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정씨, 장지동 영모재서 얼·업적 기려

조선 중기 개혁의 선두주자인 염간공(廉簡公) 정충량(鄭忠樑) 선생 추모 제향이 지난 5일 장지동 담안마을 영모재에서 엄숙히 봉행됐다.

동래정씨 소평공파 종중과 광주문화원이 주관하고 광주시, 광주시유도회가 후원한 이날 행사는 정용태 종친회장과 이창희 문화원장, 한낙교 광주유도회장, 남재호 전 문화원장, 박광운 향토문화연구소장을 비롯해 종친 및 내·외빈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초헌관은 이창희 문화원장이, 아헌관은 한낙교 유도회장이, 종헌관은 염간공 17대 작은종손 정대성씨가 맡아 제를 올렸으며, 제례에 허현무 광주학연구소장, 진행에 성균관 광주유도회 회원, 제례악에 국립국악단원 조선풍류정이 담당했다.

정용태 동래정씨 소평공파 종친회장

제향을 마친 후 정용태 동래정씨 소평공파 종친회장은 “동래정씨 소평공파 묘역과 석물이 2013년 광주시 유형문화유산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됨과 동시에 매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종친회장은 “오늘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신 많은 종중과 내·외빈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조상의 얼과 숭고한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는 종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창희 문화원장은 “정충량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개혁에 앞장 선 분”이라며 “결실의 계절, 가을에 역사적으로 고귀한 가치가 있는 정충량 선생의 추모 제향을 받들게 되어 뜻 깊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염간공 정충량 선생(1480~1523)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字)는 숙간(叔簡)이며, 호(號)는 마재(磨齋)이다. 부친은 형조판서를 역임한 소평공(昭平公) 광세(光世)이며, 조부는 증 의정부 좌찬성 난손(蘭孫)이다.

1501년(연산군 7) 생원·진사시를 거쳐 1506년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 검열에 임용된 뒤 대교를 거쳐 1507년(중종 2) 봉교가 되었다. 이때 동료 김흠조(金欽祖)와 함께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사람의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과 사관(史官)의 직필(直筆)을 보장해줄 것을 주청하기도 하였다.

그후 전적·공조좌랑·형조좌랑·장례원사의·황해도도사·병조정랑·공조정랑·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후 1511년 헌납이 되었다. 또한, 지평·장령·집의·승문원참교·내자시정(內資寺正)·사섬시정(司贍寺正)·사재감정을 역임했다.

정충량 선생은 도승지에 오른 지 6개월도 안되어 밀려나 이조참의로 좌천되었고, 또다시 공조참의로 좌천되자, 관직을 버리고, 광주(廣州) 마산(현 광주시 장지동 담안 마을)로 낙향하여 울분에 젖어 참화를 당한 동지들을 생각하며 둔거하다가 2년이 못되어 질병으로 서거했다.

이후 장지동에 대대로 살고 있는 동래정씨 소평공파의 입향조로서 후손들이 500년을 세거하면서 조상의 묘역을 온전히 관리하여 온 결과 2013년 광주시 향토문화유산 유형문화재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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