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한산성 철학산책

서정욱 광주뉴스 국장(철학박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우리나라 정치지형과 문법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총선’이 아무리 다른 이슈들을 몽땅 집어삼킨 특수한 상황이었다지만, 그래도 대통령 임기 중·후반기의 총선은 통상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를 겸 하길래, 그만큼 ‘정권심판 욕망’이 위력을 떨칠 가능성이 컸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급격히 악화하던 3월 초까지만 해도 그랬다. 심각한 경제침체에 따른 파탄,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평등, 공정, 정의, 논란과, 비례 위성정당에 따른, 꼼수 창당이라는 돌출 변수까지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여당 지지층조차 이탈하는 흐름이 역력했었다.

그런데 선거기간 내내 코로나19 대응에서 한국이 ‘세계의 모범국’으로 부상하면서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정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프레임’이 크게 작동한 것이다. 그 결과 국민들은 ‘비상시국의 안정’을 택했다. 반면, 공동체의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던 야당은 점점 존재감을 상실해갔고, 이에 편승한 보수 언론들 역시, 일각에서 제기된 정권 붕괴론에 맞장구쳤다. 그들은 공동체의 재난에서 정치적 반사이득을 챙기려 했기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자격까지 의심받았다.

그때는 보수라고 부르기에도 참으로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시간들이었다. 그들 스스로 코로나 사태에 편승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과 증오와 공포를 부추기다, 결국 자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여당 역시 ‘꼼수정당’이라는 오명(汚名)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탄핵 세력이 1당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공포를 조장했었고, 또 자기네들이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성정당’으로 파탄 냈다. 여당은 그나마 ‘부끄러움의 미학’ 이라는 가치라도 되새기려면 이제라도 처절한 자기반성속에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애초 이번 총선의 ‘핵심 의제’로 부상되었던 것 중 하나는 ‘청년’이었다. 청년이야말로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가로지르는 핵심 이슈라는 데 폭넓은 합의가 있었다. 게다가 만 18살로 선거연령도 낮아졌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청년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김종인, 이해찬, 손학규 같은 노인네들이 버젓이 들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정치에 대한 열망과 의지의 고양이라는 정공법 대신 환멸을 조장하고 냉소를 방치하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선거기간 내내 정치가 환멸을 조장하는 시기에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놀랍게도 역동적이었다. 코로나19로 세계의 질서가 붕괴하는 와중에도 시민사회는 자기 절제와 연대의 윤리를 고양했고, 정부는 최대한 투명하게 시민사회의 요구와 소통하며 책임을 감당했다. 외부를 향한 혐오가 없지 않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위기는 아직 진행 중이라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성취한 민주주의의 저변은 깊고 단단했다. 바로 촛불혁명의 지반이다.

총선 이후인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여당은 이번 승리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코로나19 방역에서 얻은 교훈을 적극 되살려야 한다. 승리감 도취 따위는 잊어야한다. 국민은 집권 여당이 잘해서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현 비상시국에 분열보다는 안정적인 국면을 원했기 때문이다. 오직 어려운 난관을 타개하라고 밀어준 것뿐이다.

향수는 향기만 맡아야지 마시면 탈이 나는 법이다. 그리고 야당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혹독했는지 이참에 아로 새겨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보여준 싸늘한 표심의 향방과 매운 채찍질이 그 증좌(證左)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정치는 민주국가에서 오직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그래서 정당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또 국민들도 기꺼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거대한 경기침체와 또 다른 형태인 사회적 위기가 다가왔고, 실업자는 쏟아지고 서민들의 고통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할 것이다. 과감한 예산 편성, 공공성의 획기적 증대, 사회 안전망 장치 등 그야말로 정치가 감당해야 할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비상시국에는 여야가 절대 따로 있을 수는 없다. 이럴 때 일수록 서로 지혜를 모으고 상생과 화합, 서로에 대한 독려가 필요한 시간이다. ‘정치가 응답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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