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드라이브 코스는 수호전(水滸傳)의 역사적 배경이었던 송제국(宋帝國) 말(末)을 둘러보고자 한다.

수호전은 삼국지와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이다. 삼국지는 영웅들이 천하 패권을 놓고 다투는 이야기라면 수호전은 부패한 권력에 대항하는 민초들을 대변하는 이야기다.

수호전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탐관오리(貪官汚吏)들로부터 박해받던 108명의 호걸들이 양산박(梁山泊)에 거점을 잡고 송강을 우두머리로 하여 다양한 항거를 한 끝에 결국 휘종(徽宗) 황제에게 귀순하여 충성을 맹세하는 것으로 끝이나는 이야기다.

이렇듯 수호전의 주적은 권력의 최고봉인 황제가 아니라 황제를 둘러싸고 있는 간신 모리배들인 것이다.

여기서 간신 모리배를 대표하는 인물은 당연 재상 채경(蔡京)을 꼽을 수 있다.(그는 지금도 중국 각종 연극에서 교활하면서도 극악무도한 악역의 대표적 모델이 되고 있다.)

채경은 복건성 복주 근방의 해안 출신으로 영민한 머리와 기회를 포착하는 직감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임기응변도 아주 뛰어나서 못해내는 일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했는데 이런 예화가 있다.

그가 양주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어느 여름날, 그는 8명의 손님을 초대하여 냉요리를 접대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그런데 연회시간이 되자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예상 인원보다 다섯 배가 많은 40명의 손님을 치러야했다.

손님들은 채경이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채경은 40명분의 냉요리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조금도 차이나지 않게 만들어 내놨다. 그렇다고 시간이 특별히 많이 지체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내막은 알려지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이런 비슷한 일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그의 임기응변에 혀를 내둘렀다.

채경은 이러한 자신의 장기를 관직 생활 30년 동안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그가 첫 관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왕안석의 신법파에 의해서였다. 당시 송 조정은 왕안석을 대표하는 신법파와 사마광을 대표로 하는 구법파 간에 치열한 권력 다툼이 있을 때였다.

신법파란 말 그대로 개혁파를 말하는데 그들이 추구하는 개혁 정도는 거의 혁명 수준일 정도였고 구법파는 황족들을 비롯한 명문세가들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보수파를 일컫는다. 그래서 두 파의 정강정책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었다. 어느 파가 정권을 잡으면 하얗던 것이 또 다른 파가 정권을 잡으면 흑으로 변하는 그야말로 혼란한 정국이었다.

신법파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신법파에 의해 정계에 몸을 담기 시작한 채경은, 왕안석의 최고 후원자 신종 황제가 죽고 9세의 나이인 철종이 황제에 오르자 황족들에 의해 신법파는 몰락하고 구법파가 득세하게 되자 장기를 발휘한다.

구법파는 정권을 잡자말자 신법파 개혁법안을 모두 철폐하고 이전 법안으로 되돌리려고 하였다. 신법의 요체였던 모역법(慕役法 : 농민을 무상으로 윤번제로 징발하여 촌장이나 관리들 밑에서 부역하게 했던 것을 금지하고 대신 그것에 상당하는 세금을 거두어 사람을 고용해서 충당하는 제도)도 당연히 폐기하고 그 이전으로 돌릴 참이었다. 이때 채경은 개봉 지사로 있었는데 신법파임에도 불구하고 단 5일만에 구법파 입맛에 맞게 모역법을 옛날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구법파 당수 사마광도 깜짝 놀라 “전국의 장관들이 모두 채경과 같다면 못할 것이 없겠다”라고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리하여 구법파 시대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관직을 보전하던 그는 다시 신법파가 득세하자 활개를 치며 재무장관 자리를 꿰찼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역법을 다시 신법파 입맛에 맞게 바꿔버렸다. 불과 10년 사이에 정반대 되는 정책을 태연하게 실시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타고난 임기응변술을 항상 양지를 쫓는데 썼으며, 일신의 영달을 위해 아낌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결국 재상 자리에 오르자 피의 숙청을 단행한다. 숙청대상은 신법파든 구법파든 상관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거나 쓴 소리 해대는 인물들이었다. 자연 주변은 아부꾼들이 파리떼처럼 모여들었다.
원칙 없는 임기응변이 난무하고 정국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농민들은 무상으로 징발(구법)되기도 하고 세금까지 더 무는(신법) 이중 고통을 겪어야 했다. 결국 송은 멸망했고 채경은 ‘망국의 재상’으로 낙인 찍혔다.

현대 우리 나라 정계에서도 철새 정치인이라는 소리가 많이 나온다. 소신 없이 양지(여당)만 쫓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원칙이 없는 임기응변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전체를 망가지게 하는 법이라고 했다. 철새! 그가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두 눈 부릅뜨고 살펴봐야 되지 않을까?
효월 약력
* 1961년 5월 생 * 월간 녹색지대 前 편집장 * 역사·무협 소설가
장편 「황하(3권)」 「刀劍天下(6권)」등이 있고
단편 「누렁이」「보금자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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