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한산성 철학산책

서정욱 광주뉴스 국장(철학박사)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아직까지 지구촌 컨설턴트들이 한결같이 최고로 꼽는 정치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1992년 미국 대선 때 등장했다. 당시 미국 보수 공화당이 1980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1992년까지 집권하던 때였다. 곧 이어질 대선에서도 시골 촌뜨기로 취급받던 아칸소 주 주지사 출신 ‘빌 클린턴’후보가 이길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걸프전 막판(91년)부시 대통령의 업무 수행 지지율은 90%에 달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이렇다보니 민주당 입장에서는 똥줄이 탈만했다.

무언가 한방이 절실히 필요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선거판을 짜야만 했다. 골머리를 쥐어짜던 끝에 내놓은 밀도 있는 대안은, 당시 유권자들의 가슴 품으로 진격한 감정이입 전략이었다. 이 때 태어난 문구가 바로‘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였다. 혜성같이 등장한 이 슬로건은 유권자들의 심장을 후벼 팠고, 마침내 철옹성 같았던 조지 부시의 요새는 마치 ‘여리고성’처럼 부지불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물론 이 정치구호 한 방이 미국 전체 유권자의 표심을 지배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거를 치르는 기간 내내 대다수 미국 유권자들은 ‘경제의 틀’이라는 늪에 갇힌 채 허우적거렸다. 그간 걸프전으로 인해, 미국 경제의 속사정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막대한 전쟁비용으로 엄청난 불황을 겪고 있던 때였다. 그 빈틈을 노린 민주당은 ‘경제 프레임’으로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해 공화당을 압박해 들어갔던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른바 ‘프레임(Frame)전쟁’의 서막을 열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한 부시정권은 ‘국뽕 프레임’으로 맞섰지만, 돌아온 건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아마도 그 때 부시는 위대한 미합중국 국민들이 이번에도 애국심(국뽕)이 또 한 번 발현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그 시절만 해도 서방세계에서 전쟁의 승리는 곧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구가 통용되던 시기였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낡은 패러다임(?)’은 착각으로 귀결되었고 이후, 미국 역사의 뒤안길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때 부터 유권자의 정치의식 변화가 몰고 온 파장은, 가히 지각변동에 견줄 만 했다. 이처럼 슬로건 한 방이 ‘낡은 틀’을 깨고, 유권자 지형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데에는 ‘시대정신의 등극’과 정치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배신감’이 크게 한몫했다고 봐야한다.

우리 정치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프레임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대형 ‘이슈’의 공명(共鳴)이 울리지 않는다.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 때문인지, 아니면, 야권들이 본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희화화된 틀’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 못한 탓에 그런 건지, 정치가 ‘개콘’보다 더 웃긴 장면들을 연출하다보니, 사뭇 진지성이 떨어지는 형국이다. 국민들이 정치권 대표에게 ‘쓴소리(충고)’를 하면 당사자들은 ‘잔소리’로 치부해버리니,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의 뇌리를 관통할 임팩트(Impact)한 슬로건이 등장할리 만무하다. 그나마 빈약하게도 21대 총선에서 여야가 내놓은 프레임 선거는 모두 ‘심판론’이다. ‘정권심판’VS‘야당심판.’

연일 쏟아지는 영양가 없는 정치권의 이전투구 속에서도 선거판 시계는 어김없이 잘도 돌아가고 있다. 복잡하게 바뀐 선거제도, 꼼수정치의 난립, 남의 밥상에 숟가락 얹는 얌체 정치, 야권의 이합집산에 따른 보수신당인 ‘미래통합당’의 출범, 비례위성정당의 출현, 코로나 바이러스확산에 따른 내수경제의 불안, 국민은 안중에 없고, 당리당략에만 매몰되어 있는 정당에 대한 분노 등이 얽히면서, 21대 총선이 어느 방향으로 귀결될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이번 선거부터는 만18살로 선거연령이 낮아진다. 선거 공간에 밀레니엄 세대가 대거 유입되면서 유권자 지형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20대 남성의 보수적 변화를 뜻하는 ‘이대남’ 현상이 우리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늘 선거철이면 복잡다단(複雜多端)한 구도 속에서 새로운 화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글쎄 ‘영 아니올시다.’이다. 기성정치의 문법을 흔드는 젊은 세대, 혹은 신세대(10-30대)들이 올 21대 총선에서는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80%를 웃도는 현상에, 한차례 태풍을 몰고 올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는 모를 일이지만, 정치권도 벌써부터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물론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지만, 세대교체 여론도 이미 요단강을 건넜는지 굳건해 보인다. 세대교체를 열망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구세대가 깔아놓은 정치지형을 비켜나도 한참 비켜나있다. 그들은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 격차에 더 민감한 반응을 지닌다. 그래서 조국사태 때, ‘공정성’의 문제에 기치를 높이 들고 SNS를 장악한 세대들이다.

언어학자 이자 철학자인 조지 레이코프(Georre lakoff)와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언어인지이론을 정치학 영역으로 끌어들인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이 지면에서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프레임 선거’는 이 두 학자들이 제시한 이론의 영역이다. 임팩트 한 언어가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지배하면, 어떤 사실과 현상이 주체가 제시하는 ‘틀’에 속수무책으로 갇히게 된다. 단적인 사례가 저열한 ‘색깔론’같은 경우이다. 이는 비단 정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지금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소상공인들의 폭망과, 소외계층, 그리고 이 시대 동력인 청년들이 절규하고 있는 목소리가 이미 세상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둔한 건지 아니면 쌩까는 건지 정치권의 화답은 요원해져만 간다. 비상시국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참에 필자가 정치권에 프레임을 한 번 걸어본다. ‘바보야, 문제는 너희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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