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달의 여우촌 편지>

 가을의 끝 물입니다. 송이버섯도 끝 물입니다. 아침을 다니던 사륜차도 뜸해진 날 일없이 딸딸이 한대가 지나갑니다. 경운기를 개조하여 트럭 비슷하게 만든 것입니다. 짐 칸 구석에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으면 핀 송이버섯이 남은 증거입니다. 산에 꽃이 핍니다. 가을에 피는 모든 꽃은 국화인가요. 그렇다면 손톱만한 국화에서 노란 국화 그리고 보랏빛까지 참 여러 가지입니다. 십자화가 가을에 피기도 하고 환삼덩굴은 남은 줄기가 말라서 타 버렸습니다. 꽃은 변화하여 산화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구나 그런 감탄입니다. 나는 환삼덩굴이 아닙니다. 그런 내게 저 상징체계는 무엇인가요. 꽃이 피고 있습니다. 철 지난 노래를 부릅니다. 꽃이 지네. 맑은 달밤이 어제였지요. 늦은 밤을 맞추어 전화가 왔습니다. 달밤에 술에 취해 땅콩을 어깨에 매고 걷고 있다는 것입니다. 논두렁에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말에 실재의 답을 했습니다. 아침이 괴롭고 귀찮다. 그래요. 그의 목소리였습니다. 달밤. 스산한 밤 기운을 안고 물을 길러 가는 고단함도 있지만 그 곳에서 술이 취해 논두렁을 비틀거리는 슬픔도 있을 것입니다. 언제쯤 인생이 고해라는 황당하고 넓은 말을 이해할까. 혼자 골똘하였습니다. 그의 아침은 시린 속과 남은 일거리로 고단할 것입니다.

이경달 객원기자
MBS. ABS. CDO. CDS. 자주 듣고 보는 말입니다. 모기지의 이니셜이 MBS의 M입니다. CDS의 S는 가끔 성윤리를 말할 때 등장하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금융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기호입니다. 아마 현 금융의 부실 규모를 산출할 수 있는 분은 지구상에 없을 것입니다. 대략 2.4조 달러에서 3.6조 달러가 된다고 짐작하는 것이지 그게 어떤 형태로 변신해서 은닉되어 있는 지를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기호에 대한 해제나 주석 아니면 약어에 대한 설명정도입니다.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단위가 그 때는 K였습니다. 천 원 단위였지요. 어떤 기업에서 원 단위를 사용해서 기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수점을 사용하고 있지만 조 달러가 단위라는 것 자체가 의미의 무의미입니다. 무지 큰 부실을 예언한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여기에 7,000 억 달러는 껌 값입니다. 정도의 심각성이 여태 미국이 추구해온 탈규제와 달리 플랜 A, 플랜 B, 플랜 C로 건너갈 것입니다. '역경매 직접지원 국유화'라는 수순의 다른 말입니다. 민영화를 넘어서 규제 철폐를 요구해온 그들이 대책으로서 국유화로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돈은 세금입니다. 끝없는 감세를 요구해 왔던 이들이 세금에 기대어 살 것과 더불어 국유화를 모색한다는 것이 '참' 세상 변했구나 그런 감탄을 일으킵니다. 이들은 간단합니다. 돈을 버는 데 지장이 되니 규제철폐를 요구한 것이고 문제가 있으니 세금에 손 벌리는 것입니다. 형식적 논리의 모순이지만 일관성이 있습니다. 돈입니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무슨 말이든  무슨 행동이든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시그널입니다. 전쟁이 해결한 미국의 지난 세기의 금융위기와 규모가 틀립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유의미합니다. 더구나 여기에는 패권이 걸린 문제입니다.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미국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놓지 않을 것입니다.

