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촌 편지>

메말랐던 곳에 마구 쏟아 진 비였습니다. 여러 이유를 가진 전화불통이었습니다. 그런 이후에 흐린 하늘입니다. 저녁하늘. 푸른 바탕에 구름과 노을이 배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비오는 날 보였던 두꺼비도 어디로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반면 벌레 소리가 돌아 왔습니다. 목조집에 나타나는 날 개미 떼가 귀찮습니다. 벌레들도 그들의 생식과 번창을 이번 비로 때를 맞이하였나요. 멀리 저 골에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지금도 연락이 되지 않는 분들이 꽤 된다는 살아서 듣는 소식에 소문입니다. 내린 비는 흔적을 곳곳에 남겼습니다. 무너진 둑과 다시 연결된 전화로 묻는 안부와 나리꽃의 주홍과 마당이 시원하여 나타난 게으른 고양이입니다. 고양이. 몇 일간 집을 비우더니 나타났습니다. 작은 한 마리는 왼쪽 앞다리에 상처를 가져왔습니다. 깊은 상처입니다. 늘 있는 일 같고 많은 비의 과정인 듯합니다. 달맞이 노란 꽃. 꽃잎을 적당히 접은 모습입니다. 창으로 언덕에 반듯한 모습을 봅니다. 비 온 뒤에 보송보송한 공기를 바라는 마음에 초를 켰습니다. 곰팡이와 습기. 죽음의 오래된 상징입니다. 건조하기 위한 매개로서 초는 삶을 향한 문화적 장치이겠지요. 비온 뒤 먹이를 보채는 고양이 소리와 뭇한 벌레 소리의 공간을 나는 바삐 지나면서 듣고 그녀는 방을 닦으면서 듣습니다.

