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옥의 행복투쟁”

<신동헌의 광주생각>

2009-10-16     광주뉴스

장형옥(49세)이 수양리라는 작은 마을에 둥지를 튼 것은 3년 전 일이다. 막내아들이 대학을 가면서 과감히 귀촌을 결심한 것이다. 대학시절 곤지암 소머리국밥을 먹으러 왔다가 곤지암풍광에 매료됐던 적이 있다. 언젠가는 광주에서 살리라 꿈을 꾸었다. 결혼을 했다. 아들 셋을 두었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게 됐다. 드디어 2006년 광주 땅을 장만한다. 집을 지었다. 그림 집이다. 배추 한포기를 심어먹는 ‘도시농민’을 자청했다. 서울 친구들도 “마을이 너무 아름답다. 잘 내려 왔다.”며 넉넉한 칭찬으로 거들었다. 서울 가는 일, 겨울이면 눈을 쓰는 일 몇 가지를 빼면 수양리에서의 일상은 ‘생글생글’ 행복의 연속이다.

그러던 장형옥에게 작은 뿔이 하나 생겨났다. 76만5천볼트의 송전탑 때문이다. 지난 해 봄 5월, 우연히 마을에서 들었다. 예기치 못했던 한전의 국책사업이 수양리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대가성 돈이 주민을 회유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옆에는 덩달아 긴 직함이 하나 붙여진다. ‘수양리 송전철탑반대 주민대책위원장’이라는 직함이다. 어색한 어울림이다. 공부를 했다. 765천볼트가 왜 마을에 세워져야 하는지? 765천볼트의 위력은? 피해 사례는? 마을에 미치는 영향은? 그러던 중 지난 7월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산 정상 토사가 쏟아져 내렸다. 집과 마을이 쓸려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엄습해 왔다. 작은 뿔이 큰 뿔로 바뀌었다. ‘행복투쟁’에 나서게 된다.

그녀는 한전 측의 잘못을 이렇게 짚었다. “첫째는 오만함이지요. 그네들은 감사원이나 청와대보다 더 높은 데라도 있으면 민원을 제기하라고 합니다. 해봤자 우리쪽(한전)의 손을 들어 줄걸(?)이라는 겁니다.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악법 때문입니다. 이 악법은 거의 일방적으로 한전을 손들어 주었습니다. 국민의 행복추구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송전탑이 가고 싶은 데로 무소불위의 힘으로 가도록 되어 있어 한전이 법을 악용하고 남용하도록 합니다. 오히려 피해자인 저를 형사고발하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해 협박하고 있으니까요.”

▶수양리 마을 앞에 마련된 원두막 대책위 모임터에서 고압철탑 상황을 설명하는 장형옥氏
수양리의 자연부락 경관은 이미 치유불능 상태다. 지난여름 무너져 내린 산사태는 십 수 년이 흘러야 가능하다. 주민 간 민심도 크게 훼손되었다. 재산권의 가치도 이젠 포기다. “요즘 아파트를 지어도 민원이 무서워 먼지와 소음 차단막을 합니다. 한전은 마을주민을 이간질시키고 주민을 폭도로 몰고 이이제이(以夷制夷)전술로 마을주민을 돈질로 갈라놓았습니다. 무자비한 한전의 인간파괴행위죠.” 지난 9월에는 용역 45명을 새벽4시에 기습 동원해 공사를 강행했다고 한다. “그럴 거라면 왜 송전선 계획을 숨겼는지 건축허가는 시에서 왜 내 주었는지 기가 찰뿐”이라고 장형옥의 울분이 터진다. 또한 밀어붙이기 송전탑 한전 공사는 전국적이다. 광주에서도 도수리 관음리 학동리 신대리 진우리 등 여러 곳에서 이미 광주시민의 재산권과 생명권은 큰 피해를 보고 있고 불안에 떤다.
   
“야비해요. 비열해요. 정부가 뭐하는 곳인가요. 지역 정치는 왜 필요하고요? 다들 눈을 감고 있지요. 그래서 제가 앞장서 뛰는 겁니다. 1년 6개월째인데 가족의 응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니까요.” 장형옥은 행정소송 두 가지를 냈다. 하나는 전원개발사업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고 다른 하나는 전원개발사업 승인취소 건이다. 다행히 효력가처분신청은 지난 10월 1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이유가 있다는 결정을 이끌어 냈고 한전사업을 백지화하라는 승인취소는 아직 진행형이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다. 아직도 바위에 계란이 던지어지고 있다. “1cm도 못 움직인다”는 게 한전 측 입장이다. “한전을 이기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고 위협까지 받는다. 다움(daum) 아고라 판에서도 장형옥의 일방적인 승(勝)이었지만 ‘장형옥의 흐느낌’은 어찌될 운명인지 아무도 모른다. 공익사업이라는 미명하에 밀어붙이면 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서울예종에 이 모 교수가 학동리를 떠났던 것처럼. 그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과연 장형옥의 ‘행복투쟁’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091013 신동헌(도시농업포럼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