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유모 씨 연쇄살인범이 잡히면서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다. 범인은 부도덕한 윤락녀들을 단죄한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면서 21명을 죽였느니 26명을 살해했느니, 원래는 100명이 목표였다는 등의 진술을 하면서 계속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지금 멕시코에도 후아레스시 연쇄살인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그 쪽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직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데다 1993년 첫 사건 이후 지금까지 피해자만 해도 300명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유엔에서는 피해자가 500명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음) 물론 49건만이 동일 범(연쇄살인)이 확실하고 나머지는 유사 또는 모방 범죄일 가능성이 많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한 도시에서 그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봤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다.

결국 멕시코 당국은 자국 경찰이 사건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미국 FBI에 수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국내 형사사건을 타국 수사기관에 의뢰한다는 자체가 치욕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멕시코 경찰이 그런 치욕을 당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민단체들에 의하면 사건 초기부터 멕시코 경찰은 피해자가 윤락녀라고 단정 짓고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초동 수사부터 얼렁뚱땅 얼버무리데 급급하다 보니까 사건 11년 동안 피해자가 속출해도 단서하나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한다.

사실 피해자가 무슨 신분이냐에 따라서 경찰의 수사 의지가 다른 점은 비단 멕시코 경찰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경찰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쇄살인 사건에서 보다시피 업주의 결정적인 신고가 없었더라면 살인범 말마따나 피해자가 100명이 될 수도 있었고 제2의 멕시코가 돼지 말란 법이 없었을 터이니까.
그렇다면 엄연한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도 경찰로부터 터부시 당하는 윤락녀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이 답을 얻기 위해 옛날 윤락녀 즉 해어화(解語花)라 불렸던 기생을 드라이브 코스로 잡아 둘러보고자 한다.

기생의 유래에 대해서 정설은 없으나 고대 부족 사회의 무녀(巫女)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제정일치 사회에서의 사제(司祭)였던 무녀가 제정이 분리되어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지방 세력가와 결합하여 기생과 비슷한 신분층을 형성하였다는 견해다. 그리고 고대 국가가 다른 부족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피정복 부족 부녀자들로 국가체계가 확립되면서 이른바 관기(官妓)와 같은 제도가 서서히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따라서 기생은 기본적으로 노비와 같은 신분이었다.

이러한 노비 신분인 기생이 일반 노비와 다른 뚜렷한 계층을 이룬 것은 중앙집권이 정착한 고려 때부터다.

고려의 교방(敎坊)은 기생을 배출하는 제도화된 학교였으며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우리 나라 기생은 사대부의 유교문화와 융합하면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한 기생문화를 갖게되었다.

이처럼 독특한 우리 나라만의 기생문화는 국문학사를 크게 기름지게 하였는데, 문학성이 뛰어난 고려가요는 거의 기생들의 작품으로 짐작되고 있고 기생 황진이(黃眞伊)는 “어뎌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졔 구태야 보내고 그리난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라는 <병와가곡집>에서 변칙적인 작법을 구사함으로서 국문학사상 하나의 이정표(里程標)가 되었다. 황진희 외에도 이매창(李梅窓)이 시조 시인으로 명성을 날렸고 한국 전통가무의 보존 전승하는 역할도 기생들이 도맡아 했다.

우리 나라 기생은 문학과 예술분야 외에도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의기(義妓) 논개가 있고 일제 강점기 하에서는 진주 기생 산홍(山紅)은 “기생 줄 돈이 있으면 나라를 위해 피 흘리는 젊은이에게 주라.”고 친일파 인사를 꾸짖은 일화로 유명하다. 그리고 3,1 운동 때는 진주, 수원, 해주, 통영 등지의 기생조합원들이 궐기하여 민중을 이끌기도 했다.

이와 같이 옛날 우리 나라 기생은 단지 몸을 파는 윤락녀이기 이전에 문학가이자 예술가며 국가를 아는 충녀(忠女)이기도 했던 당당한 한 문화 계층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옛날 기생들이 사람들로부터 천시 받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기생 자녀는 남자는 노비, 여자는 무조건 기생이 되야 하는 괄시받고 가장 천시 받는 계층이었다.

하지만 주어진 운명을 뛰어넘어 문학과 예술로 승화시켰던 우리 나라 특유의 기생문화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가 간직해야될 소중한 자산이다.

* 1961년 5월 생
월간 녹색지대 前 편집장 * 역사·무협 소설가
장편 「황하(3권)」 「刀劍天下(6권)」등이 있고
단편 「누렁이」「보금자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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