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한산성 철학산책

서정욱 광주뉴스 국장(철학박사)

아버지는 감옥에서 편지를 보냈다. 홀로 남겨진 열세 살의 어린 딸에게… 영어(囹圄)의 몸이 된 아버지로서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고작 편지 쓰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딸은 아버지의 손 때 묻은 편지를 통해서 세상을 보았다. 그 딸은 비록 아버지와 떨어져 있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그가 3년간 감옥에서 딸에게 보낸 196통의 편지는 <세계사 편력>이라는 제목으로 묶여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고,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며, 그리움을 삼켰던 딸은 인도의 위대한 여성 정치가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로 성장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되었던 ‘젊은 김근태’ 역시 편지를 통해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당부가 편지글 안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특히 편지 말미에는 종종 어린 딸에게  ‘주체적 당당함과 시대적 소명의식에 귀 기울이고, 몸소 행할 것’을 당부했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애정과 응원 탓이었을까. (故)김근태 의원이 세상과 작별하던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흘러나오는 딸의 목소리는 단단한 아름다움까지 품고 있었다.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을 선물해 준,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 김근태 딸로 태어난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딸 김병민,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2012년 1월3일->

감옥! 격리된 공간. 세상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떼어놓은 고립된 섬.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높고 단단한 네모진 벽안의 시간이 자신의 심연을 오롯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되어 주었기에, 이들이 감옥 안에서 남긴 기록들은 고상한 작품이 되어 그 깊이와 묵직함으로 이 세상에 던져주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김남주의 ‘저 창살에 햇살이’ 그리고… 김대중 (前)대통령의 ‘옥중일기와 서신’에 이르기까지…

어디 이뿐이겠는가. 선교 전도여행에서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도 바울(Paul)'의 ‘옥중서신’은 기독교인들에게 절대적 진리로 여겨지는 신약성경(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스)에 수록되었고,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와 ‘로자 룩셈부르그(Rosa Luxemburg)’의 옥중수고, 혹은 옥중서신은 지금까지도 동‧서양 지식인 사이에서 자신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었다는데 서로 동의하고 있다.

사상사적 맥락에서 역사에 등장한 감옥에서의 서신이나 기록은 자신의 침잠(沈潛)된 의식의 밑바탕에서 우러나온다. 그리하여 기나긴 상념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자기성찰의 결과물이 하얀 백지에 잉크를 묻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한 영혼에서 그윽한 향기를 내 뿜으며, 맑은 가락이 울려 나오는 그 내용물은 맑고, 청아하고 숭고한 기품이 있었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나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옥중조사’ 마저 거부하고 있던, 한 때 우리나라 이명박 (前)대통령이 보냈다는 미안함의 ‘옥중메시지’. 그 사과는 국민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고, 미안함의 행간 속에는 복잡한 정치적 셈법마저 담겨있어서 국민들로 하여금 쓴 웃음을 짓게 했었다. 그리고 때마침 국정농단의 주인공이었던 최순실은 감옥 안에서 ‘회고록’을 작성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망가뜨려 버린 그녀의 조국에 대해 무엇을 전하고 싶을지 비상한 관심을 드러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또, 얼마 전 한 통의 옥중서신이 세상에 등장했다. 발신자가 박근혜 (前)대통령이었기에 여야는 물론이고, 온 국민도 신경을 곤두 세웠다. 특히나 비상시국이었기에 모두들 박전대통령의 옥중메시지는 불안한 정국에 대한 희망과 격려, 그리고 여야 정치권에 대해서는 정쟁보다는 화합과 상생의 길을 모색해 달라는 당부의 서신일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공개된 편지에는 그런 알맹이는 일절 없었다. 오히려 그 내용물은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더 침울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현 정권 심판론으로, “거대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부대까지 총 망라한 '보수우익 대통합'”을 당부했다. 그리고 본인도 기꺼이 함께 하겠노라고 결기 있게 전했다. 그러나 울림은 미약했다. 지금 온 나라가 과장되게 말하면 결딴이 날 판국에, 이 당부의 메시지는 공허한 나머지 오래된 창고로 흘러 들어갔다. 한 때 이 나라의 통수권자였던 그녀는 또 다시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부재라는 수식어만 하나 더 달았을 뿐이었다. 그녀에게 네모진 벽안에서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은 결국 ‘총선 압승’만이 본인의 ‘석방’이라는 등식만 발견한 모양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정체성(Identity)이 변하지 않는 것인가. 만일 이 전제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면, 나이든 사람이 정치를 하면 정치도 잘 변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이 꼬롬한 생각이 드는 건 뭘까? 물론 논리학적 오류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강고한 ‘카르텔(Cartel)' 형성은 오류를 떠나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시대 동력인 ’젊은 세대‘들은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마침 4.15총선을 겨냥해 여야 할 것 없이 세대교체 물갈이에 한창이라지만, 글쎄, 물갈이 대상자로 찍힌 당사자들은 오늘도 아름다운 승복보다는 추악한 반기를 든다는데, 이 또한 박 대통령의 옥중서신처럼 공허한 메아리로 거리에 나부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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