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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선의 문화칼럼> 국수봉(國首峰)의 새로운 발견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전) 국악방송 본부장

난 별로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 아니 실상은 마지못해 지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일년에 두세 번 정도 산을 찾는 정도가 딱 맞는 말이다. 등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산에 가자는 제안을 받으면 입고 갈 복장부터 대략난감이다.

지난 토요일 지인으로부터 경기 광주 국수봉 등산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문득 지난 1월에 찾았던 강화도의 함허동천 기억이 났다. ‘함허동천’은 마니산의 한 계곡에 불과하지만 나름 험한 곳이라고 하는데 그곳을 전문가들과 보폭을 맞춰 올랐었기에 경기도 광주 ‘국수봉’은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제안을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학교 근처에는 명산 중의 명산인 관악산자락에 있어서 나름 늘 산과 가까이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난 그 때나 최근까지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히 산에 오르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아무튼 그 날도 큰 기대는 하지 않은데다가 약속시간 마저 지키지 못한 미안함에 그저 묵묵히 국수봉에 올랐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그래 지난번 함허동천에 갔을 때 보다는 날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고 또 오늘은 여름임에도 그리 덥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마음만 먹으면 나도 등산은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과 동행하는 사람만 있다면 얼마든지 등산을 취미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등산을 하면서 일행 중 한명이 지금 오르고 있는 ‘국수봉’이 매우 의미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나라 삼대 패전 중의 하나인 ‘쌍령대전’의 실제 현장이 바로 국수봉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 영화 ‘남한산성’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서날쇠’의 역할로 위기에 처한 인조를 돕기 위해 각 지방에서 달려 온 군사들이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무참히 무너지는, 가슴 답답해하며 보던 장면이 있었다. 설마 진짜 저렇게 무너지지는 않았겠지. 영화니까, 소설이니까 그렇게 표현한 것이겠지… 생각했는데 실제 국수봉을 오르면서 바라 본 우측 벌판이 병자호란 때 우리군 4만명이 희생당한 곳이라니.

쌍령전투(雙嶺戰鬪)는 병자호란이 진행되던 중 1637년 1월 2일에 쌍령에서 벌어진 조선군과 청군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청군에 대패하였으며 우리 군 4만 명이 희생을 당한다. 청군은 불과 기마병(측후병으로 나온) 300명이었다. 우리 군은 의기만 중천 했을 뿐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남한산성에서 항전하고 있었던 인조가 청나라에게 항복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쌍령전투는 한국 역사 3대 패전(칠천량해전, 쌍령전투, 현리전투)중 하나로 꼽힌다. 그 당시 기록으로나마 알 수 있을 뿐 그렇게 아픔이 배여 있는 현장이라는 곳에 새삼 숙연해 진다. 지금은 이토록 한적하고 평화로운 국수봉 일대에 차마 헤아릴 수 없는 한이 맺힌 곳이라는 생각에 잠시 땀을 식힐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국수봉 정상에 올랐다. 광주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길 아래로는 우뚝 솟아 있는 고층의 아파트들 주변으로 오밀조밀 살아가는 사람들의 귀한 삶의 터전이 보인다. 그 사이로 그 날 그리도 애태우게 했던 교통체증의 중심 도로인 3번 국도가 여전히 느리게 움직이는 차량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아마도 이리 광주시내가 훤히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었기에 병자호란 당시에도 국수봉 일대를 중심으로 그런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평범한 듯 광주시민들의 일상의 한 터전인 국수봉을 오르내리는 산책로는 이런 역사적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사람들을 위한 길을 내주고 있었다. 또 국수봉을 내려오면 만나는 쌍령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며, 이런 역사의 현장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의미를 두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해발 264m의 작은 봉우리에 지나지 않은, 거창한 산은 아니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표기된 이름이 국수봉(國首峰-‘나라의 머리’ 라는 뜻) 어떤 곳에는 국수봉 (國守峰-‘나라를 지킨 봉우리’ 라는 뜻)이라 적는다. 아무튼 둘 다 나라를 위해 중요한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리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곳이다.

역사는 지난 과거가 아닌 오늘을 반추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하나의 진실이며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픈 역사지만 국수봉을 재조명해 보면 어떨까 한다. 4만명이 희생당한 넋을 위로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어쨌든 조상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이것도 하나의 문화콘텐츠가 되리라고 본다.

광주뉴스  gin5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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