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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선의 문화칼럼> 연무관(演武館)에서의 소회(所懷)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전) 국악방송 본부장

지수당을 돌아보고 행궁 쪽으로 오르다 보니 현절사 옆에 연무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호)이 보인다. 1차 방문 때에는 옆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야외수업중이라 자세히 볼 수가 없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찾은 연무관은 정적에 쌓여 있었다.

그냥 멀리서 지나칠 때는 ‘저런 곳에서 무슨 군대 훈련을 했을까?’싶었는데 막상 연무관 앞에 서서 보니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한 동짜리 작은 건물이었지만 웅장함을 갖추었고 앞의 마당에서 군인들의 사열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연무관 입구에는 전시되어 있는 ‘투석기(投石器)’와 ‘신기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가 먼저 눈에 띄었다. 이것은 교육목적으로 만든 모형이다.

‘투석기’는 돌을 던져서 공격하는 공성(성이나 요새를 공격하는 성격)병기이다. 남한산성을 적극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병기인 셈이다. ‘투석기’는 지렛대의 힘을 이용해서 무거운 물체를 멀리 던지기 위한 도구인데 촌각(寸刻)을 다투는 전쟁터에서 이것을 어떻게 운용했을지 무척 궁금했다.

‘신기전기화차’는 한꺼번에 여러 개의 총통(조선시대 때 사용하던 유통식 불을 담는 그릇)이나 신기전(조선시대에 사용된 로켓추진 화살)을 쓸 수 있게 만든 조선시대의 로켓형 무기인데, 전투가 벌어졌을 때 빠르게 이동하여 적에게 화약무기로 공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계단을 올라보니 연무관의 위용이 펼쳐진다. 연무관 왼쪽으로 보이는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 옆에 품격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서 있는 연무관은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1625년(인조3년)에 남한산성을 쌓으면서 함께 건립되어 연무당(鍊武堂) 혹은 연병관(鍊兵館)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연무관에서는 군사훈련은 물론 무술시합을 개최하기도 하고 시합에 참여한 장사(壯士)들에게 술과 음식을 베풀기도 했다. 또 이런 시합을 통해 발굴되는 훌륭한 인재는 중앙으로 보내어 나라를 지키는 든든한 군사로 다시 키워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곳은 문무관 시험을 보는 공개적인 시험 장소이기도 했다. 무기 시연은 물론 주조(晝操:낮에 하는 군사훈련)·야조(夜操:밤에 하는 군사훈련) 등의 다양한 군사훈련을 거행했던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활터가 없어졌지만 연무관 맞은편에는 과녁이 있어서 병사들의 활쏘기 연습도 이루어졌다고 하니 가히 연무관은 병사들의 기량향상을 위한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곳 활터는 현재 천주교 남한산성 순교성지로 관리되고 있다고 하니 그 곳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 찾아 봐야겠다.

연무관 건물은 기와집 방식의 전통 건물이다. 건물 정면 기둥에 4개의 주련(柱聯)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주련은 전통건축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기둥이나 벽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를 말한다. 여러 사람들이 지은 한시(漢詩)를 합해서 적는데 주로 그 건물이 상징하는 의미와 연관된 내용들이다. 연무관의 주련에는 조선 무사들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글귀가 적혀있다.

그 글귀의 해석을 찾아보니 여러 가지가 나온다. 풀이하기가 조금 어려운 듯하다. 그중 김종규 남한산성 문화유산 해설사의 글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玉壘金城萬仞山(옥루금성만인산)  
風雲龍虎生奇力(풍운용호생기력)   
角羽宮商動界林(각우궁상동계림)  
密傳蔥本空三本(밀전총본공삼본)   

“옥과 같이 단단한 진터와 철벽같이 견고한 성곽이 산에 줄지어 있다. 풍운탄 용호가 기이한 힘을 낸다. 오음 육진이 경내에 진동한다. 삼밀을 인본에 전하니 삼본이 공허하다.”

이렇듯 연무관을 둘러보고 다시 앞마당 앞에 서고 보니 마당 자체가 평평하지 않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훈련을 했을까 싶은데 이렇듯 연무관을 둘러보고 다시 앞마당 앞에 서고 보니 마당 자체가 평평하지 않다. 아마도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흙이 흘러내리면서 비탈로 만들어진 것일 텐데 세월의 흐름과 같이 모든 것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세상이치를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미사일을 쏘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를 향해 버튼 하나면 누르면 공격이 가능해진 현 시대의 전쟁양태를 생각하면 가장 원초적이지만 적극적인 방법으로 방어를 하며 지키고자 했던 그 시대 군사들의 결의에 찬 정서를 다시금 진진하게 헤아려보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닌 우리의 뿌리를 지키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어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시작점에서의 훈련이었을 것이고, 그 공간이 연무관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 시대에 ‘우리’가 자존심을 걸고 지켜야 하는 국방의 대상과 그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광주뉴스  gin5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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