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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지식인의 내면 읽기 ‘미쳐야 미친다’<독서칼럼> 최병길 前광주로타리클럽 회장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이란 없다. 학문도 예술도 사랑도 나를 온전히 잊은 몰두 속에서만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 한 시대를 열광케 한 지적, 예술적 성취 속에는 스스로도 제어 하지 못하는 광기와 열정이 깔려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지식인의 내면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광기를 탐색한 글이다.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등 이 책에서 관심을 둔 인물들은 우연찮게도 대부분 그 시대의 메이저들이 아니라 주변 또는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던 안티 혹은 마이너들이었다. 누구에게 난 자신의 시대는 자못 격정적이다.

이 격정 앞에 온몸을 내던져 맞부딪쳐 나가는 사람이 있고,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이 있다. 뼈아픈 시련을 자기 발전의 밑바대로 삼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사람과, 한때의 득의가 주는 포만감에 젖어 역사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스러져버린 사람도 있다. 

김득신의 독서광 이야기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감명을 일으킨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번 척 보고 다 아는 천재도 있고, 죽도록 애써도 도무지 진전이 없는 바보도 있다. 정말 갸륵한 이는 진전이 없는데도 노력을 그치지 않는 바보다. 끝이 무디다 보니 구멍을 뚫기가 어려울 뿐, 한 번 뚫리게 되면 크게 뻥 뚫린다. 한 번 보고 안 것은 얼마 못 가 남의 것이 된다. 피땀 흘려 얻은 것이라야 평생 내 것이 된다. 

1억1만3,000번의 독서 김득신(1604~1684)은 자못 엽기적인 노력가다. 아이큐가 절대로 두 자리를 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그는 평생을 두고 잠시도 쉬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역대 시화(詩話)속에는 믿기지 않는 그의 둔재와 무식한 노력이 전설처럼 돌아다닌다. 한 사람의 인간이 성실과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한계를 그는 보여준 사람이다. 그의 독수기를 들여다보자.

백이전은 1억1만3,000번을 읽었고, 노자전, 분왕, 벽력금, 능허대기, 의금장, 보망장은 2만번을 읽었다. 제책, 귀신장, 목가산기, 재구양문, 중용서는 1만8,000번 등 장자와 사기, 대학과 중용은 많이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읽은 횟수가 만 번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독수기에는 싣지 않았다.

만번 이하로 읽은 것은 아예 꼽지도 않고, 만 번 이상 읽은 36편 문장의 읽은 횟수를 적을 글이다. 도대체 김득신의 미련이 아니고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정작 놀라운 사실은 그가 같은 글을 되풀이해 읽으면서 읽은 횟수까지 빠짐없이 적어두었다는 점이다. 김득신은 지혜가 부족하고 재주가 몹시 노둔했는데도 외워 읽기를 몹시 부지런히 했다. 독서록이 있었는데 천번을 읽지 않은 것은 기록에 올리지도 않았다. 사마천의 사기 중에 백이전은 1억1만3,000번을 읽기에 이르렀다. 

한 번은 말을 타고 어떤 사람의 집을 지나가는데,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나는구나.” 말고삐를 끌던 하인이 올려다보며 말했다. “부학자 재적극박 어쩌고저쩌고 한 것은 나리가 평생 매일 읽으신 것이니 쇤네도 알겠습니다요. 나리가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김득신은 그제야 그 글이 백이전임을 깨달았다. 그 노둔함이 이와 같았다. 하지만 만년에는 능히 시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그는 백이전을 1억1만3,000번 읽은 것으로 이름났다. 이때 1억은 지금의 10만을 가리키니 실제 그가 읽은 횟수는 11만 3,000번이다. 그 자신도 이것을 자부해서 자신의 거처에 억만재라는 당호를 내걸기 까지 했다. 그런데도 얼마나 머리가 나빴으면 길가다 우연히 들려온 백이전의 한 구절을 기억 못했다. 

글의 맥락이 담긴 복선이 있는 곳은 밑줄을 긋고 둥근 점을 잇대어놓았다. 핵심 의미가 담긴 곳에는 주를 달았다. 삼가 필적을 살펴보니 쇠바늘과 은철사가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고 적고 있다. 온혈을 다하는 열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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