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내하 광주YMCA위원장

디지털 원주민에서 벌꿀을 채취하는 원시부족민으로 돌아 간 날!

지난주 목요일 오전 광주고 김병호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내일 새벽 6시에 약속이 없으면 학교로 와서 벌꿀채취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것이다. 새벽 6시에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농업고도 아닌 일반 고등학교에서 벌꿀을 딴다니, 호기심과 더불어 기발한 교육을 잘하는 김 교장이 이번에 어떤 일을 벌이시나 궁금하기도 했다.

푸른 초목도 눈을 부비고 일어나는 새벽에 학교를 가보니 벌써 여러 학생들과 여왕벌 같은(?) 엄마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꿀벌들처럼 참 부지런들 하다. 옥상을 올라가니 여러 개의 벌꿀통과 원심분리기형 채취통도 준비했고, 쑥 냄새가 짙게 밴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문 양봉업자 부부와 함께 학생들이 쑥 연무기를 벌집에 갖다 대자 벌통에 있던 꿀벌들이 몰려나와 벌통 외벽에 가만히 매달린다. 쑥 연기가 벌들을 진정시킨다고 한다. 양봉전문가에 따르면 벌통의 꿀벌들이 흑벌 종류이고 가장 비폭력적인 벌이라고 한다. 이어서 보호망을 한 전문가와 함께 학생 한명도 보호망을 뒤집어쓰고, 꿀과 밀납된 판을 하나씩 조심스레 운반해 준비된 통 안에 집어넣는다. 양봉업자의 부인이 칼로 판을 하나씩 밀랍을 긁어낸다.

벌들이 겨울이나 비상시를 위해 비축한 꿀을 밀랍한 부분도 있는데 이것을 긁어내야 더 많은 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인이 여왕벌과 일벌, 꿀벌과 수벌에 대하여 설명해준다. ‘산지식의 공작소이며 현장학습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는 감동이 온다. 알들이 꿀과 꽃가루를 먹고 자라면 3-4개월 사는 일벌이 되고, 로얄젤리를 먹으면 5-6년 생존하며 번식과 벌 왕국의 통치자인 여왕벌이 된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기에 태어나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왕비와 무수리가 결정되는 것이다. 여왕벌의 교미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모여 있는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벌들의 번식의 전쟁이다. 여왕벌이 하늘로 치솟으면 수벌 떼가 함성을 지르면 비상을 한다.

   
마지막까지 올라온 가장 강한 놈이 여왕벌과 잠자리를 할 수 있다. 하늘에 비단이불을 깔고 여러번의 교미를 하는 데 여왕벌은 수태를 하고, 수벌은 기력을 다해 탈진해서 땅으로 떨어져 산화된다. 나머지 수벌들은 일벌들이 먹을 것을 챙겨주지도 않고 먹을 줄도 몰라서 아사하게 된다고 한다. 요즈음 집안에서 투명인간으로 사는 남성 가장들과 별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짠해 온다.

수벌의 슬픈 러브 스토리가 끝나고 학생들이 꿀판을 원심분리통에 넣고 좌우로 돌리자 짙은 밤색의 밤꿀이 밑으로 흘러나오자 생산의 기쁨과 환희가 학교옥상에 가득 찬다. 손으로 꿀을 조금 찍어 먹어보니 쌉싸름하고 달콤한 맛이 혀에 감돌며 그윽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위장에 좋다는 밤꿀이다.

어느덧 말통에 하나반이 채워질 때 우리 모두는 디지털 원주민에서 벌꿀을 채취하는 원시부족민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광주고 옥상에서 3000년 전의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굴된 빈 꿀단지에 꿀이 가득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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