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 박사의 남한산성 산책로

서정욱 광주뉴스 국장(철학박사)

필자는 근자(近者)에 지인들의 호출로 인해 우리 광주 일대 마을 회관이나 큰 음식점 앞마당, 또는 공장부지 등에서 한 판 벌이는 윷놀이 광경을 종종 목격 한다. 수십 년에 걸쳐 보아온 이 장면도 볼 때마다 늘 새롭게 다가옴은 나의 정체성과 무관치 않으리라 짐작된다.

윷판 주연들은 대체적으로 지역 공동체 소모임 회원들이거나, 동네 어르신들이 주축을 이룬다. 본격적인 윷판이 벌어지기 전까진 늘 그렇듯이, 아니 누구라도 그러 하듯이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소란이 일어난다. 부부동반으로 참석한 여인네들은 여느 지체 높은 맏며느리인양 조신스러우면서도 바람처럼 ‘인파(?)’들 사이로 헤집고 다니면서 음식을 나른다. 가끔 주위에서 ‘천상여자’란 말을 듣는 동네 마나님들도 이 날 만큼은 ‘왈순 아지매’로 변신된다.    

이 ‘거룩한 분위기(?)’는 더러 필자 같은 굶주린 들러리에겐 매 순간이 적극적이다. 눈치 코치 봐가며 음식을 입으로 마구 쑤셔 넣다가도, 가끔은 신파조 어투로 맛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또 때론 간혹 헤픈 웃음이라도 흘려 고조되는 분위기에 보태야 하고, 서빙으로 (serving)두목(?) 급들에게 눈도장도 찍어야 한다. 이윽고 윷판이 깔리자 잠시나마 정적이 감돈다. 그리고는 편이 갈리고, 또 내기가 걸린다. 이럴 때는 시쳇말로 소위 ‘꾼들의 향연’이자, 또 ‘그들만의 리그’가 도래된 셈이다. 

그 무리들 속엔 얼큰하게 마신 자는 목청껏 우렁차게 쉰 내음을 풍기며 주위를 압도하고, 적절하게 조절한 자는 상기된 뺨과 더불어 연신 궁둥이를 씰룩거린다. 정겨운 육두문자들이 오가며 한바탕 떠들썩하게 논 윷판 자리에는 지폐가 수북이 쌓이고, 그 현장을 호심탐탐 노리던 여인네들은 독수리같이 먹이를 낚아챈다. 마치 김홍도의 풍속화를 연상케 하는 낯익은 풍경들이다 이 풍경속의 윷놀이 판에는 우리 삶의 문제와 이치가 담겨있으니 곧 우리의 경험적 세계관과 일치하는 것이리라.

윷놀이는 인간의 본성에 입각한 ‘신명성’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윷말’ 쓰는 법은 냉정한 ‘이성’에 입각에 있다. ‘윷패’는 윷놀이꾼과 응원꾼의 신명에 따라 뜻밖에 좋게 나올 수 있으나, 이를 점수화하여 ‘말판’에다 윷말을 쓸 때는 신명나는 대로 써서는 안 된다. 상대편의 윷말을 가늠하면서 차분한 가운데 전후 맥락을 따져가며 봐야한다. 욕심을 부리다간 상대편의 말에 잡아먹히기 일쑤이고, 엉뚱한 성급함을 보이다간 도리어 늦잡혀서 낭패를 당할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윷말을 쓸 때에는 같은 편끼리라도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윷말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첫 도 부자’, ‘첫 도 천리’라고 하는 옛말들이 윷말을 쓰는 이치와 함께 세상살이의 이치까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 걸음씩 차근차근 시작해야 마침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며, 첫 도를 친 사람에게 사기를 북돋아 주는 구실까지 한다. 이와 반대로 ‘첫 모 방정에 새 까먹는다’든가 ‘첫 모 비상(砒霜)’이라는 옛말은 처음부터 지나친 행운을 기대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들 옛말들을 작게 보면 윷놀이를 잘하는 규범에 머무르지만, 크게 보면 세상살이의 훌륭한 지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윷말 쓰는 일을 두고 같은 편끼리 서로 다투는 일은 공연한 일이 아니다. 이는 결국 세상살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삶의 논쟁이기도 하다.

윷놀이꾼이 윷을 아무리 잘 놀아도 윷말을 쓰는 이가 윷말을 헤프게 잘못 쓰게 되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윷은 신명으로 던지지만 말을 쓸 때에는 중지(衆智)를 모아서 여러모로 차분하게 따져 봐야 한다. 농민의 처지에서 보면, 농사일은 신명으로 해야 많은 소출을 거둘 수 있지만, 거둔 곡식을 먹고 쓰는 데에는 이성적으로 절제하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험적 세계관과 절묘한 일치를 보인다.

이처럼 윷판에 함의(含意)된 놀이에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논리 체계(?)도 성립되는 셈이다. 이 복잡한 논리체계란 다름 아닌 이성, 즉 효율성과 합리성이다. 특히 신(新)공동체 문화를 지향하는 우리 광주시민들에게는 신명나는 열린지역공동체문화를 활성화시키면서도 성숙한 공동체의식으로 거듭 나기를 소망해본다. 다수가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주고, 소수도 다수의 언행을 인정해줄 때, 비로소 위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절묘한 이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절묘한 이치에는 반드시 상생의 길이 내포되어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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