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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선의 문화칼럼> 수어장대(守禦將臺)에서 떠오르는 음악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전) 국악방송 본부장

남한산성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 번에 전체를 보기보다는 천천히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자주 찾는다. 아직은 로터리 주차장을 중심으로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긴 장마로 길을 더디게 하더니 이제 날씨가 더워 더더욱 어렵긴 하다.

행궁을 먼저 보고 싶었으나 마침 휴무일이어서 수어장대에 오르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잠깐 비가 그치고 해가 날듯 말듯한 날씨라 매우 후텁지근했다. 행궁 오른쪽으로 길을 오르려고 하니 보랏빛 맥문동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더운 여름에 꽃을 보는 즐거움을 여기서 느끼게 되니 기분이 상쾌하고 수어장대로 향하는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미끄러질 수 있는 흙길 위에는 가마니를 덮어서 딛기 편하게 해 놓았다. 세심한 배려에 감사함을 느낀다. 2km가 채 안 되는 길이지만 평소 운동 부족인지라 그마저도 힘들었는데 아름드리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하다. 그리 가파르지도 않아서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느릿느릿 걸으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잠실 쪽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성곽이 나타난다. 지상으로부터는 꽤 높이 올라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곽 너머로 보이는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빌딩 숲과는 다르게 나지막한 성곽의 풍경들이 사뭇 대조를 이룬다. 수어장대는 그 풍경이 더 잘 보일 것 같은 조금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공사 중이다. 공사를 위해 가림막으로 가려진 수어장대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수어장대의 위엄만은 고스란히 느껴진다.

수어장대는 장수(將帥)가 전투 지휘를 하던 지휘소라고 한다. 높이 있기에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수어장대는 임금을 보호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수어장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조 2년(1624년) 남한산성을 지을 때 단층으로 지어진 것을 영조27년(1751년)에 2층으로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남한산성 내에 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이라고 한다. 공사 중이라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여러 사진을 통해서 그 멋스러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겉에 걸린 편액(扁額;종이, 비단, 널빤지 등에 그림이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에는 수어장대(守禦將臺)라 쓰여 있고, 안쪽에는 ‘무망루(無忘樓)’라 쓰인 또 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삼전도의 굴욕과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1619~1659:조선 제17대 왕)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1724~1776:조선 제21대 왕)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얼마나 치욕스럽고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름까지 '무망루'라고 지으면서 기억하고자 했을까. 수많은 외침이 있을 때마다 그 한스러움을 늘 온몸으로 겪으며 헤쳐 나가야 했던 선조들을 생각하니 다시금 숙연해진다. 지금 우리가 누리며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평화가 주는 행복이, 어쩌면 바로 앞서 살았던 선조들의 희생이 있어서가 아닐까 반문하며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다.

‘무망루’라는 글을 보며 영화 ‘남한산성’을 다시 기억해 본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던 순간들과 어렵게 결정해야 했던 결론. 그로 인해 달라질 많은 것들. 그래서였을까? 영화 ‘남한산성’의 원전인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그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무망루’라는 글귀를 생각하며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었던 수어장대를 보며 또다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각해 본다.

수어장대를 내려오며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중 ‘정대업(正大業)’. 이 종묘제례악은 조선 역대 왕들의 제사를 지내는 음악인데, 그 중 ‘정대업’은 무관들의 업적을 기리는 음악이다. 태평소의 강렬하면서도 호기로운 음악에 맞춰 추는 일무(佾舞:종묘제례 때 추는 의식무)에는 검을 높이 들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내는 동작이 있다. 이 부분에 달하면 알 수 없는 뭉클한 애국심이 들곤 했었는데, 수어장대를 생각하며 그 음악을 다시 한번 들어야겠다.

광주뉴스  gin5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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