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정나라 왕인 무공은 오랑캐를 정벌하기 위해 먼저 그 딸을 오랑캐 왕에게 시집을 보냄으로서 그 마음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는 어전 회의를 열어 신하들에게 물었다.

“나는 전쟁을 한바탕 하고 싶은데 어느 나라를 쳐야 되겠소?”

이에 대부 관기사가 일어서서 말했다.

“당연히 오랑캐를 쳐야지요"

그러자 무공은 크게 노하여 관기사를 당장 참형에 처해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오랑캐는 형제와 같은 나라요. 그런 나라를 치다니 말이 되는 소리요?”

오랑캐 왕은 그 말을 듣고 정나라는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나라와 접한 국경에 있는 군사들을 빼내 다른 곳에 배치했다. 무왕은 이 틈을 이용해 오랑캐를 정벌했다.

옛날 이야기 하나 더.

송나라에 한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많은 비가 와서 부잣집 담장이 무너졌다. 부자는 다른 바쁜 일이 있어서 담을 새로 쌓지 못하고 몇 칠을 방치했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말했다.

“속히 담을 고치지 않으면 도둑이 들것입니다.”

그날, 이웃집 노인도 아들과 똑 같은 말을 했다. 밤이 되자 과연 도둑이 들어 부자는 많은 재물을 잃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아들을 보고 매우 지혜롭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이웃 노인에 대해서는 ‘혹시 이 늙은이가 도둑과 내통한 것이 아닐까?’하고 의심했다고 한다.

위 두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가 지(知)와 지혜(知慧)를 설명하면서 예화로 삼은 이야기다.

한비자는 지와 지혜를 한마디로,지는 <아는 것>이라 했으며, 지혜는 <아는 것을 적절히 쓸 줄아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아는 것(지)은 쉬운 일이나 그것을 쓰는 것(지혜)은 대단히 어렵다고 하면서 두 예화를 들었는데, 대부 관기사와 이웃집 노인은 지(知)는 있으되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줄 아는 지혜가 부족하여 지를 잘못 쓰는 바람에 작게는 의심을 당하고 크게는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 지보다 지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 나라 안병욱(安秉煜) 선생도 그의 에세이 <지혜의힘>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썼다.

- 지식이 많은 사람을 우리는 학자(學者)라고 일컫고 지혜가 많은 사람을 현인(賢人)이라고 한다. 학자는 세상에 부지기수(不知其數)지만 현인은 새벽 하늘의 별처럼 드물다. -

어느 나라고 국가 장래를 위해 인재(人才) 양성에 노력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여기서 인재라고 하는 것은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을 뜻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지혜는 어떻게 습득되고 배양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많지만 대체적으로 일치되는 항목은<경험> 이다. 하지만 세상사를 모두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권장되는 게 독서다. 간접적으로나마 다양한 경험을 습득할 수 있는 수단이 독서가 최고라고 여긴 때문이다.

그리고 독서는 다양한 경험뿐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지혜는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은 결코 지닐 수가 없으니 독서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걸 모르는 사람 또한 없지 싶다.

요즘 일본에는 가타야마 교이치라는 무명 작가가 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외치다>라는 소설이 판매 250만부를 돌파하면서 열도를 뒤흔든다고 한다. 250만부는 일본 소설 최다 판매기록(전에는 240만부)을 경신하는 신기록이고 보면 열도가 후끈 달아오를 만도 하다. 그런데 이 소설을 두고 일본 문단의 반응은 실로 냉담하다고 한다.

이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중학생 소년이 한 소녀와 급우로 만나 <로미오와줄리엣> 연극을 함께 만들고 비밀 일기도 교환하면서 순수한 사랑을 나누다 소녀가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뜬다는 이야기다.

소재가 새롭지도 않고 내용이 단순해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런 내용의 책을 두고 일본 문단 반응이 냉담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논픽션 작가 사노 신이치는 한 대담에서 “이렇게 단순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일본의 ‘읽는 힘’이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개탄했다고 한다.

<읽는힘>이 약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즉 생각하는 힘이 약해졌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 독서 현실을 들여다보면 일본의 저런 현상은 그나마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일본에 비해 우리 나라 국민은 독서와 아예 담을 쌓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기 때문에 읽는 힘이 어떻고 생각하는 힘이 어떻다고 개탄이고 뭐고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이 탐독했다고 연일 매스컴을 탄 김훈의 <칼의노래>가 고작 30만부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탐독했다고 매스컴을 타는것은 백만불짜리 광고보다 효과가 클 터인데도 이렇다.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 독서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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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에 필자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셔서 월요일까지 장례를 치르다 보니 부득이 한 주 쉬게되었습니다. 미리 공고하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효월 배상 -

효월 약력
* 1961년 5월 생 * 월간 녹색지대 前 편집장 * 역사·무협 소설가
장편 「황하(3권)」 「刀劍天下(6권)」등이 있고
단편 「누렁이」「보금자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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