   
▶(고슴도치)

미국에서 새벽에 전화가 왔습니다. 여태 내가 그의 연락을 받아도 아무런 응답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연락을 내게 시도했지만 내가 거절했습니다. 어찌 전화번호를 알아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안부를 묻는 형식을 띄고 이것 저것 끄집어내는 그의 말에 전화를 끊고 생각했습니다. 꼭두새벽에 무슨 일이지. 여기저기 안부전해 달라는 말도 덧붙이고 있었습니다. 참 웃깁니다. 어쩌면 그도 주택에 손을 댔을 지도 모릅니다. 처음에 재미를 보다가 지금은 막차를 탄 것인가 그런 의구심입니다.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인사도 없이 떠나든 놈이 뭔 짓을 했는지. 갸웃거립니다. 집.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어느 정도 남았을까요. 사고 팔면 돈이 되는 상품이라는 의미가 조금 더 클 것입니다. 아니 많이 클 것입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집은 물건이고 상품의 다른 이름입니다. 콜라나 담배나 배추나 고추 미사일이나 석유와 같은 상품입니다. 가치있게 보이기 위한 포장기술이, 전쟁을 막기 위한 전략적 무기라든가 인간다운 삶의 근간으로서 편안한 공간이라든가 하는 수식어가 절대 필요한 상품입니다. 이 상품에 인간의 노동은 도외시되어 있습니다. 포장의 정도가 심하다는 것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넘어선 증빙이겠지요. 누구의 결혼식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같은 전화를 몇 번이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내고 축의금을 준비하고 찾아간 결혼식에서 그는 인사도 없이 부조만 챙기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았지요. 예식장이 외진 곳인지라 내가 차를 준비하고 또 돈을 준비해서 하객을 대접했습니다. 그에게 나는 무엇이었던가요. 내내 좋은 배경으로 사진 찍고 비디오 돌리는 모습의 주인공인 그가 그토록 오라고 말을 건넨 것은 무엇이었던가요. 그런 느낌의 전화였습니다.

   
▶(차가 될 가을 꽃)

경제사정이 좋지 못합니다. 산골을 휘달리는 차를 보지 못합니다. 생태적으로 바뀌나 그런 물음을 던졌습니다. 트랙터 사용비가 오를 것이고 콤바인 임대료도 올랐습니다. 포크레인 비용도 많이 올랐구요.  가을이 조용하게 바뀌었다는 생각에 귀를 기울였더니 기차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괜한 신경질에 저 낯익은 소리를 놓쳤군요. 가을 햇볕에 맨 살을 드러내도 '참' 조용합니다. 아침 나절을 지나갔던 경운기 외에 또 다른 경운기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과 마찬가지로 갯벌탐험의 그들이 갯벌을 이리저리 삐대지 말기를 바랍니다. 산촌을 헤집던 그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듯 바닷가 갯벌을 헤집지 말고 정해진 곳에서 지내다 오는 버릇의 기회였으면 합니다.

욕망. 자본주의 경제학이 욕망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고 하지요. 수정케인즈이론. 주식차트. 참으로 극과 극입니다. 많은 이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로부터 재건을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시간에 따른 주식의 추이를 설명하는 그들을 보면서 웃었습니다. '참' 웃기는구나. 금융수학. 해석학, 선형대수학, 다 변수 적분론, 확률론, 편 미분방정식론 등이 그 차트의 이면에 깔려 있습니다. 낯선 단어일 것입니다. 그러니 차트를 보고 투자를 결정해야한다는 말이 우스운 것입니다. 딥에서 사고 랠리에서 팔아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금융수학에는 예측제어가 일정 가능해야합니다. 곧 예언입니다. 그들만의 예측이 가능한 모델을 꿈꾸는 것입니다. 이번의 금융사태. 노름판의 룰을 미리 예측하도록 만들고 판을 벌리고는 먹고 흔적 없이 틘 것이 아니지 그런 의문입니다. 누가 지금 쾌재부리고 있을까요. 혼자의 물음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경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욕망의 끝없는 실현을 그리 부르는 것입니다. 세상의 누구든 그의 마음대로 해야 하고 그가 한 것이니 옳은 것이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떠 넘기는 것이지요. 어쩌면 유일신 타령을 하는 사이비 종교와 이리 닮았는지요. 욕망의 끝인 죽지 않고 천국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이겠지요. 욕망의 실재 내용입니다. 그러니 깡통아파트가 되면 거리로 내몰리는 이것이 보도블록같은 것, 그러니 누구나 밟고 지나가야 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욕망은 나를 외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욕망은 욕망을 재생산합니다. 욕망은 욕망에 함몰되어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게 합니다. 마약도 욕망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욕망은 '남'보다 잘 사는 것입니다. 타인은 정복과 파괴의 대상입니다.

