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기 민주평통 독도수호결의대회를 다녀와서

낮선 곳으로의 여행이란 사람의 마음을 곧잘 흥분 시키며 설레게 한다.

한참 88올림픽이 진행 중 이던 때이다.
비록 처음으로 업무상 출장이었지만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며 첫 해외 나들이 할 때다.
김포공항에서 우리의 국적기 대한항공에 오르던 때의 그 설레임(당시에는 비싸도 대한항공만 타고 다녔다), 98년 정주영회장이 소떼를 몰고 가 성사시킨 금강산 개방이후 육로관광이 본격화 되던 때 당시 현대아산 김윤규 회장과 우리민족서로돕기본부 팀들과 연탄을 가득 싣고서 가는데 그토록 굳게 닫혀있던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육중한 철문이 마법에 걸려 꼼짝 않고 있다가 마법이 풀려 스르르 열리는 듯 내 몸이 북한 땅으로 빨려 들어 갈 때의 신비로움만큼이나 오늘 나는 흥분된다.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새벽 4시 약속장소인 구3번 종점으로 갔다.  
벌써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기다리고 있었고 역시나 부지런한 이석규 간사위원은 인원점검하기 바쁘다. 기쁜 마음에 잠을 설쳐 늦었다는 엄무영위원의 승차와 함께 짧지만 긴 2박3일의 여정이 시작 되었다.

허창식 협의회장은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우리의 땅이 분명한데도 일본이 끊임없이 야욕을 부리는 것은 그만큼 역설적으로 독도의 무한한 가치를 일본이 탐내는 거다" 라며 "일본이 계속 도발을 하는 이유에는 하나는 독도를 중심으로 해저에 있는 차세대 대체에너지중 하나인 하이드 라이트라는 고체천연연료를 탐낸다는 것과 둘째는 일본 극우 세력들이 자국민의 애국심을 부추겨서 일본 내의 난국을 해결하려 한다." 며 이번 독도수호 결의대회의 의의와 준비하게 된 배경에 대해 특유의 끝부분에서 한 옥타브 올라가며 리드미컬 하는 목소리로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

아마도 떠나는 모든 자문위원들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이미 전해졌을 것이다.
차안에서 여명을 맞이하며 우린 포항에 도착했고 그곳 여객터미널 근처에서 아침을 먹었다.
해병대를 나온 구학모위원은 포항에서 함께 근무했다며 포항에 있는 지인과 조우한다.

독도를 가기위해서는 차로 포항까지 4시간,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배로 3시간, 울릉도에서 다시 독도까지 2시간이 걸린다.
타고 간 쾌속선인 썬플라워호가 밀폐 형이어서 갑판으로 나갈 수 없어 조금은 답답했지만 많은 위원들이 때로는 부족한 잠으로 때로는 韓.日간의 현안인 독도문제로 토론을 벌이다 보니 저 멀리서 태고의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한 신비의 섬 울릉도가 보인다.
누군가 울릉도는 수백만 년 전 자연이 빚어놓은 속살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섬이라 했던가.

코끝으로 느껴지는 바람이 너무나 상쾌하다.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항에는 도둑과 공해와 뱀이 없고, 바람과 향나무, 미인과 물, 돌이 많아 ‘三無五多’라고 한다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좋은 날씨와 연휴 때문인지 관광객으로 붐빈다.

짐을 식당에 맡겨 놓은 체 독도전망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먼저 안용복 장군의 충혼비가 보인다.
역사지식에 해박한 임운식위원이 조선 숙종 때 평민의 신분으로 두 번이나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에도막부로부터 국서로 받아왔다는 안용복 장군의 무용담을 들려주는 사이 화산섬인 울릉도에서 용암을 뚫고 샘솟는 도동의 약수터에 도착했다.
한 모금 마시는 사이 도시의 삶속에서 찌든 내 몸속의 장기들이 모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톡 쏘는 것이 탄산철분약수다.
설악 오색약수보다도 혀끝의 느낌이 좋다.
약수터 바로 앞에 독도 박물관과 향토 사료관이 자리한다.
많은 자료들이 독도가 예로부터 우리 땅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전망대에서 드넓은 동해바다를 바라본다.
아쉽게도 독도는 보이지 않지만 저 수평선 너머에도 우리나라의 땅이 있음에 마음이 두근거려 진다.   

한때 3만 명에 육박했다는 울릉군은 역시나 교육문제 등으로 육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지금은 약 1만 명 조금 넘으며 울릉면과 서면, 북면 등 1읍 2면으로 이루어 졌다.

숙소인 대아리조트에 여장을 푼 일행들은 식사 후 삼삼오오 모여서 독도를 비롯한 외교 현안문제와  금강산과 개성이 막혀있고 어렵게 꼬여가는 남북문제의 실마리에 대한 해법들을 내놓으며 열변들을 토해낸다.
이야기는 꼬리를 물며 광주발전에 대한 나름 충고와 비전에 대해 토해낸다.
평소 온화한 성품인 유재석위원의 광주사랑에 대한 이야기에는 힘이 느껴진다.
조남은 부회장의 식견과 박광현위원의 광주 현안에 대한 인식 또한 예리함이 느껴진다.

