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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장 신립의 넋이 깃든 ‘곤지암’우리동네 이야기 ‘곤지암'읍의 유래

‘곤지암’읍은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해 있으며, 2011년 실촌읍에서 곤지암읍으로 개칭되었다. 

‘곤지암’은 신립(申砬 1546-1592) 장군의 묘소에 얽힌 전설에서 유래하며, 바위(岩. 암)곁에 커다란(昆. 곤) 연못(池. 지)이 있다는 의미이다.

신립(1546∼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23세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다. 

신립은 탄금대(충북 충주)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장 고니시의 수만명 왜군과 맞서 싸우다 강물에 빠져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전투에서 패한것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했던지 병사들이 물속에서 끌어낸 그의 모습은 두 눈을 부릅뜨고 당장이라도 호령할 것 같은 기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장군의 시체를 이곳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내었는데 묘지 가까운 곳에 고양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누구든 바위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결국 걸어가야만 했다. 

그러던 중 한 선비가 그곳을 지나다 “장군의 원통함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행인들을 불편하게 함은 온당치 못하오!”라고 바위에게 호통을 치자 벼락이 쳐 바위가 쩍 갈라지고 그 옆에 큰 연못이 생겼다. 

그 후로 행인들의 통행이 자유롭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구전도 전해지고 있다. 전사한 신립 장군을 광주로 옮겨와 장사 지내려 하였으나 산소를 쓸 묫자리가 쥐혈 이었다.

그런데 못자리 건너편에는 고양이 모양의 바위가 있어 섣불리 묘를 쓸수가 없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고양이 바위가 둘로 쪼개졌다.

바위가 쪼개져 고양이 모양이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신립장군의 묘를 쓸수가 있었다고 한다,

본래 구전되는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므로 실제 원형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기도 하여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건 곤지암과 신립 장군의 묘소 사이에는 커다란 연관이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구전에서 나오듯 신립 장군의 묘소는 ‘곤지암’에서 1km정도의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다.

현재 ‘곤지암’은 큰 바위와 작은 바위 두 개가 조금 떨어져 놓여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바위 위쪽에는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바위 주변에 있었던 연못터는 학교와 주택가로 변하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곤지암’은 1985년 문화재 자료 63호에 지정되었다. 

 

유송열 기자  ysy034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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