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은선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전) 국악방송 본부장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전) 국악방송 본부장

내가 경기도 광주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곳이 있다. 바로 광주 8경(景)중 5경인 무갑산(武甲山)이다. 이 무갑산은 광주의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써 태양의 기운을 제일 먼저 받는 곳이다. 광주는 북쪽으로 용마산 서쪽으로 남한산 남쪽에는 태화산 동쪽에는 이 무갑산이 위치해 있어 광주를 둘러싸고 있다. 그만큼 광주에 영험한 기운을 전해주고 있는 산이다.

2015년으로 기억된다. 선배의 초대로 가게 된 곳은 무갑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선배의 터전이었다. 처음에는 무갑산 정상에 오르나 싶을 정도로 한참을 들어갔다. 광주를 갔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무갑산 안자락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주로 도시에서만 생활해 온 나로서는 새롭게 다가왔다.

처음 무갑산을 찾았을 때 초입에는 공장이나 기업들의 현장 같은 곳이 많았기에 무갑산의 풍경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부분은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광주의 명산이라는 무갑산 입구에 이런 크고 작은 공장들이 많다는 것이 보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무갑산 자락에 가까이 갈수록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고 실제 무갑산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처럼 다소 무거운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무갑산은 ‘무갑산(武甲山)’이라는 이름의 분위기와는 달리 무갑산 안자락의 풍경은 무척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정원 같았다. 처음 보았던 그 풍경은 아직도 한 폭의 그림처럼 기억된다. 그러나 선배가 무갑산으로 초대한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과는 다른 것이었다.

무갑산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격퇴를 위하여 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아주 오래전인 임진왜란 때에도 ‘항복을 거부한 무인들이 은둔하였었다는 설’이 전해지는 곳이라 하니 이곳이 무인(武人)과 연관이 있는 곳이라 하겠다. 심지어 ‘무갑산에서 장수의 갑옷이 나와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질만큼 무갑산(武甲山)은 전쟁이란 단어와 무관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인 듯싶다.

어떻게 보면 이런 아픈 이야기를 품고 있는 무갑산에 터전을 잡고 있는 선배로서는 전통음악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마냥 아름다운 풍경만을 감상하고 있을 수는 없었나 보다. 그래서 이 곳에서 의미 있는 공연을 기획해 보자는 뜻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다. 물론 지난 2015년에는 광주시를 중심으로 무갑산 등지에서 대대적인 유해발굴을 벌이기도 하였고 무갑산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산신제를 지낸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위령제는 지낸 적이 없는 듯했다. 그 선배는 종교적 이념을 떠나 전쟁으로 이름 없이 사라져간 영혼들을 위로하고 무갑산에서의 아픈 기억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어떤 의식을 상징하는 공연’을 제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의미 있는 공연 기획은 진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후 이곳을 꾸준히 드나들며 무갑산을 기반으로 한 ‘광주 알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걸음은 즐겁고 기쁜 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늘 마음속 한편에는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떠안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또 알 수 없는 이들을 잃은 더 많은 알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애써 외면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내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합리적인 변명이 있기에 말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생각해 보니 벌써 그런 말이 나온 지 5년이 지나간다. 참 무심하게 세월만 보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지난 일요일에도 무갑산을 찾았다. 단풍이 지고 있어서 색깔은 옅어졌지만, 여전히 형형색색 아름다운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며 문득 ‘그동안 내가 ‘무갑산의 안자락에 안겨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면서도 뭔지 모를 무게감으로 늘 엄숙하게만 다가왔던 무갑산의 품이 새삼 푸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밤에 무갑산을 내려올 때면 이유 모를 무서움도 느껴졌던 무갑산이 어느덧 친근하면서도 다정한 곳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무섭지도 않고, 적막하지도 않은 곳이 된 무갑산의 안자락에서 이제는 5년 전에 생각했던 일들을 실행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직 나는 무갑산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무갑산 안자락에서 5년간 드나들면서 무갑산을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게으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곧 지인들과 5년전에 계획했던 일들을 실행에 옮기리라 마음을 먹는다.

그 시작으로 먼저 무갑산에 올라야겠다. 무갑산의 높이는 578m로 능선에서 앵자봉, 관산, 양자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에 찾았던 천진암으로도 연결된다고 하니 하루빨리 무갑산 정상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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