慾望이란 이름의 電車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재화는 유한하다"는 것이 소위 경제학의 전제란 것은 조순 씨의 명저 경제학원론을 배운 세대는 첫 장에서 대면하는 이론의 출발이다.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지 않던가 또는 재화가 무한하다면 경제학의 가설은 출발할 수 없는 것이다.

유명한 작품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느끼는 교훈은 그 전차에는 불행히도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욕망은 파멸에 이르고서야 비로서 욕망의 실체를 그나마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한질주...아우토반을 달리는 사회】

인터넷은 사고의 속도를 향하며 우리는 인터넷 이전의 최대시속 50-60킬로의 국도를 달렸다면, 지금은 아우토반을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토반의 불문율은 이곳을 달리는 이들이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최소한 중상 직면한 다는 것이다.

즉, 내가 먹는 마음, 생각은 단절된 비전도성의 시대를 넘어, 초전도체 시대에 들어서 사회 모든 현상이 내 마음먹음에 기인할 수밖에 없는 고도의 집적된 상호 밀접관계의 시대에 우리가 이미 돌입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위 우리가 개탄하는 사회악이라 하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존재했기 때문에 표출된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호흡의 진리...들여마쉰 숨은 반드시 내쉬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은 호흡을 바탕으로 생존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에고에 빠져 들이쉰 숨이 내 것이라 고집한다면 어찌되겠는가? 들숨을 고집하고 내쉬지 않는다면 결과는 자명한 이치인 것이다. 앞으로 전개되는 고밀도의 생존의 장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및 우주가 이미 태초에 분리되 않았다는 것을 극명하게 실감해 가는 시대인 것이다.


【이미지..내 존재의 필름에 맺힌 상】


인간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또한 미래를 상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가져온 경험이란 순간 순간 그 당시 나라고 하는 에고의 관념이 경험을 통해 받아들인 이미지에 불과한 것을, 우린 마치 그것이 실재인 양 관념을 구축하기 때문에 늘 변화하는 현실과의 갭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이 시대의 화두..열린 공동체로의 이행】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의 가치라면 베푼다는 생각 없이 베푸는 것이리라, 2천년 전 예수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했듯이...

참으로 이해는 쉽지만 집적된 고밀도의 에고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생존이 이를 행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사고의 속도에 수렴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하는 통과지점인 것이다. 전자정부의 구현이 눈앞에 도래한 마당에 얼마전 까지의 구시대적 반 절연체 시대에나 가능했던 이상과 현실의 갭은 앞으로 머지않아 존재할 수 있는 그 기반이 사라질 것이다.
어떤 형태의 주장과 고집도 더 이상 카리스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름너머 푸른 하늘】

지구상의 모든 일은 인간의 사고의 범주를 벗어나 본 일이 없다. 비록 당대의 엽기적인 것이라도 당대에 존재한 사고의 현실화이지,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일은 절대로 우주에 가시화되지 않는 법이다.


【화투 48장...민화투에서 고스톱까지 창조】


예전엔 고스톱이 없었다. 민화투, 짓고땡등 재미있는 화투의 나름대로 규칙이 진전을 해왔다. 물론 상대적으로 민화투보단 고스톱이 재밌다. 우리의 삶은 참으로 민화투 너머 고스톱이 있다는 것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가치에 다수가 오랫동안 빠져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통일장이론을 발견했듯이, 우리는 결코 그 무엇이든 인정하고 머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 우려해야 할 것은】

9.11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소수에 의해 지배받던 시대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소수는 다수에게 다수는 소수에게 서로 긴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극히 소수가 마음을 먹으면 다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생존양식을 뒤 없을 변화까지도 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21세기 직전까지 존재해온 가치관으로 새 술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상호(相互)가 완전히 노출된 입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논의도 무의미한 것이며, 따라서 모든 형태의 만남을 통해 눈 여겨 볼 대목 또한 열린 마음의 상태와 그 보급속도인 것이다.


이 시대는 분명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오늘의 각자가 진정으로 깨어서 상대방의 진면목을 기존의 집착이나 관념의 색안경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용기가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모든 것을 뛰어넘어 깊은 사색과 통찰이 절실히 요구되는 여울목을 우리는 오늘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울목은 좁은 문이요, 낙타가 지나 가야하는 바늘귀인 것이다.

박해권은 1960년 광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와 동 대학원(경제학 석사)을 마치고 (주)천하제일사료 구매부에 입사하여 해외원자재 선물거래 딜러로 활동하였다. 이후 '삐삐콜'이라는 무선호출안내장치를 개발하여 새로운 개념의 광고서비스 사업을 전개하는 (주)아드맥의 대표이사로 재직하였고, 지금은 공동체문화 창조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주)광주뉴스의 대표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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