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촌 편지> 이경달

지혜는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는다(智不責愚). 자주 들었지만 숙고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경우의 어리석음은 큰 지혜라고 하고 어떤 경우의 어리석음은 질책을 넘어 분노 원한을 불러 일으킵니다. 지식은 지혜와 다른가요. 차곡차곡 쌓인 지식은 지혜라고 하는 분을 만났다. 나름 납득하였다. 차곡차곡이라는 말은 시간을 두고 꼼꼼히 생각한 흔적을 담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지도 않지만, 만나도 이런 생각을 들을 기회가 희박합니다. 충동의 근간, 생명의 근간이라는 무의식과 속물의 현재가 휘젓기 때문입니다.

이경달 객원기자
아이가 배 고프다고 한다
또 배 고프다고 한다
밥 먹은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배 고프다고 떼를 쓴다
다시 밥을 차려 주어도 먹지 않는 아이가 배 고프다고 한다

고프지 않는 배를 고프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도 있고 어른아이도 있습니다. 내용은 여럿입니다. 그냥 '파블로프의 개'처럼 길들여져서 사용합니다. 침샘뿐만 아니라, 뇌가 그리 길들어져 있고 마음도 그러합니다. 또 시비거리를 만들고 말을 만들어 하는 경우입니다. 둘레에서 봅니다. 이와 달리 배가 고프다는 아이를 만납니다. 대가족인 그 때 할머니나 할아버지께서 삼촌을 시켜 데리고 나가서 말을 들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삼촌에게 '진짜 이야기'를 합니다. 배고픈 것과 무관한 그의 속내입니다. 삼촌, 엄마가 절대로 사면 안 된다는 장난감을 샀다. 무슨 돈으로. 엄마 지갑에서 끄집어 냈어. 무슨 장난감인데. 조립하면 되는 로봇이야. 얘들은 다가지고 있어 나만 없는 거야.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야. 어떻게 해. 엄마가 날 죽일지도 몰라. 집을 나가야 해 아니면 바른말 하면 용서해 줄까. 삼촌이 뭘 좀 해줘. 로봇은 저기 숨겨 두었어. 장난감이 흔하고 돈도 흔합니다. 그 때는 다 귀했습니다. 부모님. 인형과 로봇장난감을 질색하였지요. 돈이 귀했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단단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과 강해야한다는 것이 저변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어떡해야하나요.

그의 도둑질을 꾸짖어야 하나요
꾸짖고 벌을 주어야 하나요
거짓말을 가중처벌하나요
못 본체하나요
처음이니 용서하나요
부모로서, 자책하나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요.

어떤 부모가 계셨습니다. 밤낮으로 아이를 꾸짖었습니다. 엄마는 아이와 밥도 먹지 않고 꾸짖었습니다. 낮 밤을 꾸짖는 그를 보고 아이 잡겠다고 그리고 너도 일 나겠다고 할머니가 뜯어 말려 끝이 났습니다. 그분은 어머니를 영원히 잊지 못했습니다. 늘 무관심하고 집안 일에 바빴던 엄마라고 알았는데,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때 그는 세상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다고 했지요. 그는 다시 돈을 훔치지도 않았고, 로봇장난감도 사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외로웠던가요. 아무도 모릅니다. 아이의 외로움은 무엇인가요. 외로움이란 맹수가 우글거리는 사바나초원에 홀로 버려지는 것인가요. 또 있습니다. 유사한 사례였습니다. 엄마에게 삼촌이 일러바쳐 엄마가 알았습니다. 엄마는 꾸짖지 않고 피식 웃었답니다. 그 아이도 자라 명성있는 학자가 되었습니다. 두 분은 아이를 깊이 이해하고 그들이 가진 진정으로 아이를 대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잊는 진정성이 호기심의 아이들을 양지로 불러 냈습니다. 또 있습니다. 벌로서 채마밭에 나가 일을 하게 했습니다. 풀을 뽑고 물을 길러 밭에 줍니다. 요즘과 달리 그 때 물은 마을 공동 우물이었지요. 다시 그 때 일을 아이에게 물으면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그는 그의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어떤 생각은 죽이고 어떤 생각은 살렸습니다. 몸을 움직이면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육체와 마음의 경계가 거의 없다고 하지요.

막상 그런 일을 닥치면 우리는 어떠했나요. 나도 지키지 못했던 호기심과 유혹에 흔들렸던 그 잣대를 들이밀고 꾸짖나요. 아니면 달리 무엇을 하나요. 우리는 그리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최근 투자은행 M&A전문회사 헤지펀드 관련자의 글을 보았습니다. 이성은 범위 내에서 이성입니다. 합리성이라는 것도 물음 한두 번에 흐믈거립니다.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투영시킵니다. 이런 정도를 넘어선 무관심의 그들입니다. 무엇을 해도 무관심이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무관심입니다. 가족이 갈라집니다. 떠나는 가족과 돌아오지 않는 가족입니다. 우리는 부분의 이성과 합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혹 참회할 일이 있다면 이런 일이겠지요.

어떤 지역이 술 소비를 많이 할까요. 맨 정신으로 견디기 힘든 세상으로 아이가 팽개쳐진다는 생각입니다. 사회의 빠른 속도,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는 자본주의 변곡점을 넘나드는 속도에 의미와 가치가 상실하겠지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긴장에는 정도가 있습니다. 지나치면 고갈되지요. 고갈되면 산만하고 또 산만하면 비명을 지릅니다.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을 듣기 싫어하고 누구나 하는 것이라 해서 연약하다고 꾸짖지요. 아이가 없는 미래는 무엇일까요. 도시에 아이가 없고 어른과 노인만이 활보하는 풍광이 어른 거립니다. 아이없는 마을 우리는 보지만 역시 무심합니다.

새들이 숲으로 돌아온다
늦은 언덕에서 그녀와 일을 하다가 잠시 허리를 폈다
하늘은 회색구름이고 날은 덥다
더운 날도 새들은 숲으로 돌아온다
갈 곳이 없는가
나는 그들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냥 새들이 돌아온다
갑자기 늙었다는 생각이 내게 머문다
다시 고개를 들고 실없는 몇 마디로 늙었다는 생각을 턴다

어리석음은 고통이기도 합니다. 어리석음은 진실의 단면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리석음은 타고난 뇌가 지금이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탓이기고 하지요. 어리석음에는 망각이 있습니다. 망각은 증여이기도 하지요. 마음이 공상을 날라 다니는 것도 집중하는 일상이 버거운 일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증거인가요. 내 안에 일어나는 일에 좋은 것은 영민하고 빠른 것이고 나쁜 것은 우둔하고 느린 속도인가요.

어리석지 못했다 그러나 참으로 어리석었다
자신을 믿지 못해 횡설수설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하는 말도 알아 듣지 못했다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못했다
조각 조각난 이미지의 연결이다

가을이 온다면 뭘 할 것인지 손가락을 꼽습니다. 계절을 지나는 비가 내립니다. 죽기 전 나는 무엇이 지나길 바랄까요. 어린 시절과 청년기없이 세월이 갑자기 닥쳤다는 혼돈입니다. 시간은 영속적이 않고 시간은 파도의 물 방울 같다고 하였지요. 라이프사이클. 늘 준비하라고 하는 데 무엇을 준비할 지 막연한 날입니다. 지난 밤 번개가 심하여 두어 시간 전기를 내렸습니다. 촛불을 켜고, 환해졌다 어두워지는 번개 불과 천둥소리를 들으면 마음 조렸습니다.

- 여우촌에서

이경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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