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최병길 前광주로타리클럽 회장

“손바닥만 한 창으로 내다본 세상은 기적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김영갑은 사람이면서도 자연의 신령한 정령을 먹고살며, 자연에게 말을 걸고 자연이 들려주는 신비한 음성을 사진에 담을 줄 아는 작가이다.
그의 사진 속에서 꿈틀 거리는 원초적 적막감과 그리움은 근원적으로 고독 저편 신화의 마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가 루게릭 병원균에게 살과 근육을 송두리째 내주고도 살 수 있는 것은 그런 내공을 닦은 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합일되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모델이다. 언젠가 그가 이어도로 자취를 감추는 날, 그의 예술도 대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안성수 (이어도를 훔쳐본 작가)중에서 -
김영갑 2003년 당시 나이47세 직업 사진작가 가족관계 독신 서울에 살면서 전국을 돌며 사진작업을 하다가 1982년에 제주도의 풍광에 홀려 그곳에 정착, 20년 가까이 오로지 제주도 중산간 들녘을 필름에 담는 일에 전념,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의 폐교를 임대하여 2년에의 작업 끝에 국제적인 수준의 아트 갤러리를 꾸며 운영 중. 너무나 가난한 사진작가, 최소한 예술을 한다면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그이는 필름 값, 인화지 값만 있으면 먹는 것, 입는 것으로부터는 자유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주위에서 이제 고생그만하고 돈 되는 일을 하라고 권했지만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 정착한 그는 사진 외에는 모두가 공허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진 찍는 것과는 많은 것이 달랐다. 우리는 보는데로 찍지만 그는 안개가 휘몰아치고 잠시 멎어가는 짧은 순간을 위해 하루 종일 이틀사흘 일주일을 기다리며 그 한순간을 기다리며 셔터를 눌렀다.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 메고 다니는 그를 수상하게 본 주민들은 파출소에 신고하고 몇날 며칠을 불려 다니며 간첩으로서 오인 받고 집주인으로부터 냉대 받는 시절도 있었다. 김영갑은 사진만 찍은 것이 아니다. 제주도의 산간 오지의 삶을 꾸려온 노인들과 함께 했다. 나이80에도 물질하는 할머니 자식들이 장성하여 먹고사는데 불편함이 없는 할아버지들이 새벽부터 들에 나가 일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살아온 과정을 익히고 배웠다.
제주도에 하늘이 열리기 전에는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갔는데 그때마다 마을에서는 혹시나 못 돌아올 것을 걱정하며 잔치를 베풀어 주었던 시절, 지독한 춘궁기를 넘어야 했고, 일제의 수탈, 4.3사건 등 제주의 역사에서 민초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됐던 시절의 아픔이 뼛속에 저려있다.
배고픔에 지치면 이집 저집다니며 끼니를 때웠고 인화지는 살망정 버스비를 아끼며 두시간을 걸어서 다녔다. 간신히 세를 얻은 단칸방은 안개와 습도를 이기지 못하고 필름은 곰팡이가 설어 버리기가 일쑤였고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툭하면 카메라를 전당포에 맞기고 찾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그의 제주풍광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간혹 서울에서 카메라를 메고 온 사람들이 한껏 장비자랑을 하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찍지못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본인은 일주일째 낙조 한 장을 찾기 위해 악천후를 견디며 기다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영혼이 담긴 작가는 현실을 떠난 지독한 아픔과 고독 속에서 영글어가는 것이 아닐까? 풍족함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무한한 가치는 신이 그냥 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간혹 지인들이 찾아와 봉투를 주면 여지없이 필름과 인화지만 샀다. 인간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너무나 없다보니 옷감도 염색을 하여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어 냈다. 바지도 만들고 웃저고리도 만들고 그게 낙이었다.
어느 날 기침이 나고 기운이 점점 없어지는 자신을 보며 동네 의원을 찾았는데 영양실조에 운동부족이라고 하지만 그가 희귀병인 루게릭병(근육이 마비되고 경직되어가는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숨쉬기조차 힘들어지고 문지방을 넘는 것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씹는 것은 아예 못하고 죽을 넘기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전시회를 연다.
사진을 날라주었던 용달기사가 값 대신 사진 한 점을 부탁하며 산간마을 폐교를 임대해 갤러리를 개척한다. 다 쓸어져가는 학교를 개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정상인이 아닌 희귀병이 진행 중인 당사자였다. 어느 날 형제들이 찾아와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그의 누님은 끝까지 동생을 이해하며 조금이라도 호전이 될까 모든 치유법을 뒷바라지 한다.
작가는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형제와 가족의 사랑을 한껏 느꼈다. 나의 친지, 가족,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갤러리를 완성하게 된다. 갤러리를 돌아본 제주 토박이들조차 이사진이 제주가 맞느냐고 할 정도의 사진은 일반의 눈에 아닌 영혼의 눈으로 현상한 예술이었다.
풍족함에서는 깊은 내면을 볼 수 없는 것 같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난 혹독한 삶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초월한 사진작가의 삶을 조금이나 이해 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