드디어 독도에 들어간다는 설레임으로 모두들 일찍 일어난다.
독도에 入島하려면 3代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바람과 파도로 인하여 독도를 코앞에 두고 서도 땅을 밟지 못하고 배안에서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는 경우가 많다 하여 내심 걱정이 된다. 
다행히 어린아이의 잠들 때의 고른 숨소리처럼 파도는 잔잔하다.

   
▶배안에서 바라본 독도. 왼편이 서도, 오른 편이 동도
삼국사기에는 독도는 우산도, 그리고 그 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라 불리다 1906년 지금의 독도가 되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외에 89개의 바위와 암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번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에 걸쳐있고, 지목은 임야와 대지, 잡종지로 구분되어 있으며 1991년부터 김성도,김신열씨 부부 2명이 울릉읍 독도리 20번지에서 어로활동을 하며 현재 거주하고 있다.

독도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컥 해진다.
여기저기서 장탄식과 환호가 이어진다.
연세 많으신 박기준위원이나 장윤희위원 등도, 조금은 젊은 김진위원이나 허관행위원 등도 모두 다 이 순간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전사들이다.
120만 년 된 제주도보다도, 250만 년 된 울릉도보다도, 더 오래된 460만 년 전 해저 용암분출로 검푸른 바다 위에 솟아올라 지금껏 대한민국의 동해를 지켜주고 있는 장엄한 우리 역사 앞에서 단지 나는 서있을 뿐이다.

독도에서의 체류시간은 2~30분 정도다.
모두들 분주히 사진 찍고 가슴에 담아두기에 정신없다.

   
▶함께한 민주평통 자문위원들
미리 준비해간 라면과 간식 등을 독도를 지키는 경비대원들에게 전달하며 외롭게 국토 수호에 힘쓰는 모든 경비대원들이 힘내라고 힘찬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위문품은 미리 연락을 취해 받고 싶은 선물로 골랐다고 김윤희간사가 귀띔한다.

   
▶위문품을 전달하는 허창식 협의회장
 준비해간 태극기를 휘날리며 퍼포먼스도 하고 영원한 기억으로 남기고자 셔터를 눌러 됐다.

   
▶독도를 지키는 경비대원과 명물이된 삽살개와 필자
허락한 30분은 너무도 짧았다.
김종수위원이 너무 아쉬워하신다.
하긴 이처럼 빨리 30분이 소요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나마 2005년부터 입도 허가제(승인)에서 신고제로 바뀌어 다행이지 않는갉.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일부러 일으키고 있는데 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당장은 독도를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주기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서 외교적으로 분쟁의 기록을 남겨 두어 독도가 한·일간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키고 언젠가 국제 정세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면 본격적인 외교 분쟁을 벌일 수도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중국, 대만과는 센카쿠 제도(중국명 釣魚島 : 현재 일본이 점령 중)와 러시아와는 쿠릴열도 남단 도서(일본식으로 북방 4개 섬 :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 문제로 영토 분쟁 중인데 아마도 이를  독도 문제와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그리고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설정은 현재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 가고 있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한국과 일본은 그 경계를 설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 협상에서 일본은 '독도'를 하나의 협상 도구 내지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어떤 변수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는 분석이다.

울릉도로 귀항하는 내내 자문위원들의 얼굴에는 비장함과 결연한 의지가 엿 보인다.

2박 3일중 마지막 날이다.
울릉도 일주를 위해 버스에 올랐다.
맛깔스런 기사의 입담에 첫날 느끼지 못했던 울릉도가 보이기 시작 한다.
화산섬이라 물이 고이지 않아 논농사는 할 수 없어 주로 밭농사를 하는데 강원도 고산지대의 깎아져 내리는 비탈 이상이다.

주로 부지갱이, 고비, 명이, 더덕들이 심어져 있다.
특산물로는 반건조오징어(여기서는 피대기라 한다) 와 호박엿이 있고 별미로는 홍합밥과 따개비밥이 있으며 애주가들에게는 나리분지에서 맛보는 씨앗술과 온 산에 하얗게 피어나는 마가목으로 담은 술 맛을 잊지 못 할 것이다.

울릉도로 올 때와 반대로 배로 버스로 몸을 싣는다.
빡빡한 일정에 다들 지쳐있지만 헤어질 때의 아쉬움과 뿌듯한 국토 순례체험에 목소리에는 힘이 넘친다.
이제 더 이상 독도는 외로운 섬이 아닐 것이다.
또한 더 이상 국제분쟁의 중심이 되어서도 안 된다.
5천년 역사에서 우리가 물려받았듯 우리 또한 만년 2만년 우리 땅 독도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에는 꼭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딸을 대리고 독도를 가보겠노라 스스로 다짐해본다.
그 때 불러 줄 것이다.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김하욱(민족문제연구소 경기동부지부장, 민주평통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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