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그 위대한 로망

<여우촌 편지>

2008-09-02     광주뉴스

 날이 흐립니다. 밤입니다. 매우梅雨. 매화 꽃잎이 질 때를 맞춘다는 그 곳과 닮은 기후가 이 곳의 장마라고 했지요. 지금은 아닙니다. 때가 지루합니다. 어수선합니다. 시절이 절기를 벗어났습니다. 흐린 하늘아래 간간이 비추던 햇살이었습니다. 그래도 덥다. 더운 하루의 마지막은 냇가로 갑니다. 물 길러 갑니다. 칠흑에 반짝이는 별이 하나입니다. 마당 앞으로 뜬 단 하나의 별입니다. 인공위성입니다. 천체망원경으로 확인하였습니다. 빛나는 부분이 십자로 벌어진 태양전지판이였습니다. 저 별만 있고 다른 별은 어디로 갔나 그런 생각을 가로지르는 반딧불이입니다. 끝도 없이 날던 반딧불이였지요. 몇 번의 물난리와 냇가를 긁어 댄 중장비의 휴유증을 앓았습니다. 드물어졌습니다. 고통스러운 재탄성을 거쳤는가요. 드문 몇 마리가 냇가에서 물 길러 오는 내 앞으로 위로 그리고 길 숲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마당의 불도 집의 불도 모두 내린 탓인지 아니면 물긷는 동무인지 화사하게 내 가슴에 앉았습니다. 반딧불이 마음속에 빛을 내고 있습니다. 내가 반딧불이가 됩니다. 화가 나면 화난 인간이고 슬픔이 허리를 지나가면 나는 슬픈 사람이 됩니다. 아침 작은 이슬에 기뻐하는 그녀는 기쁜 사람이듯이 이 밤은 내가 반딧불이가 됩니다. 경계가 희미합니다. 어디 다슬기를 구해서 앞 냇가에 뿌려 두어야겠네. 같이 물긷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경달 객원기자
우리 별에 작은 레오파드가 삽니다. 앞 다리에 깊은 상처로 뼈가 보이던 그놈이 말끔해졌습니다. 붉게 아물더니 이제는 털이 덮였습니다. 다른 자리와 구분이 안됩니다. 이 동물의 울음을 듣습니다. 밤에 동물은 눈물을 흘리는가요. 혼자가 되는 그밤 창가에서 웁니다. 어스름 저녁 평상에 앉으면 마당 가득하도록 뛰어 다니고 짓 까불던 놈이지만 혼자가 되면 배를 깔고 누워 있습니다. 형제도 부모도 자리를 비우는 밤에 창가의 울음은 새벽이 되도록 남아있습니다. 무늬가 울음입니다. 산촌을 떠난 저 곳의 청년이 여름을 맞이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레오파드와 별반 다르지 않는 눈물을 도회지에서 맛보았나요. 언덕에서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추밭에 농약을 주는 아버지 뒤에서 줄을 잡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피로와 또 도회지의 낯 설음이 마음 어디에 무슨 무늬로 자리잡고 있을까요. 내가 혼자 살았던 그 때의 곳은 침울했습니다. 찬바람이 골목 골목을 지났습니다. 살가운 문화를 가진 사회가 있기나 한 것인가요. 그런 물음 뒤에 숨어 있던 나도 우울하였습니다. 지금도 도회지로 나가면 밤에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이 멍한 느낌입니다. 등위로 한강의 황색 가로등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전철이 그 강을 지나는 단순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양이 놀이터 - 새 종이박스를 두면 이리 놉니다.)
산촌에 어린아이가 있었지요. 초등학교 저학년시절에 머물다 가는 뒷모습을 보면 말없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큰 눈에서 망울의 눈물이 꽃잎처럼 떨어졌습니다. 머물다가는 별리의 눈물도 보았습니다. 그의 기억에 없는 이 눈물은 지난 시간이 떨어뜨린 것인가요. 도회지에서 시간이 나면 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림을 봅니다. 그는 그림 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물이 그의 가슴을 지났으니 흔적을 군데 군데 남기고 있겠지요. 흔적은 질풍노도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야기를 꺼내면 장성한 아이가 말을 합니다. 내가 그리워서 운 적이 있어요. 기억하지 못합니다. 무심한 눈물이 되었습니다. 지켜보다가 우는 모습에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한 그들이 말을 남겼습니다. 감동 먹었다. 눈물은 감동이고 또 의아하기도 한 수수께끼의 면이 있습니다. 독하게 사는 분들이 아이가 그들의 뒷자락에서 눈물을 떨구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외로웠구나. 마음에 내리는 봄비네. 그냥 고개를 숙이고 길을 재촉했던 분. 다시 올 것을 약속하는 분. 가지가지였습니다. 다시 올 것을 약속한 성급함 보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떠난 누가 저 아래 길에서 눈물을 뚜닥뚜닥 흘렸습니다. 그의 마음이 출렁이는 바다였습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있는 눈 내리는 날 숲길에 첫발자국을 남기면서 동무를 만나러 갔던 기억이 떠오른 것인가요. 아이눈물에서 위대한 로망을 보았다는 후일담을 들었습니다. 근래 또 아이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어린 여자 아이였습니다. 엄마의 넘겨 집는 말 한마디에 짧은 치마 폭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었습니다. 눈물은 치마를 적셨습니다. 눈흘기는 소녀의 얼굴은 범벅이었습니다.

