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정음미 여성기자아카데미 회원

개천절 날 여성기자 아카데미 수강생 및 강사님들과 경안천 습지 생태 공원에 다녀왔다. 높은 하늘 맑은 공기, 반짝이는 햇빛. 그 옛날 환웅님도 가을에 하늘 문을 열고 내려오셔서 그만 이 땅의 아름다움에 반해 더 넓은 곳도 놔두고 이곳에 덜컥 터를 잡으셨나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에 올라 차창 밖의 경치를 즐기며 공원에 도착했다.

경안천 습지 생태공원은 경안천을 거쳐 팔당호 상수원으로 흘러 들어가는 오염 물질을 수생 식물을 통해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 공원과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광주 시민의 휴식처이자 아이들의 탐구 학습의 장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광주에서 생활한 지도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곳을 모르고 있었다니 안타깝다.

좀 더 일찍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이 와서 산책도 하고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자주 간 율동 공원과 비교하면 이곳이 더 자연스럽다. 산책로도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고 주변에 펼쳐진 경치도 훨씬 정감 있었다.

입구에서 맨 처음 눈에 들어온 연꽃 군락은 비록 철이 지나 꽃도 지고 잎은 누렇게 변하고 있었지만 보기 좋았다. 습지 한 모퉁이를 가득 메운 연꽃 무리는 굳이 속세의 혼탁함 속에서 피워 낸 청정한 진리라는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감동을 준다. 내년 7,8월 꽃이 만개했을 때 열 일 제쳐두고서라도 보러 올 것이다.

길을 따라 군데군데 놓여 있는 시화에 눈길을 주면서 천천히 걸었다.

안으로 들어가기
/ 구중서
들떠서 대문 밖 나서는 하루가
돌아오는 밤이면 뉘우치기 일쑤다
덧없이 서성인 날이 스스로 허전하다
(중략)

정말 그렇다.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며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내가 그 얘기는 왜 했을까? 그 친구가 오해하지는 않을까 등등 후회는 시작된다. 그 많은 대화 가운데 정작 필요한 말은 얼마 되지 않았고 말을 할수록 더욱 허전해진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 까 하노라” 옛 시인도 이렇게 다짐하는 걸 보면 사람은 혼자여도 무리 속에 있어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인가보다.

마음에 와 닿는 몇 편을 찬찬히 읽어 보기도 하고 일행과 이야기도 나누며 갈대숲에 다다랐다. 얼마전부터 꼭 보고 싶은 곳 몇 군데가 있었는데 화왕산에 펼쳐진 억새 바다를 보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그래서 온 산을 뒤덮는 장엄함은 아니지만 도심 속에서 보게 되는 경안천의 갈대숲은 기대하지 않은 멋진 선물이었다.

입구로 돌아 나오면서 뒤돌아본 연꽃 군락 한 귀퉁이에 부레 옥잠이 커다란 방석처럼 깔려 있었다. 세상에, 아이들에게 부레 옥잠의 특성을 책으로,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여주고는 –볼록한 잎자루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공기-라고 답을 외우게 했는데, 수면에 떠있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면 아이들은 부레 옥잠이 가진 감춰진 이야기를 더 많이 찾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안함이 밀려왔다.

습지 식물들은 무척 매력적이다. 땅과 강의 경계에서 환경에 적응해 스스로를 변화시켜 삶을 이어나간다. 사람만이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 변화시킨다. 댐을 세우고 갯벌을 메워 땅을 만드는 일이 그 전만큼은 찬사를 받지 않는다. 부레옥잠의 볼록한 잎자루처럼 사람도 주어진 환경에 스스로를 단련시켰다면 우리 삶의 터전이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워지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한 번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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