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불교 실천도량 법광사 주지 청안 합장

법광사 주지 청안 합장
법광사 주지 청안 합장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소 기운이 경박한 줄을 알았고,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낭비했음을 알았고,
문을 닫아 건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에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고,
정을 쏟은 뒤에야 평소의 마음 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다.”

명나라 진계유(陳繼儒)가 지은 안득장자언(安得長者言)에 있는 시의 한 구절이다. ‘~뒤에야 알았다’라는 말처럼 지금 이 순간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어디를 향해 치닫고 있는지를 오롯이 알아차림 할 수 있다면 삶이 더욱 밝고 맑아지게 될 것이다. 내 지금의 기운이 경박한 줄을 알고, 내가 지금 말을 조급하게 하고 있음을 알고, 내가 지금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고 했음을 알고, 내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내 삶이 더욱 여유로워 지고, 편안해 질 것이다.

우리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 중 하나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된다. 우리 남편, 아내, 아이, 친구, 직장상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업(業)대로 재해석해서 보게 된다. 즉, 상대를 내 마음에 맞게 바꿔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내 마음에 맞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상대를 자기식대로 바꾸려고만 하니 괴로움이 따르는 것이다.

나는 빨강색 옷이 좋은데 누군가가 ‘당신은 빨강색을 입으면 강해 보이니 부드러운 색깔의 옷을 입어!’, ‘머리 스타일도 이렇게 하면 좋겠어!’, ‘구두는 어떤 것이 좋을까?’ 등 변하라는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면 마음이 불편해 질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주길 원한다. 자신은 지금의 모습으로 있으려고 하면서 상대는 내생각대로 바꾸고 싶어 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불교가 지향하는 목적은 행복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생겨난 모든 존재(存在)들은 소멸(消滅)하고 말기에 ‘고(苦)’라고 한다. 왜 ‘고(苦)’인가 만물은 연기(緣起)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잡아함경)

이렇게 무수하게 알 수 없는 다양한 원인들이 시시각각 생(生)과 멸(滅)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이 생겨났다가 조금 지나면 바로 없어졌다가, 끝없는 ‘생’과 ‘멸’을 한다. 이 ‘연기’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끝없이 변한다. 우리 마음만 봐도 맛있는 요리를 처음 먹을 때는 참 맛있게 먹는데, 이 요리를 아침에도 먹고, 점심, 저녁에도 계속해서 먹게 된다면 싫증이 나서 맛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연기하기에 고(苦)인 것이다.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집(集)’, 즉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의 집착 때문이다. ‘탐심(貪心)’은 뭔가 더 좋은 것을 욕심내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들여다보면 지금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다. 즉, 지금 있는 그대로를 뭔가 조금 달라졌으면 좋겠다. 지금 이 상황보다 조금만 더 좋아지면 더 행복할 것인데 이런 마음이 결국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다. 마음은 자꾸 앞으로 가서 뭔가를 더 얻으려고, 잡으려고 하는 그 마음이 바로 ‘탐심’이다.

이와 대치되는 것이 진심(嗔心)이다. 진심은 분노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 즉 지금 주어진 상황을 거부하는 마음이다. 거부하는 마음이 생기면 생길수록 지금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진심’은 그 주어진 상황을 자꾸 거부하려는 마음이다. 

탐심(貪心)과 진심(嗔心) 이 두 가지를 다 떨쳤을 때 우리의 마음 상태는 ‘수용(受容)의 상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상태’가 된다. 즉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이다.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 중에서 치심(痴心)을 어리석은 마음이라 하는데, ‘깨어있음이 없는 마음’, ‘내가 이럴 줄 모르는 마음’이 어리석음이다.

이 세 가지가 다 없어진 상태에 들게 되면, 나도 모르게 앞으로 가서 붙잡으려 하는 마음도 멈추고, 반대로 지금 주어진 상황을 자꾸 거부하려는 마음도 멈추고, 이 상태에서 마음이 깨어있을 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우리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 진정한 행복, 해탈(解脫)의 세계를 누리게 된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 순간 지금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우리는 ‘밝음이 길’로 ‘행복의 길’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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