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한산성 철학산책

서정욱 광주뉴스 국장(철학박사)

철학자 데이비드 흄(D. Hume)은 우리가 사물들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이지만, 행동의 원동력은 욕구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이성은 우리에게 목적을 정해줄 수는 없고, 단지 우리가 욕망하고 있는 것을 달성하는 방법만을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을 ‘감정의 노예’라고 주장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의미보다. ‘이성’을 협소하게, 그리고 ‘감정’은 폭넓게 정의한 셈이다.

이렇듯 인간의 이성을 협소하게 정의함에 따라 무엇보다도 도덕의 영역이 가장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자, 흄은 이와 관련하여 ‘공감(共感)이라는 기제(機制)’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느끼는 공감에서 선(善)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단지 선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은 개인의 감정보다는 ‘사회적 감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삼스럽게도 흄의 공감에 따른 사회적 감정이 최근 들어 세인들로부터 철학적 관심사로 부상되는 걸로 봐서는 현재진행형과 미래시제에도 해당 될 소위 ‘도덕불감증’ 또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경종을 울리고 싶은 욕구와 어느 정도 선이 닿아 있어 보인다. 그것도 아니면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예방주사라도 한 번 맞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까. 여하튼 인간은 사유체계 범주(category)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도덕과 윤리는 최소한 한 사회를 지탱시키는 가장 원초적인 도구와 수단인 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세인들 입장에서는 연일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 사건, 사고, 중에서도 차마 입에도 담기 어려운 추악한 장면들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종이신문에도 아예 도배질 수준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흄이 제시한 사회적 감정에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선에 대한 가치 판단이나 기준도,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일반화되는 양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어떤 사안에 대한 만인들의 사회적 공감이 증폭되면 될수록 법과 도덕, 제도적 감정 또한 여기에 충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적 감정은 사회적 단죄의 단서(端緖)로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러니까 누구나 공감하는 불행과 고통을 염두에 둔다면, 최근 기어이 불거져 나온 불법 동영상에 연루된 셀럽(celebrity)사건 등은 법적으로 처벌하기 이전에 먼저 사회적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사회적 감정은 늘 반면교사(反面교사)를 삼음으로써 대중들로부터 법적 도덕적 경각심을 한층 더 끌어올리기도 한다.

흄이 제시한 사회적 감정이 개인적인 연민이나 동정심 같은 제한된 자기이익에 토대를 둔 도덕적 관점을 크게 뛰어 넘어 인류전체로 확장되는 것을 보노라면, 이는 인간이 공유한 도덕적 특질의 주요 원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보편적인 사회적 감정은 그 시대적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사회윤리설의 나침반 구실도 제공한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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