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촌 편지>찔레꽃

2009-04-27     광주뉴스

내내 내리던 비에 밤은 소리였습니다. 처마에 달린 풍경은 날을 세워 울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소리입니다. 겨울 바람을 능가하는 그 틈에도 꽃은 피고 꽃은 집니다. 기다리던 향기의 찔레꽃이 피기까지는 조팝나무와 보라색의 라일락 그리고 향기가 하늘로 솟는 백만 송이의 흰 꽃입니다. 산의 능선같은 귀룽나무에 꽃이 핍니다. 핀 꽃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뜰에 서거나 마당으로 오는 산길은 소리의 흔적으로서 흰 꽃이 길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달그당거리는 풍경소리에 맞추어 잎이 떨어 질 것입니다. 진 꽃잎을 주워 손에 들었습니다. 꽃의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꼼꼼하게 보는 내 눈에 흰 빛이 다양합니다. 꽃의 흰빛이 현광임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손바닥에 놓여진 빛은 다양한 밝은 명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명도를 보면 내가 명도 속에 점점 빨려 드는 듯한 느낌입니다. 꽃을 보다가 그 때의 기억이 무심히 돋은 것처럼 흰 꽃의 명도에 내가 무슨 기억을 갖고 있는지요. 그런 꽃이 피는 날입니다.

이경달 객원기자

집을 오래 전부터 짓고 있습니다. 구상을 하고 도면을 그리고 설명하면 '무조건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보지 못한 기술이고 시공하기 힘든 것이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쪽 분들은 심심찮게 입에 붙은 말이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혈을 기울여 계산하고 만든 '유리벽'의 대강이 완성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도와준 분만이 벽의 두께를 알고 갔습니다. 그 모든 이중의 창틀과 창틀간의 간격과 그리고 접합하는 거리가 잘 맞았습니다. 수십 년을 현장에서 보낸 그 분도 그런 구조를 처음 보았습니다. 당연합니다. 이 곳에서 단 한번도 시공된 적이 없습니다. 가끔 외국잡지에 근래 들어 특수 제작한 창틀을 만들어 투광성과 보온성 소음을 시험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았을 정도입니다. 아마 어딘가에 실험적으로 논의되고 있겠지만, 그런 벽을 가진 집을 보지 못한 그들입니다. 마지막까지 내용자체를 이해 못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기에 신기한 건물인지라 관심이 있지만, 아마 공개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건축사 몇 분이 지나 가면서 많은 말을 쏟아 놓고 갔습니다. 상대와 무관한 그들 혼자소리입니다. 그들 혼자소리는 종교가 교회나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지난 밤의 소리도 그 유리벽을 통해 들리지 않았습니다. 특허가 난무하는 이때에 비슷한 말이 지나가고 지나왔습니다. 거대한 면적의 유리벽이 완성되었습니다. 빛이 통하고 열이 보존되고 방음이 잘되는 벽입니다.

   
▶(배꽃입니다)
집의 효율성을 여러모로 생각합니다. 하나로 통합된 공간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공간을 생각했습니다. 전면에 유리를 달거나 외벽을 유리로 막아 놓은 건물도 많습니다. 유리벽돌도 아닌 그런 벽을 생각했습니다. '열역학' 물리학을 하는 분이나 열공학의 그들이나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분들이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외부에서 열을 거의 가져오지 않는 따스한 집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역학'을 생각한 것입니다. 계산은 복잡합니다. 정밀 기계에는 기본적으로 고려되고 계산되고 실험되어 안정성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런 기계와 건축물을 비교하면 의문입니다. 거대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아닌 주택에서 무시되고 단지 줄을 긋는 것이 도면이고, 힘으로 세우고 붙이는 것이 집 짓는 대부분의 방법입니다. 아이디어 보기 힘들고 연구한 흔적 찾기 힘듭니다. 내가 본 그들의 도면은 구조적인 면에서나 형태적 측면에서 고개를 흔들게 만듭니다. 오로지 두터운 벽에 보일러를 깔고 잔뜩 불지르면 되든지 아니면 벽난로에 장작이나 뭐 그런 것으로 해결하는 '신석기 시대'의 사고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들에게 건축물에서의 공기 흐름이나 열 보존이 계산가능하고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분이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자동차 스테레오 휴대폰  컴퓨터에서 설계되는 과정이 적용될 수는 없겠지요. 이 쪽은 거대한 인력과 자본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일반주택에 누가 이런 과정을 거칠까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건축 설계의 진화가 답보 정체된 상태인지, 그런 의문을 그들이 남기는 말에서 듣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과 그렇게 안 된다는 것을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설교의 기분으로 내가 느낀 것이지요.

상업성. 상품이라는 말 뒤에 반드시 스며 있는 말입니다. 사기행위와 구분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분도 계시지만  희미하게 구분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것이고 그것은 그것이지 이것은 이것이고 그리고 저것이라고 하는 행위를 두고 구분 가능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은 사실 태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닭을 봉황이라고 하여 이익을 취하는 행위가 있다면 사기이지요. 집을 짓는 시골 분들을 보면 고전적인 목수연장이면 가능하고 목수로부터 '표준도면'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있지만, 허술한 천장과 벽을 대신할 기술과 자재는 개발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혹 기회가 되면 집의 효율성 중에서 지금은 중요시 되는 난방으로서의 에너지를 어찌 고려되고 있는지 알고픈 생각입니다. 이건 시대가 바뀐 지금에 고전적인 연장으로서 해결될 기미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간의 배분이나 역학은 이미 꽤 알려졌지요. 그러나 집안의 공기 흐름이 구체적으로 측정되고 또 열의 보존성이니 뭐 그런 내용이 확인되고 집을 지을 때 스며들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말은 무수한 데 집을 짓는 자도 없고 내용도 없고 책임지는 자도 없다는 느낌의 시골 길가의 집들입니다. 그리고 먼 곳에 보이는 신축의 집에서 내가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운 황매화 - 겨울이 끝났습니다.)
곧 찔레가 필 것입니다. 밭의 많은 두릅나무가 죽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지난해의 지나친 가뭄에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른 그 줄기 아래에서 다시 촉이 피고 싹이 날 것입니다. 찔레의 흰 꽃은 향기가 좋습니다. 붉게 피는 찔레꽃은 검은 백조쯤 될까요. 흰 찔레 꽃이 언덕을 오르고 뿌리는 언덕 아래에 두고 나는 언덕 너머의 마당에서 서성거리면서 다채로운 명암의 흰빛을 향기와 더불어 맛 볼 것입니다. 좋은 봄날이 이런 날이겠지요.

-여우촌에서

이경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