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홍익인간’ 주창한 민족주의자 신익희 재조명

‘해공 신익희와 경기도 광주’ 학술대회가 지난 18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청석에듀씨어터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박광운 전 광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이 기조발언을 서두로 이창희 광주문화원장의 인사말을 필두로 학술대회가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는 정내하 광주YMCA대표, 임선하 현대창의성연구소장, 한낙교 광주유도회장 및 회원,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원, 천광건 대한가수협회 광주지부장 및 회원,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시장·도의원·시의원 각 정당 예비후보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어진 2부 학술대회는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총사 편찬위원회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첫 번째로 ‘신익희 사상의 형성과 전개’라는 제하에 신운용 교수(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의 발제가 이어졌다.

신운용 교수(좌)와 김동환 교수(우)

신운용 교수는 해방전 신익희가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전후와 3·1운동을 앞두고 상해임정에 참여한 전후를 실증적으로 고찰하며 신익희는 철저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탁월한 독립운동가 이었음을 조명했다. 특히, 신익희는 오늘날 우리에겐 생소한 대종교인으로 당시 항일독립의 선봉에 섰던 많은 우국지사와 함께 했었다는 사실을 실증자료를 근거로 설명했다.

신 교수의 발제에 대한 토론자로 나선 김동환 교수(국학연구소 연구원)는 대종교내에 신익희의 대종교관련 자료가 불비함에도 불구하고 신익희 사상에 담겨진 대종교 단군 민족주의 정신을 이끌어내 논문의 완성도를 높인 점에 방점을 두어 지적했다.

정현기 교수(좌)와 주영은 교수(우)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정현기 교수(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1956년 신익희가 대통령후보로 출마해 한강백사장에서 100만 인파를 향해 사자후를 토했던 연설문을 중심으로 신익희가 구현하고자 했던 당시 민주주의, 남북통일, 자주국방, 교육문화에 대한 사상과 철학을 재조명했다.

정 교수는 “위대한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 민족정기에 투철한 정치지도자 신익희의 산실 광주가 앞장서서 신익희를 바로보고 기려 간직해 민족미래의 원동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토론자에 나선 주영은 교수(전 연세대 법대학장)는 “신익희가 위대하고 탁월한 것은 ‘임시정부사람들을 독립운동이나 항일투쟁을 위해 떠돌아다닌 망명집단에 불과하다며 자신은 시골면장도 못 지낼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낮췄던 겸양의 지도자였다”며 신익희의 인격됨을 지적했다.

한편, 이날 학술토론회는 참석자들과 자유대화가 이어지며 상해임시정부와 3·1운동 그리고 해방 전후에 이어지는 우리민족이 뿌리 채 흔들리는 과도기에 다수의 선각자 지식인들이 왜 대종교가 주창하는 단군·홍익인간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는가?

아울러, 배타성이란 미명하에 어느 세력이 우리민족정신을 초월하는 공동체 정신이 고양되는 것을 유린하였는지 자못 궁금하다. 광주에서 처음 비롯된 신익희 학술대회를 통해 참으로 많은 역사의 갈림길을 맞이했던 우리민족이 경험했던 현기증에 새삼 공감된다.

“신익희에 대한 올바른 연구 및 문화 활동이 이번 학술대회를 단초로 광주 곳곳에서 이어지길 희망한다”는 신운용 교수의 말처럼 향후 올바른 신익희 사상의 규명을 통해 광주는 물론 우리민족 나아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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