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종고 1회, 강진원 성균관 유도회 사무총장

풍요로움 속에서 이런 생각은 결코 사치가 아니라 머지않아 중장년층에게도 해당 될 것이다.
아침의 일출보다 황혼의 일몰이 더욱 장엄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깨끗하고 고고하게 인생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에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인생을 보람 있게 살아가는 것으로, 삶의 의의가 큰 것이다.
바람직한 삶에 대해서는 숱한 선각자(先覺者)들의 가르침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할에서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데 있다.
본인은 광주(廣州) 무갑산(武甲山) 아래서 태어나 광주종합고등학교 1기생으로 이제 무갑산을 수 놓는 석양 빛에 해당되지만, 사랑하는 후배님들 그리고 젊은 세대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몇 마디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다.
급변하는 오늘날은 노인들이 살아가기가 너무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시대 흐름에 따라 가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연일 매스컴을 통해 터지는 사회문제 등으로 사회 부조리와 가치관의 혼란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의 고전인 『주역(周易)』 에 도덕 윤리가 상실하여 사회가 극도로 혼란해지면 가정(家庭)에서 치유책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을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자연 질서는 순환을 거듭하지만, 언제나 올바름 [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란위기(累卵爲機)에 직면하고 방향(方向) 키를 잃어 망망대해(茫茫大海)를 표류(漂流)하는 범선(帆船)과 같은 현실을 선배와 어른들은 결코 이대로 좌시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된다.
오늘날의 사회는 물질만능주의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함에 따라 인성(人性) 중심의 윤리도독은 설 자리를 잃어 버려 가정이 무너질 지경에까지 와 있다.
그러므로 첫째, 가정의 소중함을 알자.
가정은 부부가 자녀를 훈육(訓育)하고 삶을 유지하는 안식처로, 생존과 성장의 기반이 되며 참된 사랑과 조화를 배우는 인격 형성 도야(陶冶)의 터전이다.
가정이 붕괴된다면 이것은 사회 윤리의 붕괴이며 국가의 멸망으로, 인간의 건전한 성장과 건전한 국가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가정을 지켜야 한다.
둘째, 가정교육의 중요함을 알자.
가정 교육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부모와 어른을 알고 형제간 우애있게 지내는 것이다. 최근 孝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것은 자식된 도리 부모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시대가 변하다보니 교육도 바뀌었다. 외국어 등 조기교육도 중요하지만 마음가짐과 언행 등의 생활예절 위주의 실천적인 덕성교육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자애로움 [嚴父慈母;엄부자모]은 자식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마음으로 이러한 마음이 잘 이루어 질 때 자녀들이 자발적으로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알 것이다.
셋째, 어른을 공경(恭敬)하고 어버이에게 효(孝)를 다하자.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쇠망(衰亡)은 외침에 의해서 보다는 국가 근간이 무너짐과 같이 하고 있다. 우리에게 보전된 가정의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느 항상 자신의 허물을 살펴보고 반성하는 수신(修身)과 어른을 공경하고 어버이에게 효를 다하는 경로효진(敬老孝親)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까마귀는 어린 새끼가 성장할 때까지 키워주면, 어미가 늙어 먹이를 구할 힘이 없을 때는 새끼가 어미를 돌본다고 한다.
반포지효(反哺之孝)로, 오늘날 실정을 비추어 보면 말 못하는 까마귀도 자식을 돌보고 어미를 보살펴 주는 행위에 부끄러움이 나온다.
효를 행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효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이다. 효(孝)는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진실된 마음과 성실한 마음으로 인간의 도리와 주어진 자기의 직무에 책임을 다할 때 가능해 진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효는 자녀의 희생을 강조하는 전통사회의 권위적인 덕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전통사회에서 부모다움을 위한 노력보다는 자녀다움의 효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여 왔던 나쁜 관습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는 부모의 역할, 다시 말해 어른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자식들이 변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부모 그리고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할 것이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다보면 이런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손자뻘 같은 청년이 좌석에 앉아 졸고 있는 모습은 귀엽다. 그 친구가 피곤해서 조는 것이 아니라면 좌불안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좌석에 있는 사람에게 버럭 화를 내는 노인을 볼 때 불쾌감이 앞선다. 어른이 오면 자리를 양보한 것은 미덕이지만 의무는 아니다. 철없는 행동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오늘날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하소연은 어른 노릇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말(己所不欲 勿施於人)처럼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와 나의 관계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 유지되는 것으로,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 선후배, 스승과 제자, 친구, 직장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자.
과학문명의 발달로 환경문제로 생태계가 위기로 치달아 결국 파멸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자연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자연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인간이 생명을 부여받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착취하는 것이 아닌 만물과 함께 존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는 이 세상의 기둥이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일출이며 희망이다. 그동안 쌓여온 경험과 경륜을 후배들에게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성균관(成均館)을 출입하면서 사회봉사활동 한지 수년동안 현실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내 고향 광주가 살기 좋은 고장인 것은 가정과 사회 윤리 도덕을 지키는 효가 살아 있으며 실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글귀가 고마울 따름이다.
- 강진원(姜鎭遠)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사무총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