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최병길 前광주로타리클럽 회장

국제무역상, 외교관, 무기수입상, 첩보원, 개화사상가, 독립운동가, 천의 얼굴을 가진 역관을 입체적으로 복원한 최초의 책! 중개무역으로 동아시아 상권을 장악한 조선의 통역사, 역관은 능통한 외국어 실력과 탁월한 협상력으로 청일간의 중개무역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 빈약한 조정의 재정을 확충하고 나아가 전체 조선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실무의 외교관으로 국제무역상으로 첩보원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중인이라는 신분적 제약을 딛고 막후의 실세로 부상한 역관, 주목 받지 못하고 잊혀진 그들의 역사를 다시 쓴다.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거지 행색의 허생에게 거금 만 냥을 선뜻 꿔준 변씨는 역관 출신으로 조선제일의 부자가 된 실존인물이었다. 역관들은 요즘으로 치면 투잡스족으로 외교관이자 국제무역상이었다. 세계 최초의 중국어 학습서를 저술한 사람은 조선의 역관들이었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事大主義)로 여겨지는 조공은 실제로는 조선의 잇속을 챙기는 국제무역이었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대외정보 수집능력으로 역관은 화약의 원료를 밀수입하거나 직접 제조하여 조선군의 전투력 향상에 기여하기도 했다. 역관 오경석은 병인양요 때 뛰어난 첩보활동으로 프랑스의 막강한 함대에 맞서 조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역관은 천주교 서적과 새로운 서양선진문물을 조선에 들여옴으로써 개화사상의 주역이 되었고 이는 한말 애국계몽운동으로 이어졌다. 역관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앞선 시대감각으로 조선사회의 변화를 촉진하였다.
역관들은 어떻게 거부가 될 수 있었을까? 역관들이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직업상 특징 때문이다. 역관들은 현재로 치면 두 개의직업을 가진 투잡스족으로 외교관 이자 국제무역상이었다. 이 두 직업은 모두 거부가 되기에 유용한 특성이 있었다. 해방 이후 재벌 성장사가 종합무역상사 성장사이기도 하듯이, 국제무역은 예나 지금이나 거부로 가는 지름길이다.
또한 외교관의 특성도 거부가 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역관은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국왕에게 통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업상 국왕을 자주 면대할 수 있었다. 또한 대군이나 부마같은 왕실 사람들, 고위 관료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들이 중국이나 일본의 사신으로 갈 때면 역관들과 오랜 시간같이 지내야 했다. 이는 역관이 국왕이나 고위관료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들이 중국이나 일본의 사신으로 갈 때면 역관들과 오랜 시간 같이 지내야 했다. 이는 역관이 국왕이나 고위 관료의 비호를 받을 수 이 있을 만큼 권력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위 관료의 비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권력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와 가깝다는 것은 축재의 좋은 조건이다.
홍대용이 중국 북경 기행문인 ‘담헌연기’ 포상조에서 통역들은 모두 높은 이들에 등을 대고 있소 라는 말이 이를 대변한다. 역관들은 재산을 지키기에도 조건이 좋았다. 재산을 부당하게 빼앗길 경우 바로 권력자에게 알려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역관은 부자가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세계 최고(最古)의 중국어 학습서 ‘노걸대’ 고려 말과 조선시대에 사역원에서 역관들이 중국어 학습 교재로 사용된 책은 노걸대, 박통사였다. 노걸대는 초급 수준의 중국어 교재이고 박통사는 중급 수준의 중국어 교재로 노걸대는 현전하는 세계 최고의 중국어 학습교재이다.
지금으로부터 700여년 전인 1280년경 원나라의 대도시인 북경으로 고려상품을 팔러가던 상인 3명이 길에서 우연히 만난 요동성 출신의 중국 상인과 동행하면서 여행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를 책으로 엮은 노걸대는 구어체라는 것이 흥미롭다.
시대가 변했지만은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면서 제2외국어는 필수이며 5~6개 외국어를 구사하며 전 세계의 외교와 비즈니스를 통해 국익을 창출하는 외교관, 통역능력은 이제 국가경쟁력을 높이인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옛 역관들의 활약상을 이해하며 새로움을 창조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