이경달 객원기자
폭우. 매개로서 많은 물입니다. 댐 위를 떠 돌아다니는 폐기물과 쓰레기 더미입니다. 저걸 다 건져도 쓰레기와 폐기물을 만드는 사회는 작동하고 있습니다. 비만의 그들입니다. 먹고 먹고 또 먹는 그들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배가 고픈가요. 음식이 맛있어요. 그냥 먹어요. 시니컬할 수 없는 시니컬한 답변이었습니다. 먹게 만드는 매개로서 음식물에 숨어 있는 지방과 소금과 설탕도 있겠지요. 말과 달리 참으로 맛있게 먹는 그들입니다. 그들 안에 음식이 있고 음식 안에 그들이 있습니다. 음식과 일체입니다. 물이 매개가 되어 문명의 산물인 쓰레기와 폐기물이 댐에 떠다니고 있습니다. 댐을 둘러 싼 모든 것은 문화의 산물인가요. 봉지와 봉지입니다. 먹는 것을 싼 봉지. 먹는 것을 키우는데 필요한 봉지. 먹는 것을 보관하는 봉지. 그리고 봉지의 봉지입니다. 가공하는 것을 넘어선 새로운 화장 기술같은 것이 봉지라는 생각입니다. 가면과 비슷한 것이고 성형과 닮은 것이겠지요. 댐에는 그런 가면과 화장의 흔적입니다. 문화의 현재입니다. 많은 비가 내렸다는 사실에 늘어나는 수량이나 터지는 둑과 달리, 보이는 이것이 문화의 현재이고 사회는 양산하고 있습니다. 물이 있기 전에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비오는 날 두꺼비)
샘. 동그란 수도관. 그리고 물을 끌어 올리는 전기모터. 동파방지를 위한 열선. 겨울을 나기 위한 발명품이 샘과 이집 중간에 늘어져 있습니다. 집안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물이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물이 나오지 않을 때에도 사람이 살았지요. 수도에 물이 나오니 또 따스한 물이 나와야 했지요. 이런 순서에 따라 보일러 시설은 자동으로 장착되었습니다. 큰 빌딩의 자동문같은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낙뢰로 수도용 전기모터가 나갔습니다. 고장났습니다. 비가 그친 뒤 그걸 보고 고쳐야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물. 샘에서 떠다 먹자. 꼭지만 틀면 나오는 자동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불편과 불합리를 그만두자. 배수를 위한 둥근 토기가 사천 년 전에도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상수도를 향한 고대문명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샘이 있습니다. 오십 미터 남짓 거리를 외면해온 시간이었습니다. 여름. 목욕할 물은 냇가의 물을 길어 냇가 옆의 목욕탕 큰 통에 부어 사용하면 됩니다. 먹을 물과 허드렛물 목욕할 물과 빨래할 물을 분리해서, 보관할 방법과 길러 올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녀도 고개 끄덕였습니다. 집 둘레에 괜찮은 샘이 꽤 있습니다. 동그란 수도관이 강도를 유지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전기로 압력을 낮추고 또 수압을 확인해서 물을 끌어 올리는 장치라는 것이 근래에 가능했던 기술입니다. 마당에 얼던 수도가 얼지 않는 것도 역시 수도관을 감싸고 있는 전기입니다. 그게 내구성이 있어야 하고 필요한 공사기술이 있어야 하고 유지하는 데, 역시 돈이 듭니다. 관두기로 했습니다. 물을 쉽게 먹는 매개로서 지불해야 할 것이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뭐 좀 아끼자는 생각과 다시 공사에 필요한 이것 저것이 귀찮았습니다. 그녀와 둘이서 삽니다. 아이가 떠난 탓인가요. 냇가 목욕이 즐겁습니다. 집안에서 물을 사용할 때보다 넉넉했습니다. 단지에 물을 받아 앉혀서 먹습니다. 수도없는 집에서 여름습기가 조금씩 지나갑니다. 샘과 이 집의 매개로 들어선 것이 편한 만큼 사용하기 위한 마음조림이 있었습니다. 폭풍이나 번개가 지나갈 때에 미리 물을 받아 두는 습관과 결합하여 힘들다는 생각이 흐릿합니다. 도회지에 익숙한 매개물에 불편을 느낀 것은 홀로 설치하고 관리해야하는 부담이겠지요. 샘을 샘으로 두기로 했습니다. 수도가 없어도 살았다는 당연함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앞산에)
장작. 기름 보일러. 장작 기름 보일러. 나무침상을 사용합니다. 게다가 양털담요이니 바닥으로부터 냉기는 없습니다. 보일러를 사용하지 않았던 시간이 꽤 되었습니다. 따스한 매개로서 장작과 기름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따스한 겨울이 희망이었습니다. 그런 농담을 했지요. 집에 물이 있고 보일러가 필요했던 큰 이유가 아이가 집에 있을 때 밤 늦게 와서 하는 목욕 때문이었습니다. 목욕하는 취미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둘이니 그럴 필요가 드뭅니다. 물을 데워서 하면 됩니다. 추위. 양털이 침상에 깔려 있고 전기담요입니다. 밥할 때 온기로서 가스난로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추운 날은 전기 난로도 사용합니다. 그럭저럭 지냅니다. 다만 추운 날 집에 오시는 분들이 춥습니다. 날이 추운 탓입니다. 외기를 막기 위한 장치는 역사교과서나 고고학 자료를 뒤지면 주거지에 나타납니다. 굶지 않는 것과 더불어 춥지 않는 것입니다. 장작을 쓰지 않는 것은 따스한 방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인력을 소모했기 때문입니다. 구들의 효율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나무연기를 감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벽난로를 놓을까요. 그 때 나무연기를 어찌 할지 미리 생각해 봐야 할 듯합니다. 올 겨울 수도와 물이 없는 집을 생각하면 괜히 흐뭇합니다. 눈길을 걸어 저 샘에서 물을 길러 오는 즐거움과 얼 걱정없는 수도와 보일러입니다. 겨울에 집을 비울 수 있겠네요. 귀찮음을 넘어선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입니다.

