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노골적인 요구, 거부시 공사 진행 못해 

# 지난 2019년 쌍령동에 빌라를 시공하고자 했던 건축주 K씨는 현재 쌍령동 마을회와 법정 공방 중이다. 당시 빌라 시공을 위한 공사차량의 출입과 관련해 마을회측에서는 마을회 소유의 토지를 이용하는 대가로 5000만원과 약정서 작성을 요구하며 공사차량의 진입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원할한 공사 진행을 원했던 K씨는 어쩔 수 없이 마을발전기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건넸고 이후 빌라가 완공되자 위압에 의한 갈취 혐의로 마을회 전·현직 회장을 고소하기에 이른다.

최근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마을발전기금과 관련된 분쟁들이 이곳 광주의 넉넉했던 마을 인심을 뒤흔들며 마을주민들 간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흉흉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마을발전기금은 마을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민간 차원의 공공기금을 말한다.

과거엔 그저 마을 사람들끼리 마을 잔치 등 공동체 행사를 위해 ‘십시일반’ 몇만원씩 모았던 돈이었으나 최근엔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민간 개발사업과 지역민들이 기피하는 송전설비 등 국가사업의 원만한 추진을 위한 대가성 자금이 마을로 흘러 들어가게 되면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뭉칫돈’으로 커지며 갈등의 씨앗으로 변하고 있다.

마을발전기금과 관련된 갈등의 유형으로는 먼저 마을상수도, 마을안길, 마을회관 건립 등 원주민이 공동시설 형성과 유지를 위해 오랜 세월 지출 해왔던 경제적 비용과 개인적인 노력들에 대한 보상으로 이주민들에게 마을공동체에 대한 경제적인 기여를 요구하면서 불거지는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최근 이곳 광주에서는 앞선 쌍령동 K씨의 사례처럼 다세대 주택 건축 시 마을회를 중심으로 5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마을발전기금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기부를 거부하면 공사차량 출입방해, 각종민원 접수 등을 통해 공사를 방해하는 사례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또한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자금의 불투명한 운영으로 인한 횡령 및 배분 다툼에서 비롯된 원주민들간의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마을발전기금이 이장 혹은 마을회장 개인 명의의 통장으로 관리되는 것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지난 2020년 능평리에서는 마을협의회 회장이 마을주민들로부터 횡령으로 고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고소인 A씨는 스스로 마을협의회를 설립하고 마을회장 행세를 하며 전원주택, 다세대 주택의 건축주들에게 마을발전기금을 요구하고 자신 명의의 통장으로 교부받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가 인정되어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또한 마을발전기금을 관리하던 이장이 사망하자 미망인이 사망한 이장 개인명의의 통장임을 주장하며 마을발전기금의 반환을 거부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마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최근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마을발전기금 갈등과 관련해 지난 2020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발표한 `지역공동체 내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갈등해결방안 연구`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행정 연구원은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보상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악습을 끊어내고 마을 공동체를 위한 상생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주민 혹은 개발업자도 원주민과의 동화(同化) 및 공사 민원을 단순히 돈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에 고민해야 한다”고 전제하며 “근본적으로는 정책적 보완을 통해 갈등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선제적 관리방식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전라남도 고흥군의 ‘상생간담회’ 전라북도 완주군의 ‘마을 규약 표준안’ 경상남도 사천시의 ‘마을재산관리대장’ 등을 선제적 관리방식의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전라남도 고흥군은 군내 16개 읍·면 이장들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과의 마을 발전기금 관련 토론을 통해 ‘고흥군 마을 자치규약’ 표준안을 제정하여 투명한 기금 조성 및 관리를 유도하였으며, 완주군의 경우 체계화된 마을규약 표준안을 개발·제안함으로써 마을의 공동재산과 공동체 활동을 비교적 명확하게 하여 갈등 발생 가능성을 감소시켰다.

공동재산 관리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사천시의 노력도 돋보인다. 사천시는 마을주민 간에 마을 공동재산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공유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마을재산 관리대장’의 작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마을공동체가 직접 공동재산을 자체 조사하고 목록을 작성하게 함으로써 주민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했다.

임인철(행정학) 박사는 “마을발전기금은 아파트 관리비처럼 투명하게 조성하고 관리되어야 한다”며 “체계화된 마을규약 표준안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고, ‘마을재산관리대장’ 등을 통해 관리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어느덧 인구 4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매년 1만명의 이주민이 유입되고 있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도시와 함께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은 더욱 심화 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상황 아래 앞서 언급한 타 시,군과는 달리 공동체 갈등 해소를 위해 현재 광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선제적 관리방안은 전무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쌍령동 거주 함명숙씨는 “현재 심각한 상황으로 마을발전기금과 관련된 비리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 온다”라며 “억 단위의 돈이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광주시에서는 이에 대한 사태 파악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또 “흉흉해진 마을 인심이 예전처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시의 적극적인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을발전기금은 현재 도심에서 재개발 사업의 동의율을 높이기 위해 건설사들이 돈을 뿌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재개발 사업 후 주민공동체가 깨어지는 것처럼 불투명한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해 마을공동체도 붕괴 될 것”이라는 행정연구원 관계자의 우려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광주시의 중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작권자 © 광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