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선의 문화칼럼]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전) 국악방송 본부장

막 겨울에 들어서는 바람은 날카롭기보다는 머릿속을 맑게 하는 상쾌한 기운이 감돈다. 아침 맑은 공기로 머릿속을 말끔히 씻어 내면서 광주에 들어섰다. 무갑산 자락 옆을 돌아 자동차로 조금 더 가다 보면 야트막한 산자락에 오래된 능이 군데군데 보인다. 얼핏 봐선 그냥 지나칠 법한 그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 잡은 이곳이 궁금해졌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신월1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고려의 유신(遺臣) 석탄공 이양중 선생의 사당인 ‘고덕재(高德齎)’가 나온다. 고덕재를 지나 왼편 위쪽으로는 능이 보이는데, 이곳에 올라보니 느닷없이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한국전통음악은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가장 가깝게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음악이다. 물론 처음 들을 때 곧바로 그런 느낌을 눈치 채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필자도 그랬었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국악프로그램의 타이틀 그림은 향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영상이었다. 어린시절 국악프로그램 타이틀이 시작되면 채널을 돌리곤 했다. 그러던 필자가 어려서 접한 ‘고전무용(당시에는 한국무용을 고전무용이라 불렀다)’을 하기 위하여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한동안은 국악이 무척이나 낯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중 국악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당시 국악고등학교 학생들은 거의 전 학년 학생 대부분이 동원되는 국가행사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직접 출연하게 되는 국가적 경축행사가 열렸다. 필자는 당시 무용전공이었지만 무용이 아닌 ‘수악절창사(隨樂節唱詞)’를 합창으로 부르게 되었다. 단선율의 선율을 4~50명의 목소리로 부르는 ‘수악절창사’의 느낌, 장중한 악기 반주 위에 마치 고고한 학이 날아가는 듯한 노래선율은 형용할 수 없는 신비감을 경험하게 하였다. 난생 처음 들어 보고 불러본 그 노래의 제목은 바로 ‘보허자(步虛子)’였다.

‘보허자’는 고려 때 송나라에서 수입한 사악(詞樂)이다. 사(詞)는 중국 운문(韻文)의 한 형식에 곡(曲)을 붙인 음악으로 중국 당나라 이후 오대(五代)를 거쳐 송나라에서 크게 성행하였고 고려 때 수입되어 한국적인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신월리에 있는 양성 이씨 ‘이 한’의 묘소 앞에서다. 원래는 ‘광주이씨’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 초월읍 신월리에 있는 고택을 찾았는데 고택 뒤쪽으로 널찍하게 자리 잡은 묘소에 오르니 무척 오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묘비가 눈에 들어왔다. 양성 이씨 ‘이 한’의 묘라고 비석에 적혀 있었다. 광주 이씨의 터에 ‘양성 이씨’의 묘가 있다는 것이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고려시대의 묘 양식을 그대로 보전한 것이라고 하니 오래전 불렀던 고려시대의 ‘보허자’가 떠오른 것이다.

“푸른 안개 새벽하늘에 자옥한데
바다 물결 한가롭고 강가의 몇 봉우리는 서늘해라
패환(佩環)소리 속에서 기이한 향기 인간세상에 떨어지는데
오색구름 끝에선 강절(絳節) 멈추네
한데 어우러져 이삭 패인 좋은 벼의 상서 가리키고 한차례 웃어 붉은 웃음 띄워보네
구중 높은 궁궐 바라보며 하늘 향해 세 차례 축수하기를
만만년 두고두고 남산 맞보고 솟아 있을지라.”

바다 위에 떠 있는 유선(遊仙:뱃놀이하는 배)의 황홀경을 묘사하고 대궐을 향해 송축하며 태평시절의 즐거움과 또한 임금의 장생불로를 축원하는 내용의 노랫말이다. 그래서 이 음악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이라 불린다. 즉 ‘봄이 길어서 늙지 않는다’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음악이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순간을 통해서도 우리는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수악절창사’의 기억을 되살려 내게 되며 넓은 광주 땅에서 고려를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옛 고려의 땅이라 생각을 하며 능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여유롭게 펼쳐지는 드넓은 광주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터’의 주인인 ‘광주이씨’가 궁금하고 왜 광주이씨 터전에 양성이씨 ‘이 한’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다음에 그 얘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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