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선주 영은미술관 관장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이한 영은미술관이 모든 영은지기들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기획전 ‘영은지기 기억을 잇다’가 내년 1월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지난 16일 박선주 관장을 만나 그동안 영은미술관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운영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박 관장의 시할아버지 故이준영(1917~2007) 이사장은 이북에서 내려와 방직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또,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1992년 대유문화재단을 설립했지만 그 해 큰 아들인 故이상은(1940~1992)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는 평소 미술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아들의 뜻을 기려 자신과 아들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따서 ‘영은’미술관을 만들었다.

그렇게 1992년을 시작으로 영은미술관은 광주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촉매공간으로 자리잡았고 21세기를 선도하는 새로운 형식의 미술관을 지향함을 선언하고 20년 세월을 달려왔다. 

코로나19에도 새로운 도약을 준비

영은미술관은 코로나로 인해 70%가량 방문자가 줄면서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탄력적인 운영으로 전기세 절감과 아카이브에 집중하면서 2년간 준비해오던 아카이브 공간을 올해 12월안에 마무리하는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되었다고 전했다.

20년간의 시간을 정리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영은미술관은 지속적인 작가와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영은미술관은 미술관 운영뿐만 아니라 레지던시 프로그램 ‘영은 창작 스튜디오’를 겸비한 복합 문화 시설이다. 작품 보존과 전시에 초점을 맞춘 과거의 미술관 형태에서 과감하게 변화해 미술관 자체가 살아 있는 창작의 현장이면서 작가와 작가, 작가와 평론가, 대중과 생생하게 살아있는 미술(Living Art)이 만나는 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아카이브 운영을 통해 작가들에게 상호소통과 협력을 유도하여 ‘아티스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데 힘쓰고 있다.

박 관장은 “작가로써 지속성을 갖고 오랜시간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작가분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음악전공자가 걸어온 미술(美術)

바이올린을 전공한 박 관장은 미술 또한 못지않게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다. 박 관장은 “오랜시간 미술을 접하다보니 작가라는 것은 작곡가랑 비슷한 것 같다”며 “작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어울림, 기획, 캡션 등 여러 요소들이 모였을때 작업은 비로소 빛이 나기 때문에 하나의 하모니를 내기 위해 영은미술관은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레지던시 운영하는데 있어서 작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며 조율하는 과정은 쉽지가 않다”며 “마음과 다르게 힘들때도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고 나니 피카소의 작품을 갖고 있는 것 보다 영은미술관을 거쳐간 250여명의 작가분들이 ‘가장 큰 자산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박 관장은 말한다.

0에서 다시 1을 준비하는 영은미술관

영은미술관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며 지금까지 250여명의 작가들과 공간을 이끌어왔다. 

박 관장은 “미술관은 절대 누구도 혼자할 수 없으며, 미술관을 운영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소유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유욕을 갖고 있으면 너무 힘든 길을 가게 될 것”이라며 “레지던시를 하며 한국에 있는 현대미술 작가를 배양하고 상생하는 것이 영은미술관의 숙명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영은미술관이 20주년을 맞이하며 그동안의 수고를 기억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박 관장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짐이 느껴졌는데 작년에 미국에 있는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을 다녀오면서 영은미술관이 지금껏 잘 달려왔고 앞으로도 지향하는 목표를 계속 이어가야겠다”고 말했다.

영은미술관은 오픈형 수장고식 전시를 지향하며 야외전시의 경우 상시 무료 개방하여 광주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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