   
▶(나리꽃)
중간자. 매개자.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는 생각입니다. 신과 인간의 중간에 누가 있는가요. 수행자. 신과 인간 사이에 수행자가 있지 않습니다. 물이 지나간 흔적이 남은 어느 날 누가 들렀습니다. 이런 저런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는 악몽이었습니다. 이래라 저래라. 아무리 철이 없고 아는 체가 직업이라 해도 지나쳤습니다. 불쾌했습니다. 아마 그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신과 인간의 중간자임을 자임하는 그였습니다. 도회지 사무실 간판을 보면 중간자의 시대라는 느낌입니다. 중간자. 매개물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수많은 자격증과 정치의 대부분이 중간자임을 내세웁니다. 중간자가 없어도 사람은 살아 갈 수가 있었지요. 그러니 그들이 삶의 해법을 발견했다면 발견하기 전의 삶도 인정해야함을 알고 있는지요. 수도. 물을 집안에서 얼지 않게 공 들이는 것은 많은 손실을 감내해야하는 합니다. 단순히 매개로서 돈을 지칭하고, 돈이 많으면 되지 라는 말은 유용하면서도 뭔가 앙금이 남습니다. 많은 돈이라는 것은 무한정의 자원과 직선의 시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비오는 날, 어떤 날에도 전화 한통 없던 그가 갑자기 전화를 걸고 찾아와서는 왜 설교를 늘어 놓았을까. 중간자로서 위치가 시원찮은 탓인가요.

자연과 문화의 중간지대나 매개물은 무엇일까요. 샘. 얼지 않는 샘에서 내가 물을 뜰 것입니다. 집안의 온기. 이것 저것을 조금씩 준비하면 자연의 원형질인 추위에 얼 걱정은 없겠지요. 아직도 현실과 몽상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나'인가 그런 생각이 든 것은 물의 뒷정리를 할 때였습니다. 순간 외부 사물과 '나' 사이에는 뇌라는 중간자를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장작이나 기름의 직접적인 열기가 물로 치환되는 장치를 들어낼 것입니다. 자동이 아닌 수동과 반자동의 오래된 습관에 발을 내딛는 것이 어쩌면 가장 문화적인 것, 곧 마음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뇌를 거쳐 사물에 의문을 표할 수 있겠지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매개자로서 뇌를 생각하는 것이 외부의 사물과 천천히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이 산골에서 처음 생각대로 지낼 작정입니다. 옷이 좋아졌고 따스합니다. 그러니 먼지와 재를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 집안에 사용되는 것 중에 태울 수 있는 것이 남았습니다. 재의 상징은 종말의 입구라고 하지요. 문명이라는 이름이나 문화라는 이름의 매개체. 형식만 남아 있는 수도꼭지를 보면서 물 폭탄이 떨어진 이웃을 떠 올렸습니다.

   
▶(저녁 하늘)
물 폭탄의 그 곳. 문명의 상징으로서 속도를 뜻하는 도로와 전기 그리고 전화와 상수도는 다시 연결될 것이지만 연결될 어떤 곳은 잊혀지겠지요. 집이 통째 사라지거나 사람이 죽어 나간 곳이기 때문입니다. 소멸의 장소이니 연결될 내용이 흐릿하겠지요. 물이 들이쳐 가재도구가 잠기고 단지가 부서져 나간 곳도 수복이 힘듭니다. 역전 앞 낡은 집에 사는 형편이니 무슨 돈이 있을까요. 문화의 상징이었던 마을의 변모입니다. 방앗간이 사라지고 목공소가 사라지고 역전다방이 사라지고 이발소와 여인숙 간판이 사라집니다. 위치만 남았습니다. 아마 이번 물은 그런 문화를 털어 내고 지금으로서 가치있고 생산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곳만 남기겠지요. 그것도 아니면 무너진 집이 재처럼 사라지겠지요.

   
▶(그리고 저녁하늘)
악몽. 고야의 그림을 저기에 걸어 두었습니다. 술이 취해 춤추는 당나귀가 있는 그림입니다. 그 당나귀가 누굴까. 볼 때마다 우습기도 하고 또 볼 때마다 돌이켜 집니다. 매개로서 전기와 달리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자라는 생각이 악몽인가요. 샘과 수도의 중간자. 불과 따스한 방의 중간자. 중간자 없는 것이 있을까요. 갸웃거려집니다. 중간자가 지나치게 비대한 것으로 내가 생각한 탓인가요. 줄여 볼 생각입니다.

이경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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