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전) 국악방송 본부장

광주(廣州)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광주에 대하여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계신다는 광주시 유도회의 참봉님을 만난 때는 6월 초였다. 잠깐이었지만 광주의 역사에 대하여 꿰고 계신 참봉님은 ‘직전 토요일(6월 6일)에 숭렬전에 ‘봉심(奉審)’을 하고 왔노라‘는 말씀을 하셨다.

‘봉심’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다시 여쭈니 ‘봉심(奉審)’은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유도회 주관으로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위패가 있는 숭렬전에서 행하는 유교의식이라고 한다. 사실 전통문화를 전공한 나에게 이런 의식은 무척 익숙한 것이었지만 실제 매월 2회씩 이런 의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게 여겨져서 다음 봉심 때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음력 5월 초하루를 맞아 ‘봉심’이 있는 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섰고 남한산성 입구부터 시원하게 드리워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마음속 한편에서는 백제의 왕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서둘러 갔다. 그동안 전통음악을 공부하면서 수없이 만나게 되는 조선 왕들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지낸 것 같은데 ‘백제’라는 나라 이름도 ‘온조’라는 이름의 왕도 역사 시간을 통해서 배우고 열심히 외웠던 기억밖에 없다. 사실 그 존재에 대해선 잊고 살았던 것이기에 그를 위한 유교의식 ‘봉심’이 더욱 궁금해졌다.

이런 나에게 동행해 준 선배는 ‘가보면 실망할 거야. 많이 초라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속으로 ‘아무리 초라해도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분이었는데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남한산성을 향하는 차량 행렬도 많고 이미 하산을 했는지 걸어 내려오는 등산객들도 많았다. 그런데 차량 내비게이션에는 분명히 ‘숭렬전’이 표시되어 있었고 도착했다고 알려주는데 그 어디에도 숭렬전 비슷한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안내표지판에도 숭렬전의 이름은 오간데 없다.

앗!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서 주변 점포에 물어봤지만, 광주시에 사는 사람인데도 숭렬전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단다. 이 어찌 된 일인가? 여러 사람에게 물어물어 찾아보니 ‘거기 차 못 올라가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결국, 한참을 헤매다 마중 나온 선배를 따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산성 주변의 카페들 사이에 무척 비좁고 경사 높은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니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듯한 숭렬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허름하지 않았지만, 백제의 시조왕 위패를 모신 곳이라고 보기엔 왠지 짠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건물의 낡음도 아니요 잘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함도 아니요 아무런 특별함이 없이 그저 그런 곳에 방치되다시피 하게 있음이 아닐까 싶다. 백제가 어떤 나라인가? 일본에 뛰어난 문화를 전파한 융성한 문화강국이었던 나라다. 비록 패망한 나라이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국가이지만 우리의 선조라 치면 조상이라 하겠다. 그 피가 어느 사람엔가 흐르고 있다.

숭렬전을 둘러싼 잔디 등의 조경은 잡초로 뒤덮여 멸망한 백제의 과거를 보는듯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한 달에 두 번 유도회 어르신들이 봉심하러 왔다가 잡초 몇 포기 뽑아내는 것이 관리의 전부인 듯하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숭렬전은 조선 인조 16년(1638년)에 지은 사당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재)경기문화재단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숭렬전에서 행해지는 봉심을 비롯한 의식행사는 광주시가 맡아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관리가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우리 역사 속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제대로 찾기 어려우리만큼 안내표지판 하나 없는 것이 아침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가졌던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나마 숭렬전은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 5월 21일에는 원래 다른 곳에 있었던 온조왕의 위패를 숭렬전으로 옮기는 ‘환안식(還安式)’을 거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소식 자체도 찾아볼 수가 없다. 기록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남한산성이라는 거대한 세계문화유산 속에 존재하는 숭렬전은 그 자체만으로 국가적 차원에서의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지자체별로 정말 많은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심지어 간혹 말도 안 되는 그런 지역 축제를 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이미 잘 갖고 있는 이런 무형 또는 유형의 문화재와 콘텐츠를 방치하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에 1년 365일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봉심’을 행하는 유도회 어르신들의 정성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씁쓸함과 일종의 안도감이 함께 느껴진다. 

사실, 숭렬전 하나만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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