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이정윤

소리는 내게 새로운 개안(開眼)의 시작이며 언어, 소란, 침묵, 다짐의 노래로 살아 난다.

소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심신을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소리들을 들려 줌으로써 나를 단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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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오토바이소리, 차의 시동소리, 뒷걸음치는 차 바퀴 소리, 사람들의 소리, 짐승의 울음소리, 자연이 익는 소리, 모성이 보여주는 침묵의 소리, 마음이 보내는 말소리, 무수한 소리들 속에 있다.
  

이정윤(본명 이돈미,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애드포인트 대표, 광주문인협회 회원) 
아침의 텃밭에도 소리가 있다. 품어 안는 소리다. 자연은 하늘이 내려주는 풍요로움으로 결실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옥수숫 대가 바람결에 제 허리를 휘감으면 옥수수 알갱이는 튼실하게 몸을 살찌우고 갈대밭 같은 이랑 사이로 여름이 깊어간다. 마당에는 고추가 멍석을 펴고 젖은 몸을 말린다. 덩달아 붉게 물드는 하늘, 비닐 하우스 지붕 사이로 햇빛이 구슬처럼 떨어졌다. 결실을 만들어 냈던 아침 텃밭은 살포시 속살을 열어 보이고 굽이치는 마음 한 자락, 가을의 갈피에 끼운다.

 바다에는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죽음을 맞는 침묵의 소리다. 바다의 붕어라고 불리는 망상어는 새끼를 낳으며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어미의 죽어가는 몸은 문어나 더 큰 물고기의 먹이가 된다. 몸이 빨려 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침묵으로 죽음을 맞는 것은 자신의 죽음으로 태어난 새끼들이 바다의 질서를 배우며, 어미가 돼서 죽음을 맞이 할 때까지 또 다른 세대를 이어 가야만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숨죽인 이끼, 피어 오르던 물방울, 꼬리짓 하던 모성, 영롱한 꿈의 조각들은 침묵의 소리로 한 점 혈육에 진다.

거리에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실타래처럼 연실 말소리가 흘러 나온다. 사람들은 언제나 말할 준비로 가득하다. 말은 대단한 소통이며 이해일 것인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버린 채, 말하려는 지식의 영역만을 차지해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지만, 말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

말에도 온도가 있다고 한다. 사람 사이의 이해란 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의 온도에 있다고 믿고 싶다. 나도 나만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고 싶다.

나는 소리가 좋다. 사람을 향한 착한 목소리, 일상의 소리들, 자연이 남기는 풍요로운 소리의 기록, 소리가 주던 감동과 눈물, 아픔까지도 따뜻한 온도로 기억하고 싶다.
 
나이 드는 것이 두렵다, 말이 주는 감동과 상처가 어느 순간 같은 무게로왔기 때문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마음에 머문다. 힘이라고 믿었던 솔직함은 오히려 경박함으로 오고 잘 그려보고 싶었던 자화상(自畵像)은 추적추적 옷섶을 적신다. 산다는 것은 그저 한 길 바람 속, 흔들리며 흔들리며 오래 남는 것.

 저기, 어스름의 저녁이 풀섶에 진다. 풀벌레도 제 소리를 누이고 이제 잠들 것이다. 마음도 시름을 놓는다. 나도 이제 잠시, 무위(無爲)로 소리의 짐을 내리고 싶다.

이정윤(본명 이돈미,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애드포인트 대표, 광주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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