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촌 편지>이경달

가슴이 시렸습니다. 가까운 분의 49재를 마친 어느 날 길에서, 여자분을 만났습니다. 웃는 그녀의 눈이 약간 소란했고 나도 실없는 말을 던졌습니다. 그녀도 남편의 49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스름 길이었습니다. 길에서 그녀는 내게 그녀 남편죽음을 말하였고 여태 울지 않았는데 나를 보니 눈물이 난다며 약간 웃었습니다. 웃는 늙은 얼굴에 주르륵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여태 울지 않았는데. 그 말과 달리 가슴의 샘이 마르도록 울고 울었겠지요. 사십 년 가차운 살가운 기억을 남기고 그가 단호히 이세상을 떠났습니다. 살기 싫어서 떠난 것인걸. 그녀의 말이었습니다. 아마 주검이 추억과 살가웠던 냄새와 그리고 집안 곳곳에 남긴 못 자국과 사용해온 책상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날 아내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라 들었습니다. 큰 엄마 이 문자 보시면 연락주세요. 아빠께서 어제 돌아 가셨어요. '쇼크사'였습니다. 장례식장에 간 분들이 있었던 일과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전해 주었습니다. 11월에 사람이 떠났습니다. 무엇에 놀랐기에 쇼크라고 할까 그런 생각의 강입니다.

이경달 객원기자
 등이 시립니다. 여름의 버릇대로 대충 옷을 입고 돌아 다니다가 땀이 식으면 등이 시립니다. 가을비가 내립니다. 내리는 비는 조용하여 즐거웠는데, 갑자기 마당이 꽝꽝 얼었습니다. 그늘진 곳의 나뭇가지에 매달린 흰색의 얼음덩어리. 갑자기 나타나는 바뀐 계절의 징표입니다. 아직 김치를 담그지 못했는데. 이런 잔걱정이 많습니다. 저 앞 능선에 어른 거리는 사람의 그림자입니다. 저 아래쪽에 작은 차가 서 있습니다. 지나가던 가족이 묻힌 그 자리를 찾아 온 것인가요. 무덤은 도회지의 그에게는 멀리, 산에 사는 내게는 눈 앞에 있습니다. 십 수년도 더 된 날 서울시청을 지나는 만장을 일상에서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느끼는 죽음이 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였지요. 산을 넘고 강이 가로지르는 곳마다 죽음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걱정거리와 같아 보이는 능선마다의 무덤입니다. 또 무덤입니다. 오래지 않는 저 산의 무덤을 봅니다.

늘 주검 소식을 들으면 참 이르게 죽는구나 그런 느낌입니다. 죽은 그들은 나이가 들만큼 들었습니다. 그리고 듣는 이로 하여금 한참 생각을 하게합니다. 다양하고 얽힌 감정의 선들이 이리 지나고 저리 지납니다.  허리를 가로지르는 안타까움입니다. 이 감정은 다스리기가 만만찮습니다. 내게도 힘들었습니다. 죽은 자의 유물이 책 곳곳의 사진에 실려 있고 박물관을 채우고 있지요. 그러나 깊이가 없는 탓인지 통찰을 가지고 죽음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내게 이번 연락이 남긴 그의 죽음은 남은 가족입니다. 죽어서도 뗄 수 없는 것이 이런 끈이겠지요. 끊어지지 못한 것이 그것만이 아닐 것이겠지요. 막연한 다발의 걱정거리입니다. '앞으로 어찌 살지'라는 것은 아버지가 사회에서 지고 있는 무게의 다른 표현이겠지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그는 던져두었습니다.

날이 추워지면 거실에서 밥을 먹기 불편합니다. 찬 도시락을 먹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이빨이 부딪혔던 좀 묘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거실이 아닌 난로가 있는 방에서 작은 상을 펴고 밥을 먹을 것입니다. 겨울의 밥은 거실이 아닌 방입니다. 오래된 전통인가요. 한옥의 삶이 거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겨울에 나는 이 방에서 보낼 것입니다. 방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방에서 책을 읽고 방에서 전화를 할 것입니다. 때가 되면 냇가로 물 길러 갈 것이고 또 해가 뜨면 마루를 깔 것입니다.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건강을 위해 내는 시간이 너무 적은 것 같다. 죽음을 연락받고 말을 건넸습니다.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요. 음악을 듣습니다. 그리고 저 아래까지 걷습니다. 때가 되면 목욕을 갑니다. 책은 늘 보는 것이지만 약간 괴롭습니다. 누가 아직 꿈이 남아 있는 탓이라고 합니다. 들과 마당에 일은 천지로 널려 있는 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무엇인지 또 반문합니다. 많은 가장들이 가지는 생각은 엇비슷하겠지요.


   
▶파장입니다.
죽은 자와의 관계가 끈끈하였습니다. 이런 탓을 핑계로 슬퍼하는 그들을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만나는 것이 위로가 될지 아니면 다시 조용해진 남은 자의 감정의 물결을 휘 젖지는 않을런지요. 그 곳은 지리적으로 멉니다. 외진 곳이 내가 사는 곳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가는 데 하루가 걸립니다. 누구에게 차를 부탁했습니다. 만난다는 것에는 설레임도 있지만 이렇게 불편이 깃든 긴장감도 있습니다. 교대근무를 하던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아버지와 달리 그들의 일상이 해가 뜨면 잠에서 깨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잘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하는 희망을 안고 만나러 갑니다.

-여우촌에서

이경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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