주 최초의 문학단체인 너른고을문학회(현 한국작가회의 광주지부)를 창립했다.

첫 시집<벌열미 사람들 1998>을 내면서 운영이 안 되는 가게를 접고 좋은 시를 많이 읽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Q. ‘두부 한 모 때문에’란 시(詩)가 기억에 남는 데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A. 이 시는 제가 구멍가게를 할 때 새로 이사 온 아낙이 사 갔던 두부를 도로 가져오면서 썼던 일종의 후회가 남은 자책 시입니다. 단돈 오백원짜리 두부를 그땐 왜 그렇게 생활도 마음도 팍팍했는지 부끄럽네요. 얼굴도 잊은 그 아낙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시와 회원들의 시로 2003년 너른고을문학이 영은미술관에서 선보인 시극 “너른고을 호박씨 까기” 시인들의 반란이란 연극이 하루 두 번 단 하루로 끝난 공연이 있었습니다. 몇 달에 걸쳐 연습하고 무대에 올려 지역 인사들과 시민들의 대대적인 호평을 받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넘쳐나는 문화의 홍수로 전문배우 아니면 기억도 못 하지만 최초의 시극을 우리 지역에 선보였다는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Q. 블로그에 본인 소개를 ‘손녀바보시인할미’라고 표현하셨는데, 허정분 시인에게 손녀와 가족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A. 제가 맏며느리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구멍가게라는 생활터전 때문에 우리 아이들을 시부모님이 기르다시피 하셨습니다.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지만, 자녀 삼 남매가 부모님 덕분에 그래도 올바른 인성을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생활전선에서 밀려나고부터 결혼한 아들 딸이 맞벌이 부부여서 제 품에 안겨주는 손자녀와 동고동락을 하는 생활이 십여 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아파트 층간소음이라는 다툼으로 연년생 어린것들이 크는 큰딸네 식구들이 힘들다고 해서 우리 집 지붕에 이 층을 올리고 이사를 오도록 했습니다.

아들 손녀들과 여섯 아이들이 제게는 너무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입니다. 첫 손녀가 태어난 기쁨을 표현한 시로 <울음소리가 희망이다>를 시집 제목으로 해서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온 가족이 가장 귀하게 보살피고 끔찍이 여겼던 선천적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다섯째 어린 손녀가 2018년 지구별에 온 지 86개월 만에 갑자기 초등학교 등교하는 첫날 하늘나라 별이 되었습니다. 걷기도 힘든 장애를 타고났지만 천재화가라고 할미가 위했던 아기별이 된 손녀가 그린 그림과 할미가 쓴 시가 2019년에 경기문화재단 문학창작공모에 선정되어 <아기별과 할미꽃> 이란 시집을 펴냈습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깊은 슬픔으로 꿈속에서 현실에서 날마다 손녀 이름을 호명하며 가슴에 품고 살지만 하늘만 바라봐도 제 잘못 같습니다. 이세상의 어린 아이들을 모두 귀한 존재입니다. 사랑받고 보호해야할 의무가 어른들 몫 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어린이들의 학대와 사망소식을 접할 때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이 가족이 존재해야 행복도 있다고 여깁니다. 

지금은 이 층의 손자녀와 또 학교에 안 가는 날이면 할미에게로 오는 큰 손녀와 뒹굴며 살다 보니 친구도 되고 할미도 되어서 손녀와 함께 블로그를 꾸며야지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분난 제 시를 소개하는 스토리텔링 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100여 편 정도가 되면 다시 퇴고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Q. 허정분 시인에게 시(詩)란,

A. 제가 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발표도 하고 시집도 냈지만 詩라는 글자 앞에서는 언제나 울렁증이 있어서 대답이 어렵습니다. 저는 시를 쓰는 개개인의 감성과 사유와 언어의 순정함이 한 편의 시로 쓰인다고 생각합니다.

전업으로 시를 쓰는 시인도 아니고 어떤 문학적 수업을 받은 글쟁이도 아닙니다. 운명이니 시인이니 하는 말도 부담스럽습니다. 오히려 평생을 삶이란 명제로 온갖 일을 져 나른 일 중독자가 맞는 별칭입니다. 시를 신주 모시듯 쓰고 사모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만약에 시가 제 곁에 없었다면 허정분이라는 이름 석 자는 아무개 엄마로 불리다 잊히겠지요.

아직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지 않았을 때 떠돌이 약장수가 제 이름과 생년월일로 풀었다고 흘린 말 “天文”이 세 개나 들었다는 그 말을 그때는 뜻도 몰랐습니다. 글 밭에 펜을 든 지 스무 해가 넘는 세월에 세상으로 내보낸 시와 제가 쓴 한 구절의 문장이 지극히 평범한 힘든 이웃들이 받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다 마감하는 生이었으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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