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선의 문화칼럼]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전) 국악방송 본부장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필자가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 있다. 바로 ‘나라, 국가’이다. 나라 밖으로의 여행길이 막히면서 국내 곳곳에는 여행객들이 모여들고 새롭게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필자에게 특별한 애국심이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런 시대를 겪으면서 나라를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광주에는 참으로 많은 사당들이 있다. 각기 나름의 의미와 사연을 지니고 있는 사당들을 만나면서 조상에 대한 많은 공을 들였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정충묘이다.

정충묘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나라를 위하여 순국한 장군들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祠堂)이다. 광주시, 남한산성과 더불어서 늘 함께 따라다니는 병자호란은 우리의 역사 속 아픈 기억이며, 이를 통한 많은 교훈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정충묘에는 1637년 1월 2일에 쌍령에서 벌어진 조선군과 청나라군이 싸운 쌍령전투(雙嶺戰鬪)에서 전사한 허완(許完:1569년~1637년), 민영(閔栐:미상~1637년), 선세강(宣世綱:1576년~1636년), 이의배(李義培:1576~1637) 등 4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쌍령전투(雙嶺戰鬪)는 조선군이 청군에 대패한 전투로 남한산성에서 항전하고 있었던 인조가 결국 청나라에게 항복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는데 한국 역사 3대 패전(칠천량해전, 쌍령전투, 현리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7월 국수봉에 올라 기억했던 쌍령전투를 다시 떠올리게 된 곳이 바로 정충묘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에 제향을 올리는데, 올해도 변함없이 지난 2월 14일(음력 1월 3일)에는 광주시 대쌍령리에 있는 정충묘에서 제향(祭享)이 열렸다.

신동헌 광주시장이 초헌관(제향 때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제관으로 제주의 역할을 담당한다)을 맡았다는 소식과 사진을 뒤늦게 듣고 필자는 며칠 뒤 정충묘를 찾았다.

시도 23호선(구 3번 국도)을 달리다 스치듯 지나칠 수밖에 없는 길가에 정충묘라는 표지판과 홍살문만 보인다. 정충묘를 지나 동네 입구에 어렵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도보로 청충묘 쪽으로 향하다 보니 작은 길이 이어지는 듯하다가 이내 길이 끊겨있었다.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을 피해가며 위험천만한 길을 걸어 입구에 다다르니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자칫 중심이라도 잃고 비틀거리면 그대로 도로위로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계단을 오르니 정충묘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작은 사당이 나온다. 그게 전부였다. 아! 나도 모르게 한 숨이 새어나온다. 세상에, 여기를 오라고 만든 것인지 오지 말라고 해 놓은 것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역사적으로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는 이곳을 이렇게 방치한다는 사실에 할 말이 없다. 작은 것도 확대시키고,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마당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의 이야기를 이렇게 내 팽개쳐 놓은 것 같아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정충묘 앞 작은 마당에 서서 생각해 보니 여기 모신 네 분의 심정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싸움에 패하고 많은 병력을 잃자 자결하였다는(기록에 따라 다소 다르게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허완, 쌍령전투에서 군사가 패하자 도망하지 않고 싸우다 전사한 민영, 적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선세강, 신하의 피신권유를 물리치고 용맹하게 전사한 이의배, 이 네 분의 위패가 모셔진 정충묘는 이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시대의 참극 또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이 기록은 단순히 ‘발생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훗날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하는 반성의 기록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지나간 것이나 그것이 반증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뼛속까지 충절을 기린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정충(精忠). 나라를 위해 자신을 던진 진정한 충절을 기억하며 정충묘가 광주시민들 곁은 물론, 더 많은 한국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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