대외의존도. 대한민국의 대외의존도는 얼마나 될까요. 대미종속은 어느 정도일까요. 거친 수치로서 70%와 11%입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22%이니 제정신의 경제구조라고 부르기는 힘들겠지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현실입니다. 생태학을 지향하던 어느 분이 세계가 고루 가난한 나라를 말하더니 어느 날 땅에 미친것과 돈에 흔들리는 것은 역시 나의 몸을 '기표'로 삼는 '나'라는 '기의'라는 것이 의문투성이고, 이기적인 유전자로 똘똘 채워졌다는 증거인가요. 나만 잘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림자 없는 빛이 없다고 저번 글에 올렸습니다. 천국만 있고 지옥이 없다면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는 끝없이 적을 만들지 않으면 존립이 무너집니다. 이번 금융사태는 또 수많은 실직자와 구직 희망자를 양산할 것이고 인간 사이에 형성된 질서, 그러니 문화와 생태의 파괴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장 입에 풀칠할 방도를 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여기에는 토를 달지 못합니다. 있더라도 극소수일 것입니다. 아마존 밀림이 벗겨지고 강물이 마른다는 사실이 화면을 떠도는 사진 한 장으로 이해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러다이트'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러다이트의 그들을 기억하고 있지 못합니다.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일 따름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가까운 미래는 몰라도 먼 미래는 느슨하고 심심한 날을 보내는 것 그 자체가 삶이라고 규정되지 않을까요. 지금은 바쁩니다. 일류학교에 바쁘고 좋은 차와 명품에 바쁘고 매년 가는 해외여행에 바쁘고 또 해외여행이 값싸게 먹힌다는 설명이 바쁘고 적어도 이 정도는 입어야 한다는 알듯 모를 듯 한 소리에 바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요. 나는 내게 나의 의미를 물어 본적이 있는지요. 적당히 얼버무리지는 않았는지요. 그렇다면 지금의 둘레를 찬찬히 보아 의미를 곱씹는 것이 먼저 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미룬다든가 게으르다든가 하는 정당화는 없습니다. 그런 물음의 디딤돌로서 지금의 경제상황은 무엇이고 또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감나무 아래 눕기라도 해야 감이 입안에 떨어지는 행운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감나무 아래 입을 벌리고 눕는 행위를 하고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는 지를 되씹고 되씹는 것입니다. 그게 나의 몸이라는 나의 언어라는 표현아래 가리워져 있는 중첩된 기의를 발견하는 첫걸음이겠지요. 환율이 깨 춤을 추는 지금에 나는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조금의 도움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타버린 환삼덩굴)
갈잎소리가 없습니다. 바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당이 어둡습니다. 구름이 끼웠습니다. 21세기의 야만이 지금 마당에 그림자를 드리울지 모르겠다는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통제해야할 금융과 자본에 책임을 지우지 않고 시민을 대상으로 공포처럼 다가오지 않는지 그런 의구심도 있습니다. 중력의 통제를 받는 운명이라는 그런 생각과 전자기력으로 통합된 현실의 힘을 실감하는 실재입니다. 관념적이지만 분명한 것입니다.

-여우촌에서

이경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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