   
▶(한 때 - 멀리서 가져온 고기를 쑥으로 훈증하고 있습니다.)
산의 조그만 구릉에도 무덤은 있습니다. 높은 저 산의 뭇한 무덤을 보면 죽음이라는 상념이 손발을 지나 등골에 오릅니다. 그러면 내가 죽은 자의 감정을 가집니다. 산자가 죽은 자가 됩니다. 감정이라고 제쳐 놓기엔 역동성이 큽니다. 무덤을 앞에 두고 벌리는 술판 너머로 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죽은 자의 호상을 기원하는 산 자의 실 없는 위로와 달리 미친 듯 우는 이는 죽은 자의 아내였습니다. 어찌 살라고. 난리를 칩니다. 순식간에 난장판입니다. 집안 어른이 말리고 이웃이 말리는 시간이 꽤나 걸렸지요. 살은 자에게 방패막이 없어진 탓만이 아니겠지요. 오손도손했고 티격태격했던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출가한 지금에, 보습을 걸어 둔 창고의 벽을 보아도 삶이라는 기록이 쏟아지겠지요. 삶은 눈물입니다. 그분의 현재를 보면서 나도 늙습니다. 늙은 그 집을 지나는 내게 인사로 건네는 목멘 소리를 듣습니다. 오늘은 그 옛적에 내가 생각한 미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이 잊을 수 없는 눈물의 샘이었나요. 둘레로 혼자 사는 노인네들이 꽤 됩니다. 여자 분이 많습니다. 노인네 성별을 구분하는 것은 관념적입니다. 남겨진 여인들이 혼자 사는 고단함을 넘어 단절을 앞둔 때에 눈물은 또 다른 무엇이 덧 씌어진 것인가요. 그들이 세상을 다 잊어버리기 전에 그들 뇌 속에 뛰어 다니는 그것은 그 날이 아닌 오늘이겠지요. 분명한 기억의 오늘은 눈물입니다. 희미한 기억과 근력을 가진 분에게 눈물이 없습니다. 사라지는 것이 눈물도 사라지게 합니다.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을 꿈에서 보았습니다. 꿈 속에 살아 있습니다. 생각의 생각에는 층이 여럿입니다. 눈물은 고단함입니다. 고단한 생활의 내일이 여태 없었는지 모릅니다.

여름하늘에 비가 가득 찬 날 들른 분이 있었지요. 경기지방 둘레로 촛불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분이 없는 듯합니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가지는 분노를 보았습니다. 음식이나 환경에 관심있던 그녀에게 이번 미제쇠고기는 너무나 웃긴 코미디였습니다. 세상을 웃긴 코미디입니다. 너무 웃어서 촛불의 눈물이 되었나요. 먹거리를 생각하는 분들은 계층을 떠나고 성별을 떠납니다. 음식에 대한 설명이 그 것입니다. 몸에 좋고 건강해지라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 음식입니다. 그러니 분노의 눈물입니다. 학교 식당. 도회지 식당. 같은 칼을 사용한다는 정육점. 신음소리를 듣습니다. 먹지 않으니 장사가 안 됩니다. 이런 말에 증빙이나 하듯 잠깐 만난 토박이 공무원은 내게 어디에서 파는 보리밥과 어디에서 하는 묵과 촌 두부하는 집 그리고 감자를 넣고 조밥해주는 집과 팟잎으로 국이 나오는 곳의 설명입니다. 구황식품이네요. 말을 받아 자기가 촌놈이라서 그렇다고 웃습니다. 해장국집과 뼈다귀집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소머리국밥이 사라지고 갈비탕이 사라집니다. 시골은 서울의 변방의 변방이지요. 일 년에 고기에 손대는 것이 몇 번 안 되지만 갑갑함을 느낍니다. 그녀는 이런 눈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갑갑함에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홧병 도진다는 것과 홧병이 뭔지 알겠다라는 교감이 있었습니다. 홧병이 눈물입니다. 펀드와 주식과 아파트와 땅과 오피스텔 그리고 상가건물과 무관한 변방에 스며드는 한숨입니다. 내 어릴 적 마을에서 자주 보았던 홧병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홧병이 시대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학교아이들의 눈물. 머리로 배운 것을 정욕으로 욕망으로 길바닥에 버리는 세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는 남성의 정치를 봅니다. 법질서에 이중의 잣대를 대는 괴이한 현실입니다. 적나라한 사례가 학교일 것입니다. 학교. 선생들의 실력 곧 인품이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 지식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것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학생이 소외되는 현장에서 돈벌이가 되고 권력이 되는 길목을 형성하는 것이겠지요. 통행료는 돈입니다. 돈이 체면을 벗어 던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조그만 성의가 촌지라는 말은 우스개입니다. 그 때 운동장에서 토끼걸음을 하면서 우는 아이나 교문 옆에 줄을 지운 아이 머리를 막대기로 툭툭치는 장면이 있었지요. 육성회장의 아들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이런 이중의 잣대로 머리를 맞는 아이들 중에 우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학교에는 화단이 있었지요. 화단 옆에서 쪼그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친구를 등으로 하고 흔들리는 어깨였습니다. 화장실 뒤쪽에서 맞아서 배를 안고 우는 아이들의 세계도 돈을 근간으로 했지요. 무한질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눈물이 이중잣대의 서러움입니다. 이중잣대의 서러움을 나이드신 분들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정욕과 욕망이 대물림되는 시대입니다. 공평할 것을 바라는 곳에서 서러운 눈물의 눈물입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곳에서 들리는 노예들의 합창이 눈물인가요. 서러운 눈물의 나부코입니다.

   
▶(낙뢰 흔적)
폭우. 6명 사망 2명 실종. 달포가 지난 그 곳은 빈들의 흰 돌멩이입니다. 시골 노인네들은 무엇으로 살까요. 파고다공원은 어떤가요. 노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요. 중풍 치매 그리고 고집과 억지 부림과 말귀에 어둔 것이 늙음인가요. 절망을 앞에 둔 참회의 눈물입니다. 일렁이는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쓰레트 지붕은 짚을 대신한 것입니다. 모양새가 반듯하지 못합니다. 산업화의 달콤한 열매가 도회지로 흘러 들어간 지금 그들은 무엇인가요. 운명적으로 다시 태어날 윤회의 생명이고 은총받지 못한 삶의 다음으로 예약된 지옥의 그들인가요. 말을 만들어 낸 무뢰한 그들을 불편하게 생각하면서 산길을 걷습니다. 사기꾼에게 눈물이 없습니다. 달리 남은 이들은 손등으로 찍어 내리고 옷깃으로 닦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입니다. 가난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견딜 만했는데 물이 지나친 그 곳은 먹고 잠자는 공간이 저승과 이웃해 있습니다. 나도 이번 물이 지나간 그 언저리를 지금도 치우고 있습니다. 그런 탓에 늦은 밤 냇가로 물을 길러 갑니다.

이경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