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이향숙 여성기자아카데미 회원

10월 3일 여성기자아카데미 일행은 경안천습지 생태공원을 경유하여 천진암에서 우리나라 카톨릭역사에 대한 김동원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왔다.

오전 10시 30분 광주뉴스 근처 공영주차장 앞에서 드디어 출발이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멋진 가을 산과 들녘이 우리를 맞이했다. 생태공원을 향해 버스는 설렘을 안고 앞으로 달리고, 양쪽 길가 풍경들은 아쉬움을 남기며 뒤로 스쳐 지나간다.

그 뜨겁던 여름은 어디 가고 무성하던 푸른 들녘은 벌써 겨울을 대비하며 향기를 끌어안고 나지막하게 내려앉아 있다. 내년 봄이 되면 겨울을 이겨낸 진한 그 향기는 다시금 앞을 다투며 온 들녘을 뒤덮을 것이다.

경안천 습지 생태공원은 퇴촌면 정지리에 위치한다. 16만 2 ,000 제곱미터의 넓이로 갈대, 부들, 연꽃 등의 수변 식물이 팔당호 상수원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걸러주며 동. 식물과 인간에게 서식지와 친환경적인 공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 처음 본 생태공원은 금방이라도 푸른 물을 쏟아 낼 듯한 끝없는 하늘을 이고서 사그라지는 수많은 연꽃을 조용히 품고 있다. 그 여름 이 연꽃들은 얼마나 찬란했을지 가히 상상이 어렵지 않았다.

약 2km에 이르는 산책로는 휴일임에도 가을인지라 모두 다 휴식에 잠겨있는 듯하다. 멋진 시를 읽으며 걷다 때로는 목재 데크를 이용해 연밭 가운데로 들어가거나 갈대와 부들의 군락 속에서 그들과 동무가 되어 미풍에 몸을 맡겨본다. 군데군데 설치된 철새 조망대 창을 통해 멀리 한가로이 날고 있는 새들의 날갯짓을 하염없이 따라가 보기도 한다.

생태공원 둔덕에 올라 드넓은 풍경과 그 안에 움직이는 생명체들을 내려다보며 걷는 걸음은 익숙하지 않은 나 자신과 마주함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거나 아이들과 자연을 느끼고 싶을 때가 많았건만 지척에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을 두고 이제야 첫 방문이다. 나의 지각 방문을 탓하지 않고 그저 팔벌려 환영하는 이 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들과 주인 없는 의자 등 모두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공기와 물을 맑게 하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이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지 또 이들을 보살피고 지키는 사람들의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지 잊고 살고 있었다.

생태공원을 뒤로하고 한국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로 출발하였다. 가을의 그림자는 곳곳에, 길가에 엎드린 조그마한 풀포기에도, 이름 모를 손톱만한 꽃잎에도 드리워져 있다. 천진암 성지로 오르는 길가 넓은 공터에 핀 코스모스 군락은 그 소박함과 수수함만으로도 풀잎파리들과 함께 어우러져 그들만의 향연으로 손짓하며 우리를 반긴다.

우리를 마중 나오신 김동원 신부님은 눈빛과 목소리에 열정과 진심이 가득했다.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문득 생각해 본다. 겉으로 드러나는 신부님의 작지만 힘찬 손짓들, 열정 어린 표정 등이 그 안의 속을 더욱 환하게 해주는 요인은 아마도 시간과 자연과 그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신부님은 천주교 발상지로서의 천진암, 실학사상까지 접목하여 현대생활의 근간이 된 천주교의 사상, 또한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행한 천주교의 큰 역할 등을 언급하실땐 얼굴에서 빛이 났다.

천진암은 원래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아래에 있는 사찰로, 1770년대 이벽,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등이 약 15년간 학문 연구와 강학 활동을 전개하여 천주교를 학문적인 대상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신앙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발전시킨 곳이다. 한국 천주교 발상지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이유이다.

그러나 우주 만물의 기원인 천주 하느님을 숭배하며 평등을 중시하는 천주교의 사상은 조선 후기의 왕도정치, 제사를 통해 조상을 숭배하는 기존 가치와 충돌하여 탄압과 박해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천주교인들의 순교와 낙향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천주교는 경기도 여주, 광주, 이천, 포천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신부님은 우리 일행을 위의 천주교회 창립 성조들의 묘로 안내하셨다. 그들이 천주교 사상전 파를 위해 행한 노력과 그들이 겪은 탄압을 이야기하시며 신부님은 우리의 조상인 그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잊지 않으셨다. 천주교 창립 성조들의 묘에서 내려오는 산길은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신부님은 이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길을 우리나라 천주교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근교의 길들과 연결하여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천주교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걸으며 창조의 신비를 경험하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며 걷는 순례길, 세계인이 걷는 광주 천진암 순례길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돌아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천주교 성지는 병풍처럼 에워싼 드넓은 산의 정기 아래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성모 마리아상이 지키고 있었다.

함께한 사람들의 알고자 하는 열의가 느껴져 좋았고 아름다운 날씨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있어 더없이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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