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내하 경기광주YMCA 위원장

1994년 1월 18일 현대사의 큰 별들이 셋이나 떨어졌다. 문익환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 소천 하셨다. 나와 일가이신 정일권 전 총리가 별세했다. 또 한 분은 재야서 평생을 사셨던 김병휘 선생님이다.

나는 세분의 장례식장을 다니면서 한국의 현대사가 오버랩 되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누구나 잘 알듯이 문익환 목사님은 민족 통일 민주 운동가로 한 획을 그은 분이시다.

문익환 선생과 용정중학교 동창인 정일권 총리는 만주사관학교을 졸업한 친일파이며 육군대장을 지내고 5·16군사쿠데타로 박정희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린 사람이다. 아버지와 깊은 인연 때문에 문상을 다녀왔다.

김병휘 선생은 우리 운동권패밀리의 숨겨진 지도자이었다. 그는 북한서 김일성 최 측근으로 있다가 김책과의 이론과 권력투쟁서 밀려 월남하여 진보당을 결성해 60년대 진보당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평생을 야인으로 살면서 독재의 탄압을 받아온 분이셨다. 선배 유영래를 비롯해서 우리 운동권 동지들의 존경과 사랑만이 그의 지난한 삶의 위로였을 것이다.

그날 밤 서울대 장례식장서 밤늦게 통음했던 기억이 아른거린다. 문익환 선생은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을 결성시 멀리서 처음 뵈었다. 민통련 조직국장을 맡았던 유영래선배가 초안한 선언문을 내가 교정과 수정보완을 했다. 이 글을 통해 처음 밝히지만 내 속에 숨겨진 큰 자랑거리이다. 이후에 선생님을 사석에서 몇 번 뵌 것이 고작이다. 

평상시 말없이 조용하신 분이지만 간단한 말씀에도 내 이성의 골수를 쪼개는 검이 들어 있었다. 내 이성과 감성 속에 평생 동안 시퍼렇게 살아있는 검이다. 반면에 백기완 선생은 판소리 한마당 같은 분이었다. 재담과 유머와 웅변을 듣노라면 거의 우리는 배꼽의 실신지경에 이른다.

1986 서울 민통련이 백기완, 이재오, 유영래 등 명망가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서울 민통련 여름수련회를 고양시 어느 절에서 열었는데 문익환 선생을 강사로 모시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아침 문 선생을 모시고 몇 명이 뒷산에 올라갔는데 문 선생께서 감옥에서 건강을 유지했던 호흡법을 가르쳐주셨다. 팔을 하늘로 뻗쳐 올리고 천천히 내리면서 들숨과 날숨을 하는 단전운동법이었다. 세상과 조우하는 방법이다.

그 후로 선생님을 만나 뵙지 못했다. 빙그레 웃으시면서 제자들을 위해 정성껏 가르치던 선생의 뒤로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올라 민족민주통일의 아우라를 만들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아우라이다. 저 천국서 문익환 목사님은 촛불의 혁명을 빙그레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정내하

연세대 불문과 졸업
경기광주YMCA 위원장
<광주뉴스>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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