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전) 국악방송 본부장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춘광(九十春光)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던고

한국 전통가곡 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이수대엽(二數大葉)’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세상 그 어느 노래보다도 느리게 부르는 노래다. 느리게 불러서 인지 앞의 가사가 뒤로 가면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무척 느린 노래다. 이런 느린 곡조에 얹어서 부르는 노랫말이 너무도 애절한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아서 나만의 노래로 만든 적이 있다.

‘여인별곡’. 여인들의 이별 노래이며 구구절절 아픈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곡을 만들 때 비록 노랫말은 사랑하는 임을 대상으로 한 혼자만의 기다림과 그리움, 애태움이었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여인들의 정서를 나의 감각으로 다시금 재탄생시키고자 하였다. 이 곡은 평소 나의 작품 중에서도 왠지 내 가슴속에 늘 담겨있어 혼자서도 가끔 흥얼거리며 부를 정도로 애정이 많은 곡이다. 이 작품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광주에서 만난 조선 중기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을 만나게 되면서다.

광주로 가던 그 날, 서울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쳤었는데 광주에 도착할 즈음에는 거짓말처럼 화창한 날씨가 나를 반겼다. 마치 재난의 현장을 빠져나온 듯한 안도감에 갑자기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광주를 오가며 수없이 지나치며 ‘언젠가 자세히 보리라’ 생각했던 ‘허난설헌 묘’를 찾았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에 위치한 허난설헌 묘(경기도 기념물 제90호)에 도착하니 오후의 느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허난설헌 묘에는 인적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입구 표지판으로 봤을 때는 무척 소박할 것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 아름다우면서도 단아한 것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좌측에는 허난설헌과 남편 김성립(金誠立:1562~1592)의 신위가 모셔진 광주재실(廣州齋室) 모선재(慕先齋)가 있는데 굳게 닫혀있어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진다. 생전 남편과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을까?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중앙에 허난설헌의 묘가 보인다. 모선재에서 나와 홀로 시상(詩想)에 잠겨 있을 그녀의 영혼이 떠돌고 있는 양,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묘 주위로 사색(思索)이 흐르는 느낌이 든다. 스물일곱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가 간 그녀의 다하지 못한 세상 아름다운 시어(詩語)들은 마치 아직 그 속에 남아있는 듯하다.

그 묘 왼쪽에는 자그마한 무덤 두 개가 있다. 바로 허난설헌의 딸과 아들의 묘라고 한다. 자식을 앞세운 어미의 심정이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자식 잃은 슬픔은 가슴속 깊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언제고 스멀스멀 온몸을 관통하는 아픔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곡자(哭子)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紙錢招汝魂(지전소여혼)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應知第兄魂(응지제형혼)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縱有服中孩(종유복중해)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浪吟黃臺詞(랑음황대사)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지난해 사랑하는 딸 여의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이 마주보고 있구나
백양나무에 소슬한 바람 불고 도깨비불은 무덤가 나무 밝히네
종이돈 살라 너희 혼을 부르고 정화수를 올려 제사를 지낸다
너희 넋은 응당 오누이임을 알지니 밤마다 서로 어울려 놀겠지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어찌 잘 크기를 바랄 수 있으리오
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고 피눈물 흘리며 소리 죽여 슬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 위쪽을 바라보니 또 다른 묘가 보인다. 허난설헌의 시댁인 안동김씨의 사당이다. 3단으로 되어 있는 묘역 맨 아래에 있는 허난설헌의 묘는 중부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지금의 장소로 이전된 것이라고 한다. 묘를 내려오며 바라본 정면에는 주말 나들이 차량으로 붐비는 중부고속도로가 보였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차량들의 행렬을 보고 있자니 이 여인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갔는지 궁금해졌고, 그 옛날 이곳 경기도 광주로 시집왔던 그녀의 고향도 생각해 봤다.

마침 바로 다음 날 강릉에 가는 일정이 있었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기에 전날 느꼈던 아련함의 진원지를 찾기 위하여 애틋한 마음으로 강릉 허난설헌